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쳐진 굳건한 철조망
한국에서 맞는 새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알렉산드르 푸시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호주에서 태평양을 건너왔고, 서해에서 2024년 새해를 맞이하였다. 전날 게시판에 일출시간과 그 시간에 선교에서 티타임을 갖는다고 알려줬다. 나는 물론 해 뜨는 시간에 일해야 했다. 새해 첫날 오전, 인천항을 향해 배는 느리게 다가가고 있었다. 도선사가 배에 탑승할 때 즈음 눈앞에 있는 인천의 건물들이 손에 닿을 듯했다. 자전거로 여러 번 방문한 아라뱃길 시작점의 익숙한 전망대도 보인다. 과거에 전망대에 올랐을 때 부두와 하역장, 상선들이 보며 ‘저곳에도 사람이 있겠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내가 배에서 전망대를 바라보며 ‘저곳에도 사람이 있겠구나’고 생각한다.
LNG선은 24시간 동안만 항구에 입항해 LNG를 내린다. 그 시간은 오히려 모두에게 가장 바쁜 시간이고 외출은 불가능하다. 입항 전부터 전 선원은 분주해진다.
3등 항해사가 외치는 ‘올 스테이션 스텐바이’가 스피커를 통해 선내에 울려 퍼지면 대기하던 선원들은 밖으로 뛰쳐나간다. 물론 그 시간이 만약 조리부의 쉬는 시간이면 우리는 자다 깬 후 미간을 한 번 찡그리고 다시 잠자리에 든다.
선교에서는 항통사와 삼항사 선장과 파일럿(도선사)이 배를 접안한다. 갑판에는 일항사와 이항사 그리고 갑판원들이 모여 홋줄을 부두에 댄다. 접안 후에는 매니폴드(가스의 흐름을 통제하는 장치)를 통해 뱃속 탱크에 있는 LNG를 육지의 한국가스공사 파이프로 보낸다. 정박해 있는 24시간 동안 갑판부원은 매니폴드에서 항해사는 CACC(상황실)에서 기관부는 기관실에서 무한 당직 근무를 한다. 가스가 완전히 비어있는 상태로 배에 싣게 되면 48시간 동안 정박해 있는데 그들의 무한 당직은 48시간으로 늘어난다. 때에 따라서 한 명이 16시간을 연속으로 당직을 서는 끔찍한 상황도 발생한다.
조리원은 여타 부서에 비해 입항 시의 부담이 월등히 적은 편이다. 한국 입항 때는 35명이 한 항차 기간인 5주 동안 먹는 1700~2000만 원어치의 부식이 실린다. 다행히도 부식업체에서 인력들을 고용해 창고 안까지 전달해 준다. 입항 시 추가되는 조리원의 업무는 첫 항차에는 힘들었지만, 3번째 입항부터는 적응되었고 큰 부담이 생기지 않았다. 배송된 창고에 배송된 부식이 맞게 왔는지 체크하고 창고를 뒷정리한다. 선장과 기관장이 교대하면 방을 정리하고 침구류를 교체한다. 파일럿과 도크마스터가 묶을 방을 정리하고 일회용품등의 생필품을 채워 넣는다. 하선할 선원들에게 면세 양주와 담배를 내어주고 선교와 브릿지에 다과와 음료를 올린다. 승선할 선원들의 생필품을 챙긴다. 개인 부식품을 시킨 부원들의 신청금액을 현금으로 모아 항해사에게 전달하는 것 등이 해당된다.
입항 시기에 방선이 가능해지지만 방선 신청자는 별로 없다. 방선을 해봤자 너무 바쁘고 하급자들은 상급자들의 눈치가 보인다. 대체로 상급자들의 가족만 1~2팀 방문한다. 부모님께서도 방선을 하고 싶다고 하셨지만, 나는 도저히 신청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했고 또 내 풀 죽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싫었다.
