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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수 Oct 27. 2024

배에 있다는 것은 살아남았다는 것, 살아남았다는 것은

알바트로스

배에 있다는 것은 살아남았다는 것살아남았다는 것은 강하다는 것     

대장부는 집을 나가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윤봉길     


 배에 있으면 누구 하나 존경받아 마땅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배에 있다는 것은 곧 배에서  살아남았다는 증거다. 직업, 경력에는 사회적인 통념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명문대 학벌은 좋은 두뇌와 성실함이 증명되고 지휘자는 리더십이 검사에게는 정의감, 소방관에게는 헌신이 떠오른다. 마찬가지로 배에서 근무하는 선원에게는 끈기와 인내라는 꼬리말을 남기고 싶다. 목적지를 향해 배를 나아가게 하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사명을 다한다. 그 선원이 심지어 이제 막 배에 오른 나보다도 승선 경력이 적은 2002년생의 실습 항해사, 기관사일지라도.

 실습항해사와는 야심한 저녁에 보온정수기 앞에서 자주 마주쳤다. 나는 보통 육개장 사발면을 들고 있었고 그는 불닭볶음면을 들고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난 하나였고 그는 불닭볶음면을 두 개씩 들고 있었다. 부서나 사관, 부원이라는 계급은 전혀 다르지만 우리는 막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기관원, 조리원, 갑판원 실항기사(실항기사가 없는 선박의 경우에는 삼항기사)는 서로 막내의 서러움이라는 유대감이 있다. 모두가 한 때는 막내였던 것처럼 누구나 공감을 하겠지만 막내는 누군가에게 맘 편하게 이야기할 수도 쉽게 이의나 불만을 제기할 수도 없다. 오직 충고와 조언을 일방적으로 듣는 리스너가 되어야 한다. 능동적인 토커가 되는 순간은 막내끼리 있을 때이다. 누가 더 힘들었는지 시합이라도 하듯 억울함을 쏟아낸다. 그러다가도 상관이 다가오면 대화는 중단되고 서로는 눈빛을 통해 힘내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엄청 붙임성이 좋았다. 사회생활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내게 말 걸어주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고 나도 부담 없이 조금은 마음을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상대였다. 다만 서로의 상사에 대해 뒷담 화할 정도의 친분은 아닌 정도였다.

 그는 육각형의 사나이였다. 그는 요즘 MZ세대와는 다르게 싹싹하고 적극적이라며 선배들의 칭찬을 받는다. 학교에서도 눈에 띄는 우등생이었는지 교수가 선장에게 잘 봐달라고 연락을 했다고 한다. 실항사의 스케줄은 가히 살인적이다. 모든 생활에서 긴장과 눈치가 섞여 있는데 24시간 근무하는듯한 느낌이었다. 실습비용으로는 겨우 30~40만 원을 받는데도 항상 미소를 지니고 있다. 조리장이 보기에도 아들 뻘의 실항사가 대견한지 빵을 좋아하는 그를 위해 여분의 빵을 준비한 후 마지막으로 식당을 나서는 실항사를 붙잡고 몇 개 더 챙겨주었다. 

 한 번은 복도를 혼자 걷고 있는 그를 보았다. 그는 울상을 짓고 있었다. 누군가 항상 보는 내 표정과 비슷했다. 나는 굳이 힘든 표정을 숨기고 다니지 않는다. 표정을 숨기는데도 에너지가 필요한데 나는 그곳에 에너지를 사용할 만큼 에너제틱하지 못했다. 실항사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는 없는 에너지를 짜내 얼굴에 항상 미소를 장착하고 있을 것이다.

