<동주>는 그리움이다

시인의 언덕에 올라 젊은 시인 동주를 그리다

by 더글라스김

윤동주 문학관 옆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시인의 언덕이 나타난다. 꽃은 아직 피지 않았지만 목련과 산수유가 꽃망울을 머금고 봄을 맞이하고 있다. 시인은 연회전문학교 문과 재학시절 종로에 있는 소설가 김송의 집에 하숙하며 문우들과 이곳 인왕산에 올라 시정을 다듬었다고 한다.

언덕에서 서울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장소에 시인의 대표작 ‘서시’를 새긴 시비가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고 싶었던 청년,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던 사람,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는 것들을 사랑하겠다던 젊은 시인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주어진 길을 가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때는 외로웠지만 지금은 봄 햇살처럼 따뜻하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시인에게 악수를 청하고, 말 걸어오는 것을 즐기고 있다. 시인은 가고 없지만 그의 예술은 남아 영원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시인의 언덕 표지석 앞에 ‘윤동주 영혼의 터’라는 글귀가 있다, 고향 북간도에 묘비가 있지만 가장 여유롭고 풍요로운 시절을 보낸 이곳에서 영혼이 머물고 있다. 거친 바람 앞에 호롱불처럼 암울했던 국가 운명의 무게를 내려놓고, 풀벌레 소리 벗 삼아 영혼이 치유되기를 기도한다. 산모퉁이 돌아 논가 외딴 우물에 비친 자랑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모두가 그리워하는 사람인 것을 기뻐했으면 좋겠다.

오직 아름다운 경관만 있다는 무무대에서 시내전망을 구경하고 수성동 계곡으로 내려왔다. 세차게 흐르는 물소리가 마치 낙뢰처럼 시인의 뇌에 내리 꽂혀 시상을 떠올리게 했을 것 같다. 도시와 맞닿은 지점에 겸재의 그림과 똑같은 돌다리가 아직 남아 있다. 시인과 우리를 이어주는 연결고리처럼 보인다. 여기에 아파트를 지었다가 철거하고, 다시 지금의 모습으로 원상복구 했다는 말을 들었다. 하마터면 백석동천을 못 볼 수도 있었다니 아찔하다. 도심 가까운 곳에 이런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윤동주 문학관에 있는 닫힌 우물이 마치 시인이 수감됐던 형무소를 연상하게 한다. 어둠 속에서 비치는 한 줄기 빛은 시인이 조국의 독립을 바라는 간절한 소망으로 느껴졌다. 수도가압시설을 개조해 만들었다는 열린 우물에서는 하늘이 우러러 보인다. 휜 구름이 파란 바람에 밀려 자유롭게 하늘을 떠다닌다. 따스한 봄기운이 안으로 스며들었다.

젊은 시인이 열린 하늘에서 우물 속에 있는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동안 세상에 부끄럽지 않게 살았는지 묻고 있다. 나는 대답을 얼버무린다. 이제부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고,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기 위해 새로운 좌표를 찍으러 여기 왔노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돌아와 물어도 밉지 않고 그리워지는 내가 되고 싶다고 말이다.

올해는 윤동주 시인이 후쿠오카 교도소에서 타계한 지 80주년이 되는 해이다. 윤동주는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 되었다. 9개 언어로 번역되어 80여 개국에서 출판된 시인의 노래가 세계로 울려 퍼지고 있다. 그의 짧은 삶은 겨울이었지만, 영혼은 봄을 살고 있다. 돌담 위에 고양이가 한가로이 졸고 있는 봄날에, 동주와 함께한 시간은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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