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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복 Feb 01. 2023

꼬랑지에 불붙은 송아지

   작은형이 고령 장터에 사는 고모네에 날 두고 혼자 놀러갔을 때 일이었다. 글쎄 형이 고모네 송아지 등에 불을 붙이는 바람에 어린 송아지가 거의 죽다 살아났다는 것이다.

   “아이고 야야, 아무리 애지만도 우째 송아지 등에 불을 놓았을꼬.”

   “아니, 누가요?”

   “누구긴, 이착양반 둘째가 그랬다는 거 아이가?”

   “하이고 얄궂다. 그래도 송아지는 안 죽겄으이 다행이고, 아는 개안타 카능교?”

   어른들이 수군대는 소리를 들었지만,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니 왜 멀쩡할 송아지 등에 불을 질렀을까. 내가 벌인 일도 아니지만, 공연히 나도 움츠러들어 어른들 하는 이야기를 잠자코 들으며 눈치만 보고 있었다. 며칠 후에 작은형이 돌아왔다. 큰 사고를 치고 와 기가 팍 죽었을 테니, 나라도 다정하게 맞이해야지 하고 대청마루로 달려갔다. 아니 그런데 멀쩡했다. 시무룩한 기색은 아예 없고, 무척 반갑게 삽짝문을 밀고 들어서는 것 아닌가.

   마당에 오가던 어른들이 작은형을 발견하고는 슬금슬금 눈길을 주며 키득댄다.

   “장복아, 그래 송아지 등에 불을 놓으니까 잘 타드나?”

   작은형은 그새 집에까지 소문이 다 났나 하는 눈치로 살짝 당황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근데 뭐라고 변명하긴 했는데 그 소리가 제대로 들릴 리 없었다.

   “…… 등에다 한 게 아닌데 ……”

   “형이 멀쩡한 송아지에다가 불 질렀다며? 송아지가 다 타죽을 뻔했다며?”

   나는 동네에 이미 퍼진 심상치 않은 소문을 그대로 전해주면서,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자초지종을 따져 물었다. 작은형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뭐가 잘못 돌아가는 것이 걱정되는지 술술 풀었다.     


   그날따라 고모네 식구들이 모조리 들이고 밭이고 다 나가버려 집이 텅 비었다. 고모네 온 지 하루밖에 안 됐으니 동네 알만한 또래들도 없고, 그렇다고 집 밖에 나와 나다니기도 낯설어 그냥 집안에 죽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마루에 앉아 멍때리고 있는데 송아지 한 마리가 소마구를 어찌 빠져나왔는지 마당에 나와 얼쩡대는 것이 눈에 띄었다. 어미 소는 어른들과 일하러 일찌감치 따라 나간 뒤라 송아지만 소마구에 혼자 있었다.

   “송아지 털이 보드랍고, 반질반질해서 잘 탈 거 같더라고.”

   문득 보송보송한 송아지 털에 불이 붙으면 잘 타려나 생각이 들었다는 거다. 천지 만물이 타들어 갈 것 같은 한여름 날씨에 해는 이미 중천에 떴지, 마당에는 서늘한 그늘 한 점 없이 마른 먼지만 날리던 참이라,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자 마당 한켠 우물 옆에 드럼통 잘라 만든 철판에 걸린 솥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근데, 불은 다 꺼져있었어.”

   오전에 뭣 때문에 불을 땠는지는 몰라도 불길은 거의 다 사위었고, 잔가지에 작은 불씨가 겨우 남아있는 게 보였다. 불붙은 가지가 아니라 불이 다 꺼지고 남은 불씨였다는 사실을 애써 강조했다. 쌀 알갱이만한 불씨가 아롱거리는 가지를 하나 집어 들고 송아지 근처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차마 등에다가 불을 댈 자신은 없어 살랑이는 꼬랑지에 슬쩍 대보았다. 

