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 없는 번개들
솔로트립
만약 우리가 한 곳에 머물러 있도록 창조되었다면,
우리에게는 발 대신에 뿌리가 있었을 것이다.
-레이첼 월친
저녁에 사관들의 단체회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부원들만 요리를 해주면 되고 그마저도 외출자 때문에 몇 안 되니 내게 점심 후에 외출을 해도 된다고 했다. 저번에는 히치하이킹에 쭈뼛댔으나 이번에는 달랐다.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빨간불에 정차되어 있는 모든 차들에 잡상인처럼 맥주를 들이밀며 질척대었다. 30분 넘게 걸리던 지난번과는 다르게 단 5분 만에 히치하이킹에 성공하였다. 그게 무어든 경험이란 참 소중한 것 같다. 오늘은 행운의 날인 거 같다. 뜻밖의 모험을 떠날 준비가 되었다.
저녁 일을 마친 후에는 힘이 없는데 오늘은 점심일만 했고 시티센터에 도착하니 아직 3시밖에 되지 않았다. 8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평소에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던 관광지를 가기로 했다. 식물원에 가서 꽃과 식물들, 인공 폭포를 봤다. 아름답지만 식물원 밖의 옆에 조용한 공원의 호숫가가 더 좋았다. 공원을 거닐다 보니 박람회장 같은 곳의 3층 옥상에 잔디밭이 있었고 다양한 국적의 많은 사람들이 누워있었다. 노을이 지고 있었고 내려다보이는 바다에는 작은 배들이 있었다. 몇몇 싱가포리언이 한가로이 연을 날리고 있었다. 나는 한가한 곳으로 이동하거나 긴 시간을 이동할 때는 항상 책을 들고 다닌다. 그날은 선상문고에서 들고 온 2003년 이상문학상 수상모음집을 들고 있었다. 잔디밭에 엎드려 책을 읽으며 압도적 한가함을 느꼈다.
3만 원의 입장료를 내야 되는 마리나베이샌즈 전망대에 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보면서 사진을 찍으려 핸드폰을 꺼내려고 한참을 주머니 속에서 허우적댔지만 찾아지지 않았다. 바지 주머니가 시원치 않은 상태였고 핸드폰을 포함한 주머니에 있던 대부분의 물건이 빠져서 잔디밭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핸드폰을 집어 올리는 순간 아일랜드에는 Deep pocket, short arms라는 속담이 있다고 알려준 아이리시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깊은 주머니와 짧은 팔이라는 뜻으로 돈을 잘 사용하지 않는 구두쇠를 칭하는 속담이다. 돈 좀 적당히 아끼고 삶을 좀 윤택하게 살자는 생각이 들었고 전망대에 오르기로 결심했다.
마리나베이샌즈호텔 38층에 있는 전망대에 갔다. 하늘에서 보는 싱가포르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도심은 화려했지만 그보다 더 화려한 네온사인을 가진 도시를 스무 군데는 가봤기에 큰 감흥이 없었다. 오히려 바다 쪽이 인상 깊었다. 수백 척의 배들이 앵커를 내리고 주차되어 있었다. 모든 배에는 주황색 조명이 켜져 있어 중국 삼국지의 적벽대전으로 타임리프를 한 듯했다. 밤의 어둠은 빈 공간을 상상력으로 채워준다는 재미가 있다. 그 빈 공간에 나는 우주를 집어넣었고 모든 배를 우주선으로 만들었다. 한 1000년 후 즈음에는 싱가포르의 대기권이 우주 교통의 요충 정거장이 되어 지금 묶여있는 배처럼 많은 숫자의 우주선들이 주차되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모두가 배를 바라볼 때 나 혼자만 우주를 본 듯한 망상이 들었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금융가의 빌딩숲을 걷고 있을 때였다. 홍콩 혹은 싱가포르인 금융권 종사자 특유의 인상을 발견했다. 동남아시아인의 구릿빛 피부색에 이목구비는 동아시아인의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다. 단정한 정장 셔츠를 입고 있지만, 몸에 딱 달라붙고 몸은 잘 관리되어 있다. 머리는 전반적으로 단정하고 짧고 앞머리를 멋지게 왼쪽으로 넘긴다. 검은색 뿔테 안경을 착용하여 스마트해 보이는 인상의 정점을 찍는다.
