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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복 Apr 01. 2023

다시 만남

[그림대화] (19)

     화려하게 만발한 꽃들이 황홀경이다. 꽃들은 달빛을 반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빛을 발산하는 발광체라고 해야할 지경이다. 차라리 달빛은 담담하다. 터질 듯 차오른 달님에 어린 신비로운 옥색 빛은, 달이 아니라 우주 그 자체를 상징하는 것 같다.

 

     그 아래, 달빛에 물든 들짐승 한마리가 달빛에 들려 올려 진다. 마치 재단에 바쳐진 제물 같기도 한데, 어둠 속에 몸을 숨긴 날짐승에게 유린당하고 있다. 이미 체념한 듯 고개를 떨군 채 저항도 없이 끌려가고 있다. 생멸(生滅)이 순환하는 ‘자연의 섭리’를 환기시킨다.      


     맨발의 여인, 굳어버린 듯 수줍게 두 팔을 내린 채 남자를 끌어안지도 못하고 서있다. 남자도 그녀의 허리와 머리를 감싸 안고 있지만, 달콤하고 열정적인 욕정과는 거리가 있다. 더욱이 고개를 숙여 눈을 내려 깔고 그녀를 바라보지 못한다.


     제목이 <다시 만남>이다. ‘다시’ 만남이라 …… 속절없이 떠나버린 뒤 어두운 밤 문득 나타나 속죄의 눈물을 흘리는 남자를 여자는 선 채로 응시한다. 그녀의 ‘맨발’은 떠난 남자를 그리워하며 기다려온 그녀의 ‘마음’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두 사람이 결박(結縛)된 사연과 서로의 속내가 그런 것이었을까, 억세 보이는 나뭇가지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하지만 그 가지들 사이에서 가지들을 덮어버릴 정도로 터져 나오는 열정과 희열의 ‘꽃불’들은 활활 타올라 하늘로 치솟는다. 두 사람 발치에서 찬란한 꽃 그림자를 가득 머금은 연못은 어쩌면 두 사람의 내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무 중턱, 어둠속에 몸을 숨기고 가지 위에 의연하게 앉아있는 작은 부엉이가 보인다. 모든 ‘혼란이 잦아들고 나서야 사태가 분명하게 보이고 비로소 지혜가 얻어진다’는 그 미네르바의 ‘부엉이’일까. 그렇다면 두 남녀의 어긋났던 진실이 이제 제 자리를 찾은 것을 보증해 주고 있는 것일지도 …….     


     극단적인 세로 화면의 비례가 특이하다. [달] ⇨ [짐승과 꽃나무] ⇨ [두 사람]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마치 [우주] ⇨ [자연] ⇨ [인간] 로 이어지는 흐름을 상징하는 것 같다. 세상사람 누구라도 저마다 한조각의 ‘우주-자연’을 품고 사나보다. 우주와 자연은 그렇게 뭇 생명들에게 제 품 한 자락씩을 버혀내어 주는가보다. 그래서 두 사람에게도 커다란 위안이 되고 있을 것 같다.


#화가 #형 #류장복 #그림대화

다시 만남, oil on linen, 654.3x90.9cm, 2018/ Jangbok R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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