깍둑감자볶음밥
요리를 잘하는데 필요한 요소는 뭘까. 내가 생각하기에 요리는 레시피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감각도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이 감각은 요리를 해보면서 생기기도 하고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요리를 곧 잘하는 편인데, 자의적으로는 쿠키와 빵 만드는 걸 좋아해서 티라미수, 치즈케이크, 쿠키 등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제과를 즐겼고 타의적으로는 아빠가 출근하기 전 드실 반찬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요리 실력이 늘 수밖에 없었다. 친할머니께서는 까다로운 입맛의 소유자신데 그걸 닮았고, 손맛 좋은 이모할머니를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고로 요리를 잘하기 위해서는 선천적인 감각과 후천적인 노력 둘 다 필요하다.(그렇다고 내가 음식점을 차릴 정도로 잘한다는 건 아니다.) 반면, 엄마는 레시피를 읽을 수 없어서 요리를 도전하지 못했고 접하지 못해 미지의 세계라는 장벽이 생겨 두려움만 커졌다. 자연히 후천적인 감각이 생길 수 없었고 설상가상 외할머니께서 요리를 잘 못하셔서 요리에 대한 직감을 물려받지도 못했다. 서론이 길었다. 우리 엄마는 요리를 잘 못한다.
엄마는 요리 실력이 크게 필요하지 않은 요리 위주로 식사를 차렸다. 그리고 할머니들께서 해주신 반찬들이 식탁의 나머지를 메웠다. 주로 먹은 요리는 간장계란밥, 된장국, 오이무침, 상추 겉절이처럼 한식 위주였다. 다행히 아빠는 김치만 있어도 식사가 가능한 스타일이고 언니와 나는 급식세대라 한 끼는 급식을 먹었다. 저녁식사는 가끔씩 시켜 먹었고. 이렇게 어찌어찌 살았던 것 같다.(그 사이에서 엄마는 집에 있는 음식 위주로 드셔서 질리셨을 테지만.)
할 수 있는 요리에서 벗어난 일탈도 가끔씩 시도됐다. 그중 하나가 야채볶음밥이었다. 이모가 통화로 애들한테 볶음밥을 해줬다고 얘기를 하면 엄마는 그게 그렇게 부러웠다고 한다. 그래서 시도한 감자, 애호박, 당근을 넣은 볶음밥.
딱딱한 구황작물이 익으려면 잘게 잘라 볶아야 한다. 이건 상식적인 부분인데 엄마에겐 그 상식이 통하지 않았다. 왜냐. 얼마나 작은 크기인지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카레를 하듯이 자른 감자와 당근이 기름에 볶으면서 익기를 기대한다면 말이 안 되지만 엄마는 그걸 기대했다. 나도 부디 그것이 익기를 기대했다. 엄마의 기분이 나빠지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작은 기대를 저버리고 야채는 익지 않았다. 이미 밥까지 넣어 볶고 있는 상황이라 태울 수는 없어서 마지못해 볶음밥을 가스레인지 위에서 내렸다. 감자는 사과처럼 사각 했고 아무리 한국인이라도 다진 마늘을 얼마나 때려 넣었는지 아린 맛이 상당했다. 언니는 간장계란밥은 맛있다며 시도 때도 없이 먹던 주제에 눈치는 어디다 팔아치웠는지 한 입 먹고 수저를 내려놓았다. 차마 나까지 못 먹겠다 할 수 없어서 사각이는 소리를 최대한 입 속으로 숨기며 몇 번 더 떠먹었다. 엄마는 이날 이후 다시는 볶음밥을 시도하지 않았다.
최근에 소고기야채볶음밥을 해 먹었다. 어렸을 때 먹었던 사각 했던 감자 볶음밥이 생각났다. 지금의 내가 과거로 날아가 뚝딱 요리를 해주고 돌아온다면 우리 엄마의 삶이 덜 팍팍했을 텐데. 너희 어렸을 때 이 볶음밥을 얼마나 해주고 싶었는지 모른다며 속상해하는 엄마의 밥그릇에 고봉으로 볶음밥을 퍼서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