나도 경제학도로써 한때는 여의도와 월가의 증권맨을 꿈꾸었고 그때 상상하던 나의 이미지였다. 나는 같은 장소에 있지만 그들에게 녹아들 수 없는 이방인이 된 느낌을 강렬하게 받았다. 마치 내가 금융이나 은행가에 도전도 하기 전에 그쪽에는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처럼.
그 후로는 스스로가 그곳에서 의미 없이 방황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항상 여행이나 방황을 할 때 꿈과 사랑, 이색적인 경험이나 최소한 맛 집 등의 무언가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더 이상은 방황의 이유가 없었고 단지 배속에 있기 싫어 시내로 기어 나와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그만둘 때였다. 통차를 타고 다시 배로 돌아왔다. 배가 보이니 안도가 되기 시작됐다. 빨리 갱웨이를 타고 올라가 배에서 쉬고 싶었다.
군 복무시절 GP에 있었을 때 소초를 방문한 중령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의 집이 어딘지 소대원 한 명 한 명에게 물어봤다. 어느 친구는 동향 사람이라고 초콜릿을 나눠줬다. 그리고 너희 집은 243GP라며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을 두어야 정신도 마음도 건강해질 거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한 말을 10년이 지난 오늘 이해하게 되었다. 분명 무스카트호가 집은 아니다 하지만 집이라고 여겨야 내 삶이 나아지고 그 속에 있는 내가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처음 외출에서 복귀할 때는 배가 보이면 군대에서 휴가 복귀한 것처럼 지긋지긋한 곳에 다시 왔다고 느껴졌는데, 그날은 집에 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 후로 내가 마음만 먹으면 한두 번 정도는 더 나갈 수 있었겠지만, 나는 나가지 않았다. 밖에서 어설픈 관광객 흉내를 내느니 마음을 배에 두고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아쉽게도 그날은 중요한 깨달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방문을 열라고 했는데 열쇠가 없었다. 하하. 당직자에게 마스터키를 받아 잠긴 문을 열었다. 잠겨있는 문을 마스터키로 열고 들어갔지만, 모순적이게도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방 안에 열쇠가 있는지 찾아봤다. 역시나 없었다. 기억을 되짚어보니 잔디밭에서 누워있을 때 주머니에서 빠져나왔을게 분명했다. 최악의 상황들을 떠올랐다. 예전에 어느 호텔에서는 키를 분실하면 100만 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는 안내를 들었다. 차악은 경위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내게 엄청난 페널티가 주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잔디밭에서 잠을 청하는 심정으로 불안한 밤을 보냈다. 많이 불안했는지 꿈에서는 당시 친했던 당직사관에게 비밀로 해달라고 하고 끝까지 모른 척 행동하는 계획을 짜기도 했다. 다음 날 조리장, 가스장에게 열쇠 분실에 대해 보고했는데 스페어키가 많다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천만다행이었다.
LNG선의 단점 중 하나는 상륙이 불가하다는 것인데 싱가포르라는 특수한 도크 경험을 통해 해상의 요충지, 태평양과 인도양의 관문, 동양과 서양의 조화 큰 해외 문물을 경험하고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과 배가 환골탈태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도크 경험과는 별개로 8번의 외출기간 동안 싱가포르에서 대도시의 이점이나 휴양 등으로는 다시 방문하고 싶을 정도의 매력은 느끼지 못했다. 오직 관광을 목적으로는 다시 오지 않을 거 같다. 다만 일로는 다시 올 거라는 예감이 든다. 그때는 원양 상선의 선원으로써가 아닌 비행기의 부기장으로써 직접 조종해서 올 것 같다.
