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딱 벗겨 쫓겨났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파트로 이사오기 전까지 우리 식구는 주택에 살았다. 단독 주택은 아니고 1층에 두 살림, 2층에 두 살림이 사는 세미 주택 느낌인 곳이었다.
이 세미 주태 전에는 이 집의 바로 옆에 살았었다. 엄마는 햇빛이 잘 안 드는 현재 집과 달리 동향이라 햇빛을 환히 받고 있는 세미 주택이 참 부러웠다고 한다. 햇빛 덕에 간택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우리의 마지막 주택.
집을 고를 때 햇빛이 중요한 요소이긴 한데, 다른 중요한 요소도 있다. 이를테면 안전 같은.
마지막 주택은 햇빛이 잘 든다는 점 빼고 단점이 더 많았다. 바퀴벌레가 많았고 햇빛이 강하게 들어오는 부분을 제외한 응달진 부분은 곰팡이가 슬었다. 특히 계단이 압권이었는데 1층에서 2층을 올라가는 계단은 대리석라 미끌했고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한 계단이 두 개의 계단을 합친 듯한 높이였다. 어른들도 조심해서 난간을 잡고 다녔는데 5-6살 꼬맹이들은 오죽했을까. 아니나 다를까 언니가 옥상에서 내려오다가 미끄러져서 허리를 다친 후로는 어른 동반 없이는 옥상은 올라갈 수 없는 곳이 되다.
아파트 단지 내에 놀이터가 없어지는 요즘과 달리 내가 어렸을 땐 동네 애들 모두 놀이터에 나와서 놀고 친구 집에 우르르 몰려 놀러 가곤 했다. 그날은 왜 그랬을까.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우리 집에 친구들이 왔고 갑자기 엄마의 허락 없이 단체로 옥상에 올라가는 상황이 발생했다. 고민할 거 없이 거기에 끼어서 같이 올라갔다가 나중에 내려와서 혼나면 되는데 이때부터 착한 어린이이고 싶었나. 그 와중에 엄마한테 허락을 받으러 갔다.
당연히 엄마는 퇴짜를 놨다. 아니, 내가 멋대로 올라간 것도 아니고 확인까지 받으러 왔는데 못 올라가게 한다고? 예상과 다른 전개에 억울했던 나는 엄마 옆에서 계속 징징거렸다. 떼를 썼지만 역시나 대나무 같은 그녀에게 통하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삐져서 방 어딘가에 숨어있었을 텐데 다들 올라간 곳을 나만 못 올라간다는 억울함에 그날따라 오래 징징거렸다. 엄마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어렸을 때부터 자주 삐지고 집 나가겠다고 짐도 여러 번 싸 온 나였지만(유치원 가방에 내가 좋아하는 인형, 옷가지들을 챙겨서 현관 앞에 내놨었다. 문 밖으론 발 한자국도 내딛지 않으면서 집 나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 식구 중 누구도 나를 붙잡지 않았다.) 쫓겨나본 적은 처음이었다. 엄마 아빠가 사준 거 다 내놓고 나가라며 홀딱 벗겨진 채로. 잔인한 아줌마는 팬티에 머리끈까지 다 빼었아서 나는 원시인 그 자체의 몰골로 머리를 헝크러트린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린 나이지만 창피한 줄은 알아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 보일러를 가리는 판자 뒤로 숨어 들어갔다. 오래 지나지 않아 옥상에 흥미가 식은 친구들이 내려와 저들끼리 다른 데로 가 버렸고 난 그때까지 판자 뒤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 후에 집에 들어가 잔인한 아줌마 아니 엄마 품에 안겨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선을 넘기 전까진 한없이 너그럽고 친구 같지만 도를 넘으면 가차 없었다. 내가 그래서 엄마한테 별일 아닌 일에 억울한 게 불쑥 올라오고 그런가 보다. 가끔씩 엄마한테 왜 그랬냐고 따지면 '미안하다. 하지만 우리가 아이 키울 때는 그런 게 훈육이었다. 사랑의 매도 있지 않았냐. 앞으로 네 자식 나으면 엄마처럼 키우지 말아라.' 하는 로봇 같은 멘트가 돌아온다. 말하면 시원하지도 않고 괜히 열만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