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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복 May 26. 2023

늦가을이른새벽

[그림대화] 59

     미련처럼 남아있는 엷은 어둠을 머금은 채, 여명의 푸른 하늘이 차고 맑다(청명하다). 동산의 부드러운 능선이 느긋하게 흐르며, 검푸르스름한 하늘을 가린다. 벌써 일터 나갈 채비에 바쁜지 아까부터 불이 켜있는 산동네 집들이 골목을 밝힌다. 


     수직과 수평을 이루는 반듯한 창틀이 구조물마냥 든든하다. 그 안에 정사각형의 창살로 구획된 하얀 창이 편안하다. 고개를 뒤로 당겨 창밖의 풍경 전체를 보다가도, 정사각형의 풍경조각들을 하나하나 살피듯이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창살에 걸친 노오란 꽃이 선명하다. 창가 선반 위 화분에서 나온 거겠지 했지만, 그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마치 창밖에서 창을 넘어 방안으로 침범하듯 밀고 들어온 모양새다. 


     빨간 열매들을 송송이 매단 가지다발에서 이제 막, 툭, 뛰어내린 양, 동이족 차림의 두 아이 인형이 선반 위에서 신기한 몸짓을 하고 있다. 


     구슬에 비친 사람, 작가려나? 오래전부터 그 안에 들어있었던 사람처럼 익숙한 모습으로 앉아서 창밖을 내다본다. 왠지 쓸쓸해 보인다.      


#화가 #형 #류장복 #그림대화

늦가을이른새벽_oil on linen_72.7x90.9cm, 2015-21/ Jangbok R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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