 부조리가 완전히 없어졌다고는 하나 그의 표정 눈짓 행동에서 얼마나 위에서 힘들게 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갔다. 한 번은 설거지를 같이 하게 된 적이 있다. 나는 두 가지 궁금한 게 있었다. 하나는 왜 항해를 하려 하는지, 또 하나는 힘들지 않은지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뜻밖에도 왜 항해를 선택했냐는 첫 질문에 두 가지 대답을 다 듣고 말았다. 그는 커다란 바다를 누비며 배를 조종하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고 내가 두 번째 궁금증에 대해 묻기도 전에 사실 너무 힘들다고 했다.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몰라서 나도 힘들다고 했다. 방금 한 대답에 사회성이 결여된 것 같아서 항해사보다는 그래도 내가 덜 힘든 것 같다고 어떻게 그 어린 나이에 그 힘든 일을 버티는지 정말 대단하다고 나는 그 나이에 호주에서 맨날 수박이랑 맥주를 먹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또, 힘든데도 어떻게 항상 얼굴에 의욕과 미소를 띨 수 있는지 물어봤다. 그는 힘든 티를 내면 더 힘들어진다고 했다. 얼굴 표정이라도 웃어야지 힘든 게 조금 경감되는 것 같다고 했다. 또한 힘든 표정을 짓고 있으면 사관 쪽에서는 얼굴 표정에 대한 선배들의 직접적인 태클이 들어온다고 했다. 어차피 웃어야 될 거 자의적으로 웃기로 했다고 한다. 나는 2002년생에게 사회생활을, 근성을 배웠다. 해양대학교에서 사관생도만큼 강한 훈련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내가 그의 나이에 실습항해사로서 배를 탔으면 난 못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실습을 마치고 훗날 늠름한 마도로스가 되어 지금 타고 있는 무스카트호보다 거대하고 중요한 선박을 안정적으로 이끌어나갈 선장이 될 재목처럼 보였다.      

 배를 오래 탄 ‘수석’ 갑판장, 조기장, 조리장은 눈빛이 다르다. 뱅골호랑이나 몽골 독수리처럼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수(중간) 직급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천주교 수도원의 연로한 신부님이나 안나푸르나에서 산장을 운영하는 세르파가 가진 초연한 눈빛을 하고 있다. 그분들의 나이대는 1950년대 중반~ 60년대 초반이었다. 대부분 40년 이상의 경력을 갖고 있었는데 그들이 25살 때부터 배를 탔다고 가정하고, 5분의 1의 기간만 육지에 있었다고 가정할 때 그들은 삶의 절반 이상을 바다 위의 배에서 보냈다. 한 가지 일을 2년 이상 해본 적이 없는 나는 그들이 인생의 반 이상 동안 겪었을 바다의 모험과 파랑에 대해 조심스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들은 다른 선원들보다 조금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었다. 신기했던 건 직급에 따라 내게 적응하려면 어느 정도의 기간이 걸린다는 것이 달랐다. 처음 인수인계를 받았을 때 선배 조리원은 내게 적응하기까지는 세 달이 걸린다고 했고, 조리수는 내게 1년, 조리장은 3년, 수석 조리장은 5년이 걸린다고 이야기했다. 그들의 삶과 경력에 비쳐봤을 때 적응 기준과 기간이 각각 달랐다. 

 술자리에서 그들의 모험담을 듣는 것은 유치원생 시절 선생님에게 동화를 듣는 것만큼이나 흥미로웠다. 상선을 타고 참치 해역에 들어섰을 때 근방의 배들에 무전을 쳐서 100kg가 넘는 참다랑어를 담배와 술로 물물교환 한 이야기. 90년대에 일본 정기선을 타며 금괴 밀수를 했다는 것과 러시아 해협을 건널 때 배 갑판이 전부 얼어붙은 것,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 배를 포기할 정도의 급박한 상황에서 구명선까지 탑승했던 이야기, 혹등고래가 수면 위로 점프하는 장면이나 용오름을 본 이야기, 플랑크톤으로 가득 찬 바다에서 만난 형광색의 투명하고 푸른 밤바다. 모든 수석직급은 각기 단권의 책으로 담기 힘들 만큼 방대하고 신비스러운 소설 같은 경험담을 갖고 있었다. 아프리카의 검은 지성 아마두 함파테 바는 ‘노인 한 명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라는 말을 했다. 그들이 겪은 수많은 모험담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그들에게 얼마 안 남은 승선생활과 함께 침몰이 예정되어 있어 아까울 정도였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들에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좋아했는데 그동안 숱하게 겪었을 힘들었던 시절은 말하지 않았다. 반면 나는 반년 조금 넘는 시간을 배에 승선했을 뿐인데, 배에서 겪은 신비스러운 경험보다는 힘들었던 일을 주변에 일러바치기 바쁘다. 사람의 본성을 초월한 그들은 내게 신화 같은 존재들이다.      

 태평양의 자연을 온몸으로 마주할 때면 자연스레 그리스로마신화가 떠오른다. 중학교에서 지구과학을 고등학교에서 세계지리를 마지막으로 자연에 대해 배움을 멈춘 내게는 대양에서 만나는 자연 현상이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과학보다는 신화에 관심이 있는 나는 하늘을 관장하는 신 우라노스와 밤의 장막을 치는 신 닉스로 자연 현상의 이치를 설명할 수 있다. 특히 과거에 후지산 정상에서 100km 떨어진 도쿄를 본 적 있는데, 현재까지도 지구의 생김새가 과학적 논쟁거리였으면 나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을 것이다. 