   “그런데 있잖아, 불씨를 대자마자 꼬랑지 털이 사르륵 타더니 머리카락 타는 냄새가 나는데, 송아지는 그냥 가만히 있더라구. 근데 ……”

   그 순간 불이 소로록 꼬리 윗쪽으로 번지면서 연기가 나자, 송아지는 갑자기 놀래서 소리를 지르며 펄쩍펄쩍 뛰었다. 형도 덩달아 놀랐지만 날뛰는 송아지를 어쩌지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때 마침 참 챙기러 들른 뒷집 아줌마가 송아리 울음소리가 심상치 않아 내다보다가 꼬랑지에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는 놀래서 물 한 바가지를 떠다 냅다 끼얹었다.

   “아이고 이노무 송아지, 이기 무슨 일이고? 와 무단이 꼬랑지에 불이 붙읐으꼬? 볕이 뜨그바서 니 꼬랑지에 불이 붙었나?”

   아줌마는 놀란 송아지를 붙들어 끌어안고 안정을 시킨 다음, 꼬랑지에 된장을 발라서 소마구에 다시 들여보냈다, 가 사건의 전말이었다.      

   도시 애가 시골에 가서, 그것도 처음 가본 낯선 고모네 텅 빈 집안에 혼자 남아 얼마나 심심했을까. 더욱이 그 적막함을 견디기란 무척 힘들었을 거다. 나 역시 시골에 가면, 해 떨어지고 저녁만 먹고 나면 사방천지가 칠흑처럼 어두워지는 것과 동물들 울음소리 외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 적막함이 참으로 견디기 힘들었다. 무섭기 조차했다. 그런데 훤한 낮에도 그 적막함이 재현될 때는 밤보다 더 적막한 기분이 들었다. 시인 이상(李箱)이 <권태>에서 드러낸 한여름 시골 대낮의 무료함이 너무도 이해되고 공감되었다.      


어서 …… 차라리 어두워 버리기나 했으면 좋겠는데 …… 벽촌(僻村)의 여름날은 지리해서 죽겠을 만치 길다. / 동에 팔봉산. 곡선은 왜 저리도 굴곡이 없이 단조로운고? 서를 보아도 벌판, 남을 보아도 벌판, 북을 보아도 벌판. 아, 이 벌판은 어쩌라고 이렇게 한이 없이 늘어 놓였을꼬? 어쩌자고 저렇게까지 똑같이 초록색 하나로 되어먹었노? / 농가가 가운데 길 하나를 두고 좌우로 한 10여 호씩 있다. 휘청거린 소나무 기둥, 흙을 주물로 바른 벽, 강낭대로 둘러싼 울타리, 울타리를 덮은 호박덩굴 모두가 그게 그것 같이 똑같다. / 어제 보던 대싸리나무, 오늘도 보는 김 서방, 내일도 보아야 할 흰둥이 검둥이. 해는 백도 가까운 볕을 지붕에도 벌판에도 뽕나무에도 암탉 꼬랑지에도 내리쪼인다. 아침이나 저녁이나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는 염서(炎署)가 계속이다. (이상의 <권태> 중에서)     


   역시 한여름 땡볕 아래 타들어 가는 열기 속에서 고모네 집안을 꽉 채운 고요함이 견디기 어려웠을 거다. 하지만 작은형은, 암탉 꼬랑지에 내리쪼이는 땡볕을 보고 그저 무료하기만 했던 시인 이상과는 달랐다. 암탉 꼬랑지 대신 송아지 꼬랑지가 눈에 들어왔다. ‘설마 쌀알만 한 불씨 하나로 털이 타겠어?’ 나름 내린다고 내린 판단의 안일함과 혹시 타면 어떻게 탈지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이 맞장구쳐서 벌어진 소란이었다. 고모네 송아지 꼬랑지 그슬린 장난이 산과 들을 건너 할아버지 집으로 건너오면서, 송아지 등에 불붙여 태워죽일 뻔한 소동으로 뻥 튀겨졌을 뿐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궁금했다.


   ‘그래도 그렇지, 송아지 꼬랑지에 불이 붙을까, 가 왜 궁금하지? 아니 궁금하다고 불씨를 갖다 댈 생각은 또 어떻게 하지?’


#미아리의추억 #송아지 #작은형 #이상 #권태

류해윤_암소에 송아지_종이에 아크릴릭_115*82c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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