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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복 Feb 07. 2022

땅따먹기

   평화롭기로는 봄들기 못지않으면서도, 그 스케일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장대한 놀이가 있었다. 손톱만 한 돌멩이 하나만 가지고도 천하를 도모할 기개를 펼치는 땅따먹기다. 흙 마당에서 못으로 금을 그어 대륙의 범위를 정한다. 놀이에 참여하는 애들의 수를 고려해서 너무 비좁아 부대끼지 않도록, 또 너무 넓어서 힘 빠져 지치지 않도록 적정한 넓이로 정한다. 그리고 각자 마주 보는 식으로 건너편에 출발 지점을 정하고 출발점에 선다.

   출발선에서 손바닥을 한껏 펴 한 뼘을 반지름으로 하는 반원을 땅에 그린다. 분도기 모양의 반원 땅을 밑천 삼아 대륙 도모에 나선다. 반원의 땅에 돌멩이를 올려놓고 엄지손톱으로 임자 없는 광활한 대지를 향해 튕겨낸다. 그리고는 두 번을 더 튕길 동안에 다시 출발 지점으로 돌멩이를 귀환시켜야 한다. 귀환에 성공하면 출발에서 귀환에 이르기까지 돌이 머문 점을 이어서 만들어지는 도형의 면적만큼이 내 차지가 된다. 초반일수록 자기 땅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땅을 많이 차지하겠다는 욕심에 무턱대고 멀리 보냈다가는 귀환을 못해 헛수고가 된다.

   돌멩이가 튕기는 대로 잘 움직여서 원하는 곳으로 나가줘야 한다. 튕겨낸 후 돌멩이가 들뜨는 바람에 또르르 굴러 엉뚱한 곳으로 가버릴 수도 있어서, 될 수 있는 대로 돌멩이는 앞뒤로 평평하고 납작한 놈으로 골라 쓰는 게 좋다. 적당한 돌멩이를 구하지 못해, 사금파리나 유리 조각, 조개껍데기나 타일 조각을 쓰기도 하고 심지어는 사이다 병마개를 주어오기도 한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돌멩이가 가장 무난했다.

   돌멩이가 또 너무 무거우면 튕기는데 부담스럽고, 너무 가벼워도 힘 조절이 예민해서 돌발적인 행보를 하기 쉬워 부적격이다. 자기 손에 맞아야 하는 가라 정답은 없고, 각자의 조건에 맞는 놈을 골라 쓰면 된다. 몇 차례 시행착오를 거치다 보면 손에 딱 맞는 돌멩이를 정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문제는 손가락의 힘 조절인데, 이건 도리가 없다, 숙련이 필요하다.

   차지하고 있는 땅이 넓으면 넓을수록 귀환하기가 쉬워서 더욱 과감하게 영토 확장에 나설 수가 있다. 알피니스트가 최종 정상을 공략하려면 베이스캠프가 든든해야 하듯이 말이다. 그래야 먼 길 떠나도 걱정이 없고, 과감하고 공격적인 산행에 나설 수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다 보니, 게임이 진행되면 될수록 이른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난다. 조그만 돌멩이 하나로 하는 놀이에도 엄연한 세상의 이치가 그대로 들어가 있었다.

   돌멩이가 머무는 점을 직선으로 이어서 땅을 벌어들이게 되므로, 사다리꼴이나 뾰족한 모양의 땅이 덧대지는 식으로 땅이 늘어난다. 삐죽 튀어나온 부분 사이의 거리가 한 뼘 안에 들어오면 통합해서 그사이를 땅의 소유를 덤으로 인정해주기도 했다. 이른바 ‘뼘재기’라고 부르던 규칙인데, 삐죽삐죽 복잡한 땅의 경계를 경지정리 하듯이 깔끔하게 정돈할 수 있어서 좋았다. 손이 작은 애들은 억울하다며, 한 뼘에 조금 못 미치더라고 그냥 봐줘야 한다고 형들에게 떼를 쓰기도 했고 또 시비가 걸리기도 했다.

   놀이가 중반을 넘어서면 그 넓던 대륙이 얼추 다 임자가 정해지고, 공략할 땅이 그만큼 줄어들어서 돌멩이를 운신하는 일이 훨씬 까다로워진다. 까딱 잘못해서 돌멩이가 남의 땅에 들어가는 순간 아웃이니 말이다. 마치 제 안방이라도 되는 듯이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 기다시피 하면서,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애를 쓴다.  


   어느덧 해가 달동네 꼭대기에 걸려, 깔딱 넘어갈 채비를 하면 골목에도 어둠이 밀려와 슈퍼가게 앞 외등이 껌뻑이기 시작한다. 어둠이 들어차 땅도 잘 안 보이고 경계를 구별하기도 어려워지자, 온종일 땅바닥에 달라붙어 있던 애들이 하나둘 툭툭 털고 일어난다. 손은 말할 것도 없고, 얼굴에도 땀과 흙이 범벅이 되어있다. 제힘으로 도모한 땅을 두루 내려다보더니, 친구가 벌어들인 땅 크기와 견주면서 스스로 대견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다 배고픈 게 이제 생각이 났는지, 불현듯 후다닥 제집으로 달려 들어간다. 

   이렇게 골목 흙바닥 위에서 대륙을 도모하는 기개와 전략을 경험했다고 하면, 그게 뻥이기만 할까?


#미아리의추억 #땅따먹기 #돌멩이 #영토 #대륙 #뼘재기

류해윤_금강산계곡__종이에 수채_57.5×76.5cm_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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