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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복 Oct 09. 2022

애틋한 이영애 선생님

   4학년은 나의 초등학교 6년 기간 중 가장 다이내믹한 시절이었다. 담임이었던  이영애 선생님은 기분파였다. 애들이 수업시간에 놀자고 졸라대면 몇 번은 거절하다가도 결국은 허락해준다. 수업은 순식간에 오락시간으로 돌변하고, 교탁을 치우고 교단을 무대 삼아 아이들이 장기자랑을 했다. 그날은 책상을 모조리 교단 쪽으로 다 밀어 부쳐놓고 책상 위를 아예 무대로 만들어버렸다. 책상의 높낮이가 조금씩 달라 울퉁불퉁하긴 했지만 그럴듯한 진짜 무대가 됐다. 애들은 모두 마룻바닥에 내려앉아서 어깨를 대고 무대를 올려다봤다.

   그날도 아이들이 나와서 노래도 하고 춤췄다. 남자아이 중 ‘잘 노는’ 개구쟁이들은 춤추는 걸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단연 주영칠이었다. 별명은 역시 칠칠이었다. 길음시장 가다가 산동네로 올라가기 전에 평평한 주택가에 살았다. 아버지 엄마가 남들보다 좀 나이가 많았다. 아마도 늦둥이로 얻은 귀한 자식이었나 보다. 이날도 영칠이는 한바탕 막춤을 추었다. 친구랑 급하게 연극을 준비했는데, 난 빵집에 빵 사러 들어간 손님 역할을 맡았다.     


손님 : 아저씨 여기 찐빵 두 개만 주세요.

주인 : 네에~ 여기 있습니다.

손님 : 아 참, 아저씨. 이거 곰보빵으로 바꿔주세요.

주인 : 아 네, 곰보빵 여기 있습니다.

(손님, 곰보빵 2개를 다 먹고 그냥 나가려고 한다)

주인 : 여보세요. 빵값을 내야지요.

손님 : 네? 아까 찐빵이랑 바꿨잖아요.

주인 : 네?? 그럼 찐빵값을 내세요!

손님 : 아니 아저씨, 먹지도 않은 찐빵 값을 왜 내요?

주인 : &#%$#@*@%

(빵집 주인이 어리둥절 하는 사이 손님은 휙 나가버린다)     


   이게 당시 내가 했던 연극의 대사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그때 연극을 보던 우리 반 애들도 다들 어리둥절, 긴가민가해 했다. 지금 생각을 해봐도 말이 되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헷갈리지 않나? 이런 신통한 이야기를 내가 지어냈을 리는 없고, 아마도 만홧가게에서 본 만화에 나온 이야기이지 않았을까 싶다.     

   3학년까지는 반장 부반장만 뽑았는데, 4학년 때부터는 반장도 뽑고 회장도 따로 뽑았다. 회장은 어린이회의 의장 역할을 하는데, 매주 열리는 학급회의를 운영한다. 나와 기선이가 입후보했고, 내가 당선되어 회장이 되었고, 기선이는 자동으로 부회장이 되었다. 그런데 당선 직후 어린이 회의를 진행하는데 선생님이 기선이와 함께 나와서 진행을 하라는 것이다. ‘회의를 어떻게 둘이 진행하지?’ 나로선 전혀 상상도 못 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상하기는 기선이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하지만 선생님은 멈칫거리는 우리 둘을 불러 떠밀듯이 교탁에 세우고는, 얼른 회의를 진행하라는 거다. 처음부터 둘의 말이 섞여 엉키고, 너무 이상하기도 하고 회의가 진행이 안 된다.

   “선생님, 그냥 기선이가 혼자 하는 게 좋겠어요.”

   난 양보 아닌 양보를 하고,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그리고 교탁 쪽을 바라보았다. 양보심이 발동했다기 보다는 부당한 상황을 만든 선생님에 대한 저항감이 발동했고, ‘그래, 니가 회의를 제대로 할 수 있겠어?’라는 기선이에 대한 오만한 자신감에 기대어, 나의 진가를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나의 의외의 당돌한 제안, 아니 당돌한 행동에 선생님은 살짝 당황하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그래? 그럼, 기선이가 해봐.”

   갑작스럽게 예상치 못한 난감한 상황에 빠진 기선이는 나의 예상대로 회의를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잘 모르고 우물쭈물했다. 순간 교실 분위기가 술렁였다. 선생님 역시 난감했겠지만 그래도 형평상 최소한의 조치가 필요했다 싶었는지 나를 불러냈다.

   “이번엔 창복이가 진행해볼래?”