도크 기간 동안의 배의 가장 큰 변화는 선체와 갑판 위 모든 부품들에 대해 새로 페인트칠을 했다는 것이었다. 페인트칠도 갑판부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우선 평소에는 바닷속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선체 아래쪽 부분에 따개비나 홍합 등의 갑각류가 붙어있는데 스크래퍼나 고압수로 제거했다고 했다. 이후에는 그라인더로 녹을 갈아내고 페인트 칠을 했다고 한다. 녹 바로 위에 페인트칠하지 않는 이유는 녹 위에 페인트칠을 하면 얼마 안 가서 녹이 페인트를 뚫고 나오거나 쉽게 페인트칠이 벗겨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외부 작업자들이 사다리차를 타고 일일이 수작업으로 선체 페인트칠을 했다. 방수 페인트 값만 수억이 든다고 했다. 힘든 작업이었다고 하지만 그 결과 배는 엄청 잘생겨졌다. 수면에 잠기는 부분의 선체는 어두운 빨간색이고 위쪽 선체는 검은색이었다. 배의 오른쪽 가슴 부분에는 무스카트 MUSCAT라는 한글과 영어가 써져 있는 명찰을 달고 배의 디자인을 위해서인지 회사의 심볼과 세 개의 희고 긴 선도 흰색으로 칠했다. 갑판 위의 탱크는 베이지색으로 색칠이 되었고 굴뚝이나 메니폴드 같은 나머지 장치는 흰색으로 칠해졌다. 그 색이 너무 희어 푸른 바다 위에 떠 있을 때는 왠지 모르게 아테네 인근에 있는 에기니 섬에서 마주친 마을이 떠올랐다. 2년 전 이맘때 즈음 방문하여 한가롭게 걸었던 당시의 그 풍경이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듯했다.
배를 한눈에 담으면 물살을 잘 가를 것 같은 특유의 유선형과 투톤의 칼라의 선체는 카리스마 넘치는 백상아리를 보는 듯했다. 공교롭게도 배가 그곳에 살고 있는 그 어떤 선원보다 잘생겨 보였다. 하루에 100km를 이동하는 백상아리는 수족관에서 기를 수 없다고 한다. 답답해서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4주간의 수리기간을 거친 후 배는 다시 대양으로 나갈 때가 되었다. 배는 오랫동안 묶여있어 답답해 보였다. 무스카트호는 싱가포르를 떠나 다시 대양을 나아갈 준비가 되어 보였고 나도 다시 바다로, 목적지로 나갈 준비가 되었다.
천둥 없는 번개들
나는 진정 나의 내부에서
스스로 용솟음처 나오는 것만을 살려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왜 그리도 어려웠던 것일까?
-헤르만헤세 [데미안]
내가 갑판에 나왔을 때는 이미 해가 바다 뒤로 넘어간 후였다. 여러 마리의 양들이 일렬로 나란히 서 있는 것처럼 뭉게구름이 낮게 떠 있었다. 해가 뱅골만에 남기고 간 노을에 비친 붉은 구름들과 노을로부터 멀어진 검은 구름들이 빛이 닿는 하늘을 기점으로 대치하고 있는 듯하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빛이 닿는 하늘이 줄어들고 빨간 구름들이 조금씩 흑색 구름들로 바뀌며 어둠이 빛을 압도해 갔다. 그 압도적인 광경을 오직 신과 나만이 바라보고 있었다. 신은 자신의 신전에서 그리고 나는 무스카트호의 포트(좌현)에서 눈에 담고 있었다. 스타보드(우현) 쪽에 있는 내 방의 거주구로 들어가려 하는데 배의 오른쪽 뒤편 저 멀리에 있는 구름이 순간 밝게 빛났다. 신의 장난인지 의아해하고 있을 때 다시금 검회색 구름을 보라색 물감이 한 방울 섞인 흰 번개가 가르고 있었다.
