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나의 첫사랑

- 이 세상 가장 귀한 선물에게 바치는 마음 -

by 세우는

애증의 존재였던 엄마가 떠났다.

아무 말도 없이, 그렇게 떠나버렸다. 언제나 일방적으로 말을 건네던 그녀는 마지막까지도 인사도 전하지 못한 채, 아무 미련도 없는 듯 세상에 작별을 고했다.


무더운 여름이었다.

경미한 교통사고로 입원한 엄마는 당뇨 탓에 회복이 더뎠다. 휴가철이라 보험사 직원을 기다리던 일주일 사이, 원인 모를 패혈증에 감염되었다. 주일에는 외출을 허락받아 함께 예배를 드렸지만, 그 다음날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었다. 화요일, 엄마는 그렇게 내 결혼식을 열흘 남기고 곁을 떠났다. 결혼 후, 밝은 빛으로 물들 것만 같았던 내 세상은 온통 잿빛이 되어 버렸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아빠가 운영하던 사업이 무너졌다. 지역에서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명성을 얻던 아빠는 무리한 확장과 잘못된 빚보증으로 벼랑 끝에 몰렸다. 결국 견디지 못한 아빠는 잠적했고, 가족들은 남겨진 빚과 독촉의 무게를 대신 짊어져야 했다.


평생 아빠 덕에 윤택하게 살았던 나에게 ‘가난’은 낯설고 잔인한 이름이었다. 가난은 적응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대학에 입학 1학기 이후, 집에서 용돈이란 걸 받아본 기억이 없다. 오히려 공부와 일을 병행하며, 간신히 가족의 끼니를 이어 가기 바빴다. 사회 초년생인 내가 벌 수 있는 돈에는 한계가 있었다. 갚아야 할 빚과 각종 독촉 고지서는 눈덩이처럼 불어만 갔다. 가족 모두가 독촉과 불안의 짐을 내려놓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 그 지난한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돌볼 여유조차 없었다. 각자 ‘가족’을 위해 버텼지만, 날 선 감정들로 서로를 상처 내며 살아갔다. 가난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던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빛나는 인생의 2막을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보다 먼저 진짜 빛을 향해 떠나셨다.


너무 슬프고 아팠다. 서로 돌보지 못한 지난날이, 다투고 상처 주던 시간이 가슴을 찔렀다. 사과하고 싶었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 말이 어찌나 어려웠던지, 왜 그렇게 인색했던지.


이미 심정지 상태의 엄마에게 의사가 마지막 인사를 전하라 했을 때, 그제야 나는 엄마의 귀에 대고 “미안해, 사랑해…” 그 말만을 연신 외치며 울부짖었다. 그렇게 뒤늦게, 너무 늦게 사랑을 고백했다.




엄마를 떠나보낸 뒤, 찬란해야 할 인생의 2막은 짙은 회색으로 시작되었다. 결혼 후 타지로 이사 오니, 아는 사람이라고는 남편뿐이었다. 남편이 출근하면 하루 종일 엄마의 죽음이 떠올랐다. 서로에게 상처 주던 시간들이 자꾸 떠올라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생명이 찾아왔다.

나의 첫사랑, 나의 딸. 그 작디작은 존재가 짙은 우울의 늪에서 나를 끌어내 주었다. 그 존재 자체가 내게 다시 생명을 잇대어 주었다. ‘엄마’라는 또 다른 이름을 주며, 사랑을 배우고 책임을 배우게 했다. 그러나 초보 엄마였던 나는 많은 것이 서툴렀다. 최선을 다했지만 실수도 많았고, 모르는 것도 많았다. 둘째를 낳고 나니, 첫째가 너무나 커 보였다. 아이다움 속의 실수를 품기보다, 나의 미숙함으로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내기도 했다. 훗날 그 시절의 아린 기억들을 모조리 찾아 꺼내어 사과했지만, 아직도 마음 한구석엔 ‘조금 더 품어줄 걸’ 하는 후회와 자책이 남아있다.


기질적으로 내성적인 아이는 마음 표현이 서툴렀다. 어린 날, 속상하고 아픈 마음을 홀로 삼켰을 그 시절을 떠올리면 마음이 저릿하고 먹먹하다.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 시절로 돌아가 아이를 있는 힘껏 안아주고 싶다. 조금 더 유연한 마음으로, 아이의 세상을 바라보며 함께 자라주고 싶다.




이제 열다섯 살, 중학교 2학년이 된 딸.

사춘기의 파도가 찾아와 감정이 요동칠 때면 나도 종종 흔들린다. 그럼에도 건강하게 자기 시절을 지나고 있는 딸을 보면 그 또한 감사하다. 슬플 때, 화날 때, 짜증 날 때, 속상하고 눈물 날 때 엄마에게 마음껏 쏟아내도 괜찮다고 호기롭게 말하지만, 나 역시 여전히 미숙한 인간이라 그 감정을 온전히 수용해 주지 못할 때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단둘이 데이트를 한다. 별다른 대화가 없어도, 함께 걷고 웃으며 그저 ‘같이 있음’으로 서로를 느낀다. 그 소소한 시간들이 쌓여 우리 모녀의 추억이 된다.




오늘, 딸과 산책을 하던 길.

다 갠 줄 알았던 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우산 하나 없이 그 비를 맞으며 걸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오래, 딸 곁에 머물고 싶다.’

고단했고, 고달팠고, 고독했던 지난날의 삶이 너무도 무거웠기에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은 없었다. 어쩌면 훌훌 털어내고 떠날 그날을 조용히 그려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오늘 문득, 살아 있는 이 하루가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이 땅에서의 시간을 조금 더 오래 살아보고 싶다는 아주 작은 소망이 마음속에 피어올랐다.


예상하지 못한 인생의 비바람의 시간을 마주하게 된다면 딸 곁에서 그 비를 함께 맞으며 끝까지 그 길을 동행해 주리라. 혼자 그 길을 걷게 하지 않고 싶다.


“매일 밤 내게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딸아, 너는 신이 내게 주신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선물이란다. 내 생명 다해 너를 사랑한다. 너의 엄마로 살아갈 수 있음이 내 인생의 가장 큰 감사야. 언제나 빛과 함께, 엄마가 네 곁에 있을게. 사랑한다, 나의 영원한 첫사랑!”


이제 나는 안다.

살아가는 동안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음이 이 세상에서 얻은 가장 큰 선물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선물이 바로, 내 딸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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