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협화음
J와의 재회
친구는 어려운 시간을 함께 나누는 사람이 아니라,
그 시간이 덜 어렵게 느껴지도록 함께하는 사람이다.
-조셉 에디슨
그날 저녁은 회식이 있었다. 조리장과 선장의 눈총을 받으며 회식을 제친 후에 점심 일을 마치고 나는 바로 나갈 수 있었다. 싱가포르의 가장 동남쪽의 외진 인공섬 Tuas에는 대중교통이 없다. 통차는 6시에나 있고 택시는 지나다니지 않았다. 우리보다 조금 먼저 입항한 라스라판호에 있는 선배가 이곳에 히치하이킹 문화가 있다고 알려줬다. 보통 10달러를 준다던데 나는 수중에 싱가포르 달러가 없었다. 10달러를 대신할 한국 맥주(카스)와 박카스를 작은 종이상자에 담아 갔다.
조선소 앞에 차들은 꽤 다녔지만, 히치하이킹은 쉽지 않았다. 물론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몸짓이 적극적이지 못했을 것이다. 또 맥주를 미끼로 준다는 것이 인류애에 호소하는 게 아닌 뇌물로 히치하이킹을 구한다는 것처럼 느껴졌고 부끄러워 굳이 맥주를 꺼내 보이지 않았었다. 그렇게 30분가량을 땡볕에서 보내며 대부분의 지나가는 차에는 용기를 내지 못하고 가끔 용기를 낸 차들에게는 거절을 당하다 보니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타국에서 대관절 왜 대낮부터 히치하이킹을 해야 하는 건지 또 왜 난 그렇게 적극적이지 못한 지 의문이 들었다. 화가 난 최지수는 꽤나 공격적으로 바뀐다. 나는 그때부터는 상자를 열고 적극적으로 맥주를 어필하며 지나가는 모든 차들에 달려들었고 화가 난 지 불과 수 분 만에 차를 탈 수 있었다.
차 주인은 푸근한 인상의 인도아저씨였다. 자신은 싱가포르에 온 지 20년이 되었고 5년 전에 자신의 가족 또한 싱가포르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인도에 가끔 돌아가면 부족한 인프라에 짜증 난다고 살기 좋은 싱가포르에 평생 거주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내게 제네랄 매니저라는 직함이 찍혀있는 명함을 주며 인력이나 장비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전화를 달라고 했다. 히치하이킹을 하러 온 사람에게 영업을 하다니 저 정도의 열정은 있어야 매니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Tuas에서 2년간 일하면서 히치하이커는 거의 보지 못했고 태워준 건 처음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나를 EW선(East West Line)이 있는 지하철역에 세워줬다. EW선은 싱가포르를 횡단하는 열차인데 나는 싱가포르의 가장 서남단의 조선소에 있었고 J는 동북단의 공항 주변에 있었다. 조선소에서 가까운 역인 TUAS WEST ROAD는 종점에서 1 정거장 앞에 있었고 J가 사는 곳은 PASIR RIS는 반대편 종점이었다. 만나기로 한 시내 중심까지는 지하철 타고 50분 정도 걸렸다. 30분의 히치하이킹 앵벌이와 15분간의 차 이동, 50분의 지하철 이동은 누군가에게는 쉽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목적지까지 편도로 18일, 약 6,000마일(9,600KM)을 이동하는 선원에게는(비록 말단 직원일지라도) 무호흡으로도 갈 수 있을 정도로 짧게 느껴지는 거리이다.
스타벅스에서 J를 만났다. 해외에서 친구를 만난 게 너무 신기했다. 우리가 찍은 사진의 배경에는 역전할맥이나 치킨집이 있어야 될 느낌이었지만 싱가포르의 또 다른 심벌 머라이언(하반신은 인어, 상반신은 사자) 동상이 있었다. 1년 전, 홍대에서 마지막으로 J를 봤을 때는 취준생이었다. 그때와 지금은 미묘하게 달라 보였다. 취준 할 때는 얼굴에 불안이 느껴졌다면 지금은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조금 보이는 듯했다. 또, 자신감과 경제적 여유가 표정을 통해 드러났다.
1년 전의 그녀는 4년간 승무원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같은 직종을 동경하는 사람으로서 이야기가 잘 통했었다. 영어공부, 면접 준비, 취업스터디 등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다는 게 J의 말과 표정에서 느껴졌었다. 정말 오랜만에 반말을 했다. 나의 많은 것을 아는 5년 지기 친구를 만나니 그간 마음속에 쌓아놓은 퇴적물들을 마음껏 토해낼 수 있었다.
일전에 호주 비행을 다녀온다고 해서 호주 과자 팀탐을 사달라고 부탁했는데 이미 돌아오는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팀탐을 포기하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호주에 비행을 또 갔다 왔다며 팀탐을 네 개 선물해 줬다. 더블 초콜릿으로 코팅되어 있는 팀탐을 먹어서인지 친구를 만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지하게 행복한 기분으로 카페에서 이야기했다.