 서양권에서는 여행을 할 때 선호하는 관광지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대도시나 유명 건축물과 예술작품 등의 인공적인 산물, 다른 하나는 산과 바다 평야와 대협곡 같은 신의 산물. 나는 평소 신의 산물을 더 선호하는 관광을 한다. 덕분에 배에서도 일이 끝나고 신의 산물을 만나러 갑판으로 나갈 때면 원양상선에 일을 하러 왔다기보다는 크루즈선에 관광 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을 때도 있었다. 갑판에서 대양을 바라보는 건 내가 배를 타기 전에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매력적이었다. 육지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수평선이나 건물이나 나무 산 등에 가려지지 않은 하늘, 은하수 그리고 일출과 일몰의 매직아워에는 신의 창조물을 대관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신기하게도 신의 산물을 볼 때 생기는 감정을 원양상선을 보면서도 느낄 수 있었다. 수많은 대형 선박들이 개미처럼 줄을 맞춰가다 말라카 해협을 빠져와 인도양을 만나고 학처럼 펼쳐질 때나 해무가 짙은 날 맞은편에 있는 원양상선이 구름 위를 떠다니는 것 같은 광경을 볼 때는 인간의 피조물이 신의 산물에 가깝게 느껴졌다. 그 비현실성은 마치 흰수염고래가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무릎까지 바다에 잠긴 거인이 태평양을 헤쳐 나가는 것과 비슷한 정도이다. 

 마찬가지로 내게 선장, 기관장은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배를 관장하는 신이나 다름이 없다. 전 선원을 관리 감독하고 싱가포르 해협을 건너고 도크에 접안하며 장치가 고장 났을 때에 직접 투입된다. 타를 돌려 배를 운전하거나 38,900마력의 배를 유지관리하며 배를 나아가게 하는 건 반인반신의 헤라클레스가 12가지 과업을 이행해 나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배에 남아 있다는 건 그만큼 힘든 시간을 이겨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다. 또한 그동안 그들은 계속 성장하고 단단해졌을 것이다. 그들이 배에서 보낸 일 년 일 년의 경력은 절대 허투루 보낸 시간이 아니며 그들의 일련의 시간은 사계절을 지나야 한 줄 생기는 나무의 나이테나 보이지 않는 훈장처럼 느껴졌다. 이런 멋진 동료들 속에 있었던 건 나약한 내가 하루하루를 이어갈 수 있었던 큰 원동력이다.      


알바트로스     

나는 나의 한계를 깨고자 한다. 자유롭게, 높고, 먼 곳으로.

-리처드 바크 [갈매기의 꿈]     


 새벽 5시에 일어나 8시까지의 아침 일을 마치고 방에 들어가기 전, 언제나 그랬듯 커피머신 앞에서 버튼을 누른다. 커피머신 속에서 고소한 향이 갈려 나온다. 원두가 갈리는 동안 투명한 텀블러에 얼음을 채워 넣고 컵을 머신 위에 맞춰 놓는다. 황금빛을 띠는 부드러운 크레마가 있는 진하게 내려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보니 좋아하는 사람이 내게 걸어오는 걸 발견한 것처럼 미소가 터져 나온다. 커피와 좋은 기분을 들고 비상구에 나가 바다와 마주한다. 포커스가 나간 수동 카메라처럼 초점을 맞추지 못한 채 흐리멍덩하게 물살을 바라봤다. 현대화된 옛 속담처럼 일찍 일어난 새가 피곤하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커피를 마시니 몽롱했던 정신이 선명해진다. 머리 위 하늘에는 짙은 회색 구름이 껴있다. 배가 나아가는 방향의 바다 위 하늘에는 구름이 없어 아침의 태양이 대기를 뚫고 바다를 비춘다. 주황빛 햇살이 구름 사이로 삐져나온다. 학창 시절의 어느 볕 좋은 날 빛을 한껏 받은 교실의 포근한 흰색 커튼을 보는 듯하다.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옆에 앉았던 재밌게 생긴 친구와의 재밌던 추억을 회상한다. 연락이 닿지 않는 친구의 근황을 상상해 본다. 그 친구는 여전히 재밌게 살고 있을 것 같다. 커튼을 뚫고 들어오는 산들바람처럼 바닷바람이 추억을 싣고 나의 기억의 아지랑이를 따듯하게 흔든다.