   나야 3학년 때부터 반장을 하면서 학급회의를 운영해봤던 터라 어려울 리 없으니 그냥 하던 대로 진행했다. 아이들 눈에도 명백하게 비교가 되는 진행이었다. 결국 나의 판단과 계획대로 됐다. 그날의 어정쩡한 회의는 그렇게 끝났다. 그다음부터는 매주 교대로 회의를 진행하는 것으로 정해지고서야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한참이 지나도록 나에게 임명장을 주지 않았다. 이상했다. 보통은 수업 시작 전에 교장선생님 도장이 딱 찍힌 임명장을 주는데 주질 않았다. 문득 기선이에게 주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선이 아버지가 고등학교 선생님이어서 그랬을 거라고 마음속에서 굳히고 있었다. 3학년 때 반장선거 다시 할 때도 별생각이 없었고, 회의를 기선이와 둘이 진행하든 번갈아 진행하든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하지만 임명장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억울했다. 가슴에 커다란 돌이 하나 얹힌 것 같은 답답한 마음이 도무지 떨쳐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선생님을 바로 바라볼 수가 없어 온종일 불편했다. 이러다가 선생님이 내 마음을 눈치채버리면 어쩌나 싶어 내내 불안하고 긴장됐다. 웬만해서는 엄마한테 ‘이런’ 얘기 잘 안 하는데, 나는 엄마에게 털어놨다. 

   “엄마, 너무 이상해. 분명히 내가 뽑혔는데 선생님이 임명장을 안 주셔.”

   “설마 ……, 주겠지. 기다리바라”

   그리고 며칠이 지났나, 엄마는 학교에서 온 나를 부르더니 그날따라 맛있는 먹을거리를 내주며 부산스럽다. ‘엄마가 왜 이러나’ 평소답지 않은 엄마가 수상했다. 엄마는 맛있게 먹고 있는 나에게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엄마도 이건 아니다 싶고 너무 속이 상했지만, 학교에 찾아갈 엄두는 나지 않아, 학교에 잘 가고 여러 선생님을 잘 아는 재명이 엄마에게 의논했나 보다. 재명이 엄마도 그럴 리가 하면서 알아봐 주겠다 했고, 며칠 지나 담임 선생님을 직접 만나서 사실이냐 물었던 거다.

   “재명이 엄마가 선생님한테 따져 물었더니, 선생님이 막 울더래. 어쩔 수 없었데.”

   전후좌우 사정이 어땠는지는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선생님이 울었다는 그 말에, 나는 그만 마음이 풀려버렸다. 엄마는 내 눈치를 살피며 넌 맨날 받는 거잖아 하며 위로했지만, 난 그걸로 이미 괜찮았다. 믿었던 선생님이 이상했는데, 그래서 잘 쳐다보지도 못하고 마음이 내내 불편했는데, 이젠 그러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울었으니까 나에게 잘못했다고 얘기한 거나 마찬가지야.’     


   선생님은 잘 울었다. 한번은 애들이 종을 쳤는데도 놀다가 교실에 늦게 들어온 일이 있었다. 화가 단단히 난, 아니 부러 화를 내는 것 같았다. 난 선생님이 진짜 화가 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늦게 들어온 애들에게 칠판을 마주 보고 칠판에 두 손을 짚으라 하고는 회초리로 종아리를 찰싹찰싹 세대씩 때렸다. 애들은 때릴 때마다 저렇게 아픈가 싶은 정도로 폴짝폴짝 뛰었다. 그렇게 네 명을 차례로 다 때리고 나서 들어가라 하고서는, 선생님은 칠판 쪽으로 돌아서는데 어깨가 들썩였다. 애써 울음소리는 참았지만, 우는 게 다 들렸다. 그때 난 마음이 너무 아팠다. 뭔가 뭉클하면서 가슴이 아렸다.

   우리 반 애들 중 몇 명이 선생님 집에 가서 공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정 몰랐던 나는 ‘나는 왜 안 불러주지’ 했다. 공부라면 반에서 1.2 등인 내가 빠지는 게 이상했다. 밑에 처지는 애들만 따로 불러다 가르치나 했지만, 선생님 집에 가는 애들 이름을 들어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나중에서야 선생님이 집에서 과외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경문이가 세탁소에 와서 나를 불러내더니, 선생님 집에서 과외하고 오늘 길이란다. 항상 동네를 다닐 때 강아지를 안고 다니며 자랑하던 애다. 그리고 경문이 엄마는 가끔 반 전체 애들한테 빵을 하나씩 돌리는 걸로 유명했다. 경문이는 공책에서 쪽지 하나를 꺼내준다. 

   “이거 이번 시험에 꼭 나온대. 선생님이 그랬어.” 

   영칠이도 시험에 나온다며 나에게 종종 알려주곤 했었다. 경문이나 영칠이나 둘 다 참 속없고 착한 애들이었다. 하지만 난, 그 정도는 알려주지 않아도 다 아는 것들이어서 그리 절실하거나 아쉽지 않았다. 걔들은 매일 학교 끝나고 선생님 집에 갈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을 뿐이다. 이영애 선생님의 아들이 참 귀여웠는데. 


#미아리의추억 #오락시간 #회장선거 #과외

류해윤_서당_종이에 아크릴릭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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