내 기억 속 번개는 찰나였다. 하지만 뇌우 속 번개는 멈춤이 없었다. 사진이 이어져서 동영상이 되는 것처럼 그 찰나가 이어져 연속성을 지니게 된 것처럼 번개가 구름 속에서 계속 내리쳐졌다. 아무것도 막을 수 없고 스스로도 멈출 수 없는 번개가 구름 속을 헤집으며 계속 돌아다니고 있었다.
베네수엘라의 카타툼보에서는 매일 밤 10시간 동안 번개가 이어진다는 직접 보고는 믿지 못할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끊이지 않는 번개를 두 눈으로 직접 보니 이성이나 논리 따위로 납득이 가지 않는 현상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흑조 이론이 떠올랐다. 17세기의 유럽에는 백조밖에 없었다. 1697년에 호주의 탐험가인 윌리엄 뎀피어가 호주 서부에서 흑조를 보고 발표하였다. 많은 이들이 흑조를 믿지 못해 충격을 받았고, 그 이후로 불가능한 일이 가능할 수 있다는 생각을 흑조 사건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세상은 넓고 눈으로 봐도 믿기 힘든 일이 천지에서 생각보다 많이 발현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신기하게도 번개의 짝꿍인 천둥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천둥소리는 번개가 발생한 지점에서 30km까지 들린다고 한다. 선교에서의 시야는 약 20마일(32km) 정도라고 했는데 하늘에 떠있기 때문에 더 멀리까지 볼 수 있는 것 같다. 멈추지 않는 번개가 돌아다니고 있을 정도의 크고 강력한 구름이 작게 보일 정도였으니 그 이상 떨어져 있다는 게 납득이 간다. 도심에서는 건물에 시야가 가려져 번개 없는 천둥을 만나본 적도 있지만, 천둥 없는 번개는 처음이었다. 만약 내가 저 마블러스한(초자연적인) 구름 바로 아래 있었다면 내가 느끼는 감상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경이나 압도라는 표현이 아닌 재앙이나 종말 같은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제우스에 도전했다가 바다에 수천 개의 번개가 꽂히는 보복을 당하는 듯하기도 했다. 동시에 그 속에 들어갔을 때에 대한 호기심이 일기도 했다. 문명이 임의로 정한 시간으로 십 분 정도 번개를 바라본 것 같았지만 시계를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공부할 때는 시간이 천천히 가는데 또 이럴 때는 시간이 빨리 가는 것을 보면 21세기 문명의 시계는 고장 난 것이 틀림없다. 나의 정신이 번개에 매료되어 육신이 거주구로 들어가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갑판에 서있는 동안 과거의 기억들이 번개처럼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노을이 완전히 사라졌고 밤이 찾아왔다. 배가 경로를 바꾼 것인지 왼쪽 뒤편에 있던 구름이 뒤쪽 정면으로 와서 번개를 만들고 있다. 뒤쪽에는 저렇게 난리인데 머리 위 하늘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태연하게도 별로 가득 차있었다. 구름의 목적지도 아라비안해인지 구름은 세 시간 동안 배를 쫓아왔다.
세 시간 가까이 하늘을 바라보니 평소에는 잘 볼 수 없었던 비행기들도 많이 보고 별똥별도 한 개 볼 수 있었다. 육지에서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쉽게 비행기를 찾을 수 있다. 하늘에 항상 비행기가 있기에 지구 어디에서든 비행기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대양에서는 비행기가 잘 보이지 않았다. 비행기의 항로와 배의 항로가 다르기 때문이다. 순간 배의 항로와 비행기의 항로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만큼 내 꿈인 조종사로의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지금 당장 꿈의 문을 거세게 잡아당겨도 열기 힘들 텐데 아직도 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듯 무력한 기분이었다.
