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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사계

사람의 감정

by 볕뉘

감정의 사계

슬픔은 비였다.

조용히 그러나 끝내 젖게 하는 비

한 방울 두 방울 마음의 창문을 두드리고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들이

물감처럼 번져 창을 흐리게 만든다.

그래도 걸어야 한다.

그 빗속을 걸어야만

세상이 다시 투명해진다.

미움은 불이었다.

작게 타올라 이내 번지는 불

나를 태우고 너를 삼키고

마지막엔 재로 흩어지지만

그 잿빛 속에서도

이해의 새싹은 자란다.

고통은 돌이었다.

무겁고 차갑고 손끝이 저린 돌

가슴 한편에 묵직이 자리 잡아

한 걸음 한 걸음 느리게 하지만

그 돌 위에도

이끼는 피어난다.

그 푸름이 나를 살린다.

그리움은 바람이었다.

잡히지 않지만 언제나 스치는 바람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그 향기는

그 목소리는

어딘가에서 내게로 돌아온다.

슬픔이 나를 적시고

미움이 나를 태우고

고통이 나를 다듬어

결국 그리움으로 흘러가면

나는 조금 더

사람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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