커피를 마시고 차기 행선지를 정하는데 J가 나보고 유람선은 어떠냐고 물었다. 말이 끝나자마자 황당해하는 내 표정을 보고는 J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일로써 배를 타는 사람에게 놀이로 배를 타자고 한 것에 대한 반응이었을 뿐인데 뭐가 그렇게 웃겼는지 모르겠다. 나는 재밌지는 않았지만 J가 웃으니까 웃음이 전염되어 같이 웃었다. 한참을 웃고 나서야 오랜만에 사용해서 근육 경련이 온 얼굴 근육을 통해 가식 없이 웃었다는 걸 느꼈다. 저녁으로 차이나타운에서 중국음식을 먹었고 다시 마리나베이샌즈 호숫가로 돌아와 야경을 보며 이야기했다. 통차 시간이 다가왔고 오랜만에 만난 마음을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와 헤어지기 아쉬워 눈물이 나올 거 같다고 이야기했다. 친구는 알 수 없는 나의 언사에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해는 간다고 했다. 헤어지고 나는 다시 뒤돌아서 멀어져 가는 J를 보았다. 배에서는 항상 긴장 속에 가슴을 졸였던 탓인지 항상 호흡이 부족하다고 느꼈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오랜만에 마음껏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다시 혼자가 되었다.
유럽에 있었을 때 어드밴트 캘린더라는 신기한 문화에 대해 알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사용되는 특별한 달력으로, 12월 1일부터 크리스마스이브인 12월 24일까지의 기간 동안 작은 선물이나 초콜릿 등이 들어있는 것을 매일 하나씩 열어가는 캘린더이다. 이 캘린더는 크리스마스까지의 기대감을 높이고, 매일 작은 선물이나 활동을 제공하여 기쁨을 더하는 역할을 한다. 친구에게 받은 네 개의 팀탐은 한 봉지에 10개씩 들어있다. 아껴먹다가 하선까지 40일 즈음이 남았을 때부터 하루에 하나씩 먹었다. 팀탐은 직사각형의 초코가 코팅된 웨이퍼형태의 과자로 진한 초콜릿 맛이 느껴진다. 엄청나게 달아서 하나만 먹어도 눈이 번쩍 떠지고 이빨이 썩어버릴 거 같은 악마의 맛이다. 맛도 다양해서 초콜릿, 더블초콜릿, 화이트초콜릿, 캐러멜 맛을 하나씩 선물 받았다. 호주에서 배운 팀탐을 특이하게 먹는 법이 있는데 모서리와 반대편 모서리를 앞니로 조금씩 베어 물고 그대로 뜨거운 커피에 담가 빨면 커피가 팀탐 속으로 스며든다. 커피가 스며든 팀탐을 먹으면 입안에 작은 찰리와 초콜릿공장이 세워진다. 친구가 내게 전해준 작은 선물에 나는 큰 위안과 감사를 얻을 수 있었다.
불협화음
인생은 2 기통 엔진으로 440마력을 내는 것
-헨리 밀러
한 달 동안 싱가포르 조선소 도크에 입항하여 배를 점검과 수리 유지 한다. 일등 기관사에게 우리나라의 기술력이 더 뛰어나고 소통이 잘될 텐데 한국 조선소가 아닌 싱가포르 조선소에서 수리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돈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한국에서는 도크에 있는 한 달 동안 수리비용에 110억이 드는 반면 싱가포르에서 60억 가량이 소요된다고 이야기했다.
정말 수많은 노동자들이 배에 출입했다. 출입증을 넣어놓는 곳이 있는데 총인원이 4~500명쯤은 되어 보였다. 원양상선의 사용료와 도크의 렌탈비는 억 소리 나게 비쌀 텐데 인해전술로 최대한 빠르게 수리를 마치고 바다에 띄우는 게 현명한 판단처럼 보였다. 노동자들이 선내에 진입하니 적어도 인건비 측면에서는 싱가포르의 도크가 더 저렴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싱가포리언이 아닌 인도나 방글라데시, 파키스탄과 네팔 등의 남아시아 인력이 제공되고 있었다. 싱가포르는 최저임금제가 없다고 한다.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 사람들은 월급으로 100만 원을 받기도 한다고 했다. 주방에 직접적으로 투입된 인원은 없었는데 대신 놀고 있는 인력에게 쓰레기 버리기나 부식 옮기기 같은 약간의 일을 부탁하고 콜라나 과자, 맥주를 주면 아주 좋아했다.
