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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복 Mar 28. 2023

나팔 소리

[그림대화] (13)

     안개 속 소용돌이치는 모래바람, ‘혼돈과 절망’의 광야에서 홀로, 거센 바람에 맞서 나팔을 불며 힘겹게 헤쳐나가는 전사다. 미쳐버린 세상을 견디지 못하고 차라리 미쳐버린, 누구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아 광야를 떠돌며 몸부림치는 광인(狂人)이다. 어쩌면 세상을 누비며 ‘나팔소리’로 멸망을 경고하고 다니는 예언자일런지도 …… 전사, 광인, 예언자 이 모두가 겹쳐 보인다. 무척 강렬하다. ‘신화적’인 아우라가 느껴진다.


     땅을 딛고 선 것이 아니다. 발이 묻혀있다. 시커멓게 오염되어 죽어버린 강과 바다에 홀로 서있다. 아니 발아래 흐르는 그것은 날것 그대로의 원유(原油)인가. 화석문명의 정점에 다다른 탐욕과 죽음의 땅이 되어버린 지구, 타마구처럼 찐덕한 늪에 빠져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는 인류, ‘멸종위기’에 처한 인류를 직설로 상징하고 있다.


     투명한 단색의 화면 위에서 뚝뚝 끊기며 그어진 선, 매우 절제된 색채와 형태만으로 어떻게 이처럼 거대한 기운과 스펙터클한 광경을 드러낼 수 있을까, 경이롭다. 직전의 작품, “나팔 부는 사람”(no.12)이 동화-우화적이라면, 이 작품은 신화적이다. 아이의 모습에서 대지-대양-거인의 이미지가 강렬했었는데, 이 작품은 거기에 더해 격렬하고 긴박하고, 전투적인 에너지가 뿜어 나온다.  


#화가 #형 #류장복 #그림대화

나팔소리_graphite powder, crayon, gouache, marker and acrylic on linen_180x165cm_2023/ Jangbok R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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