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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복 Jan 05. 2022

선경이와 미선이

   중학생이 돼서야 여자아이들에 대한 묘한 감정과 야릇한 조바심 같은 게 생겼다. 선경이한테 그랬다. 선경이는 키가 좀 작은 편이었고, 가무잡잡한 얼굴이 무척 예뻤다. 별명이 깜치였다. 깜치는 언제나 새침해서 말을 붙이기가 참 어려웠다. 어쩌다 가끔 웃으면, 나한테 웃어준 것도 아닌데 그렇게 예뻤다.   

   선경이는 동네 과외방을 같이 다니면서 알게 되었다. 남녀공학이던 국민학교 저학년 때도 한 반이었던 적이 없었다. 사는 집도 큰길 건너 윗동네여서 평소에 마주칠 일이 없었다. 과외방에서 첫눈에 반한 셈이었다. 수업할 때도 남학생과 여학생 간의 ‘내외’가 분명했다. 한 줄에 네 명이 앉는 책상이었지만 서로 섞이는 법이 없었다. 난 항상 맨 뒷줄 책상에 가서 앉았다. 그래야 뒤통수라도 볼 수 있으니까.

   그런데 재명이가 나를 도발했다. 재명이는 공부도 잘했고 적극적이었다. 거칠 것이 없는 활달한 아이였다. 재명이 엄마는 학교에도 자주 갔고 선생님들하고도 친했다. 재명이는 외아들이었다. 위로 누나 둘 아래로 여동생 둘이 있었다.

   어느 날 재명이가 과외방의 암묵적인 ‘규칙’을 깼다. 여자애들 책상으로 성큼 넘어가 “오늘은 여기서 공부해야지” 하며 선경이 옆에 앉았다. 흠칫 놀라는 선경이에게 바싹 달라붙어 뭐라 뭐라 말을 걸었다. 치근덕댔다. 머리칼이 쭈뼛 섰다. 가슴이 쿵쾅거리며 화가 치미는데 뭘 어쩌지 못했다. 그날 이후 마음에 끌탕을 했다. 기습적으로 그것도 반칙으로 쳐들어온 악당을 몰아내야 하는데 뾰족한 수가 없었다. 선경이에게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며칠을 별렀지만 단둘이 있는 상황이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날도 포기하고 털레털레 집으로 내려오는데, 어라? 선경이가 나를 따라오는 게 아닌가. 걔네 집은 반대쪽이었다. 가슴이 뛰면서 머릿속이 하얘졌다. 뒤돌아보지도 못하고 기척을 놓칠세라 온 신경을 뒤꼭지에  모은 채 앞으로 걸어갔다. 어? 벌써 우리 집 세탁소가 보였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다가 그만 획 돌아섰다.   

   “어……, 어디가?” 

   “어? 엄마 심부름 가.” 

   “어디로……?” 

   “어, 조 아래 친척 집에.”

   두 마디씩 주고받고는 침묵이 흘렀다. 머릿속이 뒤죽박죽되어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몰랐다. 선경이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잘 있어~”

   “어? 아…… 그래…… 잘 가.” 

   이게 끝이었다! 우두커니 서서 그 애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애가 돌아볼 수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자, 난 곧바로 세탁소 가게 안으로 쑥 들어갔다.   


   미선이는 친하게 지낸 ‘여사친’이었다. 미선이도 과외방에서 만났는데 중학교 내내 친했다. 미선이는 잘 웃었다. 웃으면 눈두덩이 도톰해졌다. 눈은 그 안으로 잠겨 거의 안 보였다. 귀여웠다. 미선이와는 동네 빵집도 가끔 갈 정도로 스스럼이 없었다. 걔네 집에도 잘 놀러 갔다. 정환이와 형기 형하고도 친했기 때문에 같이 놀러 갔다. 그 집에 가면 미선이 엄마가 무척 반겼다. 갈 때마다 먹을 거를 내주며 “재밌게 놀다 가라~” 말하고는 총총 사라지셨다. 항상 명랑하고 쾌활한 엄마였다. 어떨 때는 애들 같았다.

   두 살 터울인 미선이 오빠 민규 형은 정환이, 형기 형, 나 이렇게 셋이 가면 남자들끼리 놀고 싶어 했다. 미선이 아빠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었는데 일찍 돌아가셨다고 했다. 가끔 민규 형이 서랍에서 아버지가 남긴 카메라를 꺼내 보여주었다. 영화 찍을 때 쓰는 촬영 카메라라며 애지중지했다. 아버지를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어떨 때는 필름이 감겨있는 롤을 꺼내 방에 커튼을 치고 소형 영사기에 걸어서 틀어주었다. 그저 신기했다. 여자애들에게 새 나가지 않도록 꽁꽁 단속을 하고 나서 야한 영 틀어주기도 했다.

   미선이는 노래를 잘했다. 외국 노래도 많이 알고 잘 불렀다. 지금도 기억나는 노래는 홍콩 가수 진추하(陳秋霞)의 ‘One Summmer Night’ 과 ‘Graduation Tears’다. <사랑의 스잔나>라는 영화의 주제곡으로 슬픈 노래다. 철이 들어서 다시 들어도 마음이 짠해지는 그런 노래였다. 미선이는 이 노래를 어찌나 잘 불렀던지, 매번 졸라서 듣곤 했다. 방학이 되면 문지방이 닳도록 뻔질나게 미선이네 집에 놀러 갔다. 롤러 스케이트장에도 같이 가고 영화도 같이 보러 가며 잘 어울렸다.  


   그랬는데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뜸해져 잘 안 가게 되었다. 난 신일고로 미선이는 정의여고로 진학한 것 말고 특별한 사건이나 이유가 없었는데 그렇게 됐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르고 내가 30대 후반이었을 즈음 우연히 소식을 들었다. 울산 현대중공업에 다니고 있었던 민규 형의 연락처를 어찌어찌 알아서 당시에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뚝뚝 들리던 D.D.D 공중전화를 걸었다. 특유의 쉰 목소리가 저편에서 흘러나왔다. 

   “직장도 잘 다니고, 집도 있고, 이만하면 자리 잡았어.” 

   길게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지만 상당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가장의 역할을 잘하고 있다는 걸로 들렸다. 

   “미선이도 결혼했고.” 

   궁금할 거라 여겼는지 묻기도 전에 안부를 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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