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솔직히 말해보세요.
엄마가 사실은 잘 보이는데 우리에게 거짓말하고 있는 거 아닐까? 진지하게 의심한 적이 있었다. 엄마는 식사 중에 먹다가 입안을 탈출한 음식물을 정말 잘 잡아내셨는데 거의 흘리자마자 "흘렸다." 말씀하시면서 닦으라고 휴지를 내미셨다. 특히 아빠와 언니는 턱에 구멍이 났나 싶게 자주 흘리는 편이었는데(부녀가 사이좋게 부정교합이라 그랬다. TMI지만 언니는 교정 후 확실히 덜 흘리더라.) 네 식구가 함께 식사를 하면 엄마한테 흘렸다고 핀잔 듣기 경쟁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 우리끼리 합리적인 의심을 하는 거다. 엄마는 사실 보이는데 지금까지 연기하는 것 같다고.
길을 걷다 보면 깊게 파이거나 물 웅덩이가 진 곳이 있다. 항상 손을 잡고 나란히 걸으며 험한 곳을 피해 가라 말해주면 좋겠지만 한 사람씩 걸어야 하는 좁은 길이 있을 때도 있고 우산을 각자 들고 가야 할 정도로 비가 많이 올 때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따로 걷게 되는데 뒤에서 걷는 엄마가 신경 쓰여서 엄마한테 "엄마 내가 간 뒤로만 걸어오면 돼요." 말씀드린다. 대답이 돌아오면 나도 편한 마음으로 그때부터 앞을 보며 걷는데 한참 걷다 뒤에서 갑자기 악 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면 내가 걸은 방향에서 벗어나 물 웅덩이를 밟은 엄마가 보인다. 아니 내 뒤로 걸으라니까 거긴 왜 가있냐고 화내도 소용없다. 머쓱해하면서도 할 말은 다 해야 하는 엄마 때문이다. "아니 나도 발 달려있으니깐... 없는 줄 알았는 데 있네."
이럴 땐 내가 더 섬세하게 살펴야지 싶은데 같이 나란히 갈 때는 또 이상하다. 웅덩이가 있거나 움푹 들어가 다치기 쉬운 곳을 말씀드리면 이미 다 알고 계신다.
"엄마, 저기 물 있어요."
"알아."
"엄마, 파였어요."
"알고 있어."
그런데 이상하게 한 번 놓쳐서 말 안 해주면 움푹 한 곳을 밟아 허리가 삐끗하신다. 대체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