별똥별을 보고는 눈을 감고 방금 전 지상에서 40km 높이의 중간권에서 뜨겁고 푸르게 산화된 우주에서 날아온 운석을 생각하며 잽싸게 소원을 빌었다. 별을 보며 소원을 말하니 어릴 때 본 만화책 드래곤볼이 떠올랐다. 만화는 별이 그려진 7개의 구슬을 모으면 용신이 나타나 소원을 들어준다는 스토리로 시작한다. 어렸을 적부터 줄곧 드래곤볼을 모두 모으면 남북통일을 소원으로 말하리라고 생각했다. 당시에도 조종사가 꿈이긴 했는데 소원으로 조종사를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조종사는 절대자에게 요청하지 않아도 내 힘으로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마음은 현재도 굳건하다. 여전히 내 두 주먹으로 조종사라는 꿈을 감아쥘 수 있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다만, 몇 해 전부터 이전과는 다른 소원을 빌 거라고 다짐했다. 남북통일이 아닌 사기꾼들이 정당한 판결을 받는 게 소원이 되었다. 별똥별에 빈 소원이 이뤄져 사기꾼들이 엄벌에 처해지고 사기꾼이 박멸하는 정의로운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직 한, 두 시간의 개념이 비교적 긴 편이었을 중학교 1학년 시절, 친구가 내게 주말에 무얼 했냐고 물어봤다. 나는 티브이를 통해 마라톤을 관람했다고 대답했다. 친구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지루해서 어떻게 봤냐는 질문을 받았다. 내가 처음 본 마라톤은 땀과 노력이 집대성한 박진감이 넘치는 스포츠였다. 나는 두 시간이 넘는 긴 시간을 시청했지만 눈코 뜰 새 없었다고 대답했다.
지금의 세 시간은 분명 중학생 시절의 한 시간보다 짧게 느껴진다. 번개와 별 지나가는 비행기를 지켜본 세 시간은 화장실 영화관에서 화장실 가서 한 장면도 놓치기 싫은 마음처럼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있었다. 번개 관람을 두 시간쯤 지속했을 때, 이 순간 또한 스쳐 지나갈 텐데 제정신으로 보내기에는 하늘이 너무 아까웠다. 방에 가서 330ml짜리 작은 맥주를 원샷하고 올라왔다. 영화관에서 화장실에 갈 때 중요한 장면을 놓칠까 봐 걱정되는 마음으로 재빠르게 행동했다. 혈관에 감성을 넣은 후 다시 갑판 위로 올라와 바라본 하늘은 조금 흐려졌지만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번개구름도 처음보다 더 작아졌고(멀어졌고) 번개의 빈도도 확연히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천천히 번개구름과 이별하며 동영상도 찍고 음악도 들었다. 취기가 떨어질 때 즈음 다시 한번 내려가 맥주를 내 혈관 속으로 주유하고 왔다.
하늘에 취해 별에 취해 낭만에 취해 밤과 함께 나도 깊어갔다. 중국 교환학생시절 모교에서 온 동생들과 태산에 갔을 때가 떠올랐다. 밤기차를 타고 태안시에 도착해 자정 즈음 태산으로 향하는 등산로의 초입에 들어섰다. 7000개가 넘는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에 압도되었지만,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었다. 정상에 다 달아 하늘을 바라봤는데 소름 끼칠 정도의 많은 별들이 선명하게 떠 있었다. 고개를 내려 동생들을 봤는데 그들의 못생긴 얼굴에도 경탄의 표정이 가득했다. 문득 20대 중반치고는 재밌게 생겼지만 정겨운 동생들을 보니 우리가 함께 태산에 오른 인연이 밤하늘의 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들도 각기 다른 장소에서 다른 시간에 빛나 수만 수천 년을 건너와 오늘 우연히 태산의 밤하늘을 함께 수놓고 있었다. 개성 있게 생긴 동생들과도 태어난 시간 장소는 전부 달라도 오늘 함께 중국이란 낯선 대륙에서 밤기차를 타고 산을 올라 함께 별을 바라보고 있는 게 기적과도 같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마찬가지로 내가 무스카트호에 타서 뜻하지 않게 만난 천둥과 번개 비행기와 별똥별 지나가는 바람과 배가 밟고 서 있는 바다도 기적처럼 느껴졌다. 마찬가지로 신분도 나이도 과거도 다른 멋진 동료들과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항해를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게 필연처럼 느껴지는 아름다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