당연하게도 그들 사이에도 계급이 존재했다. Manager 등의 견장을 붙이고 있는 사람들은 영어를 잘했다. 의외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영어를 사용하지 못했다. 지식의 차이에 계급이 결정된다는 진리를 외부 노동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다양한 국적을 갖고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니 그들끼리도 소통이 되지 않아 심심치 않게 싸우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분명 서로 다른 언어로 서로에게 욕을 하고 있었다. 또 다른 특이점은 일진행 속도가 정말 느리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식당 바닥에 페인트나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비닐을 까는 작업을 하는데 열 명 내외가 반나절동안 작업을 했다. 경험이 없는 나한테 시켜도 혼자서 반나절이면 뚝딱 해치웠을 거 같다. 점심 세팅을 해야 하는데 작업이 끝나지 않으니 조리장이 나와서 노동자들에게 한국어로 화를 냈고 나는 통역을 했다. 역시 조리장은 믿음직스러운 선배다. 조리장은 화를 낸 게 미안했는지 그들이 업무를 마치고 돌아갈 때 음식을 건네주기도 했다. 동선이 겹치지 않아 그들이 어떻게 업무를 하는진 몰랐지만, 선원 식당이든 부원 식당이든 식사시간의 주제는 항상 외부작업자들이 일은 안 해서 미치겠다는 거였다. 초반에 있었던 일들로 속으로 그들을 무시하고 있었다. 한 번은 영어를 잘하는 기술자가 와서는 고기 창고의 두꺼운 스테인리스 재질의 문이 고장 난 것에 대해 내게 몇 가지를 묻고는 제원을 적어갔다. 불과 이틀 만에 새로운 문으로 뚝딱 교체한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들쑥날쑥한 근무 스케줄은 부서 간의 불협화음이 생기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대망의 날은 불판이 나가는 날이었다. 오후 5시에 식사 시간이 시작되고 오지 않는 불판의 주인을 8시까지 쓸쓸히 기다렸다. 작업이 있는 건지 밖에 외출을 나간 건지 기관사 6명이 오지 않아 불판을 정리하고 고기를 팬에 소금과 후추를 넣고 볶아버렸다. 오지 않은 인원만큼의 반찬을 각기 접시에 담아 테이블 위에 놓아뒀다. 9시에 업무를 마치고 온 기관사는 식고 쪼그라든 고기반찬이 올려져 있는 것을 보고 조리장에게 가서 부딪혔다. 기관부 시니어는 밥도 못 먹고 개고생을 하고 왔는데 다 식은 밥을 먹어야겠냐고 서러움을 토로했다. 조리장은 작업이 늦게 끝날 거면 미리 말을 하라며 조리부가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밤 10시까지 일해야 하냐며 맞서 싸웠다. 가슴이 웅장해지는 순간이었다. 이전 조리장이었다면 어차피 본인이 하지 않을 뒷정리이기 때문에 사관들의 총애를 받기 위해 입에서 종소리를 내며 딸랑거렸을 테지만 지금 조리장님은 달랐다. 진심으로 나와 조리수를 동생처럼 아껴줬고 조리부의 입지를 위해 가끔은 적당한 선에서 사관들과의 마찰도 서슴지 않았다. 가슴이 웅장해져 있던 나는 이런 상황을 처음 겪었기에 뭘 해야 될지 몰라 고장 난 기계처럼 가만히 있었다. 물론 계획 없이 원하지 않는 야근을 하고도 식은 고기를 먹어야 하는 기관부의 입장도 이해가 갔다. 하지만, 단발적으로 불만을 토해내고 마는 게 아니라 자신의 계급으로 조리장을 찍어내리며 상관의 입장을 관철시키고 사과를 받아내려 하는 건방이 느껴졌다. 중립 기어에 놓여있던 내 마음은 다음에 기관부 시니어에게 장조림을 줄 일이 생기면 메추리알대신 비슷하게 생긴 통마늘만 듬뿍 퍼줘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조리장은 내가 직접 하고 싶지만 나는 절대 할 수 없는 말을 해줘서 사이다처럼 속이 뻥 뚫려 그에 대한 충성도가 상승하였다. 선내에 높게 울려 퍼졌던 둘의 불협화음은 다음날 위로 보고되어 결국 선장의 중재로 잘 마무리되었다. 그 후로는 야근이 있어도 많이 늦어질 거 같으면 밥을 먹은 후 다시 야근을 하러 갔다. 기름과 땀에 절여져 있는 작업복을 입고 손에는 검정을 묻힌 채 밥을 흡입하는 그들을 보면 왜 일을 마치고 밥을 먹으려 했는지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도크 기간 동안 주니어급은 당직 후에 하루 쉬는 날이 있었는데 시니어는 당직이 없고 쉬는 날도 없었다. 그가 받는 압박이 얼마나 심했을지 조금은 이해가 간다. 그가 자신의 부서를 위해 부린 이기심은 당일 작업 파트의 우두머리로써 자신보다는 함께 고생한 후배들에게 따듯한 고기를 먹이고 싶은 이타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에 도시가스를 공급하기 위해 대양을 누비고 있을 LNG선 선원들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