 배의 선미를 서성거리는 새 한 마리가 보인다. 배 주변을 이리저리 배회한다. 커튼 같은 주황빛을 배경으로 선회하는 새의 모습이 제법 근사하다. 갈매기가 배를 잘못 탔다는 현실적인 생각이 들었다. 인도양 위에 떠 있는 배라는 섬에 꼼짝없이 갇혔구나. 밥은 잘 먹고 다니는 걸까, 마치 나를 보는 듯한 측은함이 들려는 찰나에 업신여기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흘겨보며 눈앞을 지나간다.

‘알바트로스다!’ 

 알바트로스는 비행이 가능한 새 중 가장 긴 날개를 가지고 있다. 날개를 펴면 최대 4m로, 자력으로 대양을 건널 수 있는 새다. 최대 120km에 이르는 수평 비행 속도를 낸다. 알바트로스는 Dynamic Soaring이라는 비행술을 쓰는데, 상승기류를 활용해서 자기의 에너지를 쓰지 않고 장거리 글라이딩을 한다. 글라이더를 설명하는 듯한 알바트로스의 놀라운 피지컬만큼이나 외모 또한 수려하다. 독수리와 비슷한 날렵한 부리를 갖고 날카로운 눈빛을 지녔다. 회색 날개와 흰색 몸통은 고급스러운 그라데이션 도색을 한 것 같기도 하다. 멋지다. 나는 자존감이 낮아 스스로가 비교적 작고 못생긴 갈매기처럼 느껴져 알바트로스가 부러워졌다. 

 그는 바람의 벽을 뚫고 글라이딩 하며 자력으로 인도양을 건너는 중 잠시 이곳에 쉬고 있는 것일 게다. 그를 구성하는 건 피와 뼈, 살과 깃털이 아닌 높은 시선, 매서운 눈빛, 대양을 가를 수 있는 자신감일 거 같다. 알바트로스가 하늘을 선회하며 바람을 탄다. 날개를 펄럭이는 횟수에 비해 월등히 길게 앞으로 뻗어나간다. 우아하게 펄럭이는 긴 날개가 부럽다. 내 옆구리에도 알바트로스처럼 튼튼한 날개가 돋아난다면 쉬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날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알바트로스는 무언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더니 바다 위에서 저공비행을 한다. 큰 몸집에도 제법 잽싸게 방향을 전환한다. 순식간에 물속으로 몸을 처박더니 한참 있다가 나온다. 저공비행을 하며 같은 행위를 반복한다. 수면 아래에서 매번 물만 먹고 나오는 걸 보니 하늘에서는 완벽해 보이는 알바트로스도 낚시에는 큰 소질이 없는 것 같다.

 나는 배에 갇힌 갈매기일까, 배 위에서 잠시 쉬고 있는 알바트로스일까. 마음속에 먹구름이 몰려와 우울의 비가 쏟아지기 전에 무언갈 시작해야 한다.

 체육관 러닝머신 위에서 달린다. 서서 일을 한 후에는 다리가 조금 굳어있다. 다리 근육이 아닌 무릎과 발목 관절이 소모되어 가며 달리는 느낌이 든다. 괜찮다. 몸이 조금 상하더라도 마음이 상하는 것보다야 낫다. 수영이나 달리기를 할 때 나를 앞서 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기다란 팔과 다리로 슴풍슴풍 나아가는 것을 수없이 상상해 봤다. 알바트로스의 날개처럼 팔과 다리가 쭉 뻗어있는 사람들은 한 번에 나보다 두 배는 긴 달음거리로 치고 나가고, 긴팔의 스트로크로 한 번의 많은 물을 밀고 나아간다. 갈매기처럼 있는 힘껏 날개를 펄럭이는 게 아닌 알바트로스처럼 여유 있고 힘차게 글라이딩을 해보고 싶다. 높은 곳에서 대양을 바라보는 넓은 시야도 어떨지 궁금하다. 같은 바다를 보더라도 알바트로스의 시선은 더 먼 곳을 향해 있을 것만 같다. 짧은 팔과 다리로 꿈을 좇기 위해 오늘도 낑낑대본다. 날아갈 수 없는 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할 수 있는 건 오직 꿈과 버킷리스트를 적어보는 것뿐이다. 미련과 함께 리스트를 덮고 갈매기처럼 눈을 부릅뜬 후에 배에서 할 수 있는 거에 집중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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