그 외에도 가족승선도 가능하다고 한다. 한 항차동안 선원의 방에서 함께 자고 생활한다고 한다. 경력이 20~30년 되는 베테랑들도 겨우 몇 번 봤을 정도로 드물지만 당사자와 가족에게는 정말 특별한 경험이라고 한다.
개인적인 업무는 한국 해상에 들어오면 핸드폰을 사용하는 것이다. 제주도 해역에 들어오면서부터 핸드폰 사용이 가능해진다. 센스 있는 선장은 육지나 섬에 바짝 붙여 항해를 하게 지시하여 선원들이 원활하게 핸드폰을 사용하도록 도와준다.
물론 배에서도 위성통신을 통한 인터넷이 되긴 하지만, 90년대에 전화선에 모뎀을 꽂아 사용하던 천리안 정도의 속도로 느껴질 정도로 느리다. 한 달에 인당 6GB로 한정되어 있어 정말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된다. 오랜만에 콸콸콸 터지는 인터넷으로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연락을 한다. 대부분은 전화를 걸 때마다 한국에 왔냐면서 반갑게 전화를 받아줬다. 내게는 오랜만에 매우 반갑게 건 연락이지만, 그들에게는 아닌 경우도 더러 있어서 섭섭하기도 했다. 특이했던 연락은 매 항차마다 변호사와 검찰수사관과 통화를 했던 것이다. 사기꾼들의 본격적인 공소가 시작되면 공소장을 근거로 변호사와 민사소송을 진행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검찰 수사관의 말에 따르면 12월에 승선을 하였고 승선했을 때부터 다음 달에는 공소가 제기될 거라 하였지만, 사기꾼들의 죄는 고대 유물처럼 파면 팔수록 끝없이 나와서 매번 공소가 밀어졌다. 그들은 5주마다 한 번씩 걸려오는 나의 전화를 신기해하기도 했고 기다리기도 했다고 한다.
핸드폰 테더링을 통해 노트북으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유튜브나 최신 영화를 다운로드하였다. 안타깝게도 창문은 특수 코팅이 되어있기 때문에 인터넷 속도가 육지에 있는 것만큼은 빠르지는 않았다. 당직을 서듯 일하는 중간중간 방에 와서 다운로드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정신없던 첫 항차가 끝났고 배는 고개를 돌려 다시 대양을 향했다. 출항을 하게 되면 항해사와 조리부를 제외한 부서는 하루나 하루 반 휴식을 취하게 해 준다. 항해사들도 조리부와 마찬가지로 휴일이 없는데 나는 항해사들의 업무를 잘 몰랐지만(아직도 잘 모르지만) 그들은 내게 주입식으로 쉬는 날 없이 일한다는 동질감을 주려고 했다.
원양에서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을 때 즈음 23년에 나를 도와준 사람들이 생각나서 편지를 썼다. 아직 한국 해상이었을 때 그들에게 메일을 보낼 수 있었다.
‘원양 상선에 승선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태평양을 건너 호주를 다녀오고 이제는 카타르로 가기 위해 인도양으로 향합니다.
아직 폭풍우를 만나보지는 못했습니다만, 겨울의 태평양은 꽤 거칠었습니다. 파도의 롤링 때문에 9만 3천 톤의 배가 뒤뚱뒤뚱합니다. 체중계 위에 서서 몸무게를 재려 하는데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67kg에서 74kg까지 몸무게가 변할 정도로 거친 바다였습니다. 선배 선원들의 말에 따르면 봄의 인도양은 잔잔할 거라고 하네요. 바다에 파도 하나 없이 잔잔해 마치 유리 같다고 합니다.
23년은 제게 태평양처럼 터프한 한 해였습니다.
그 힘든 순간 당신께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대단히 감사했습니다.
24년은 제게도 그대에게도 인도양처럼 잔잔한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실제로 인도양으로 향하는 길은 파도나 인간관계나 업무나 잔잔하다.
또한 사람들에 대해 내 마음에 쳐져 있던 철조망이 조금씩 풀리고 있다.
마음에 쳐진 굳건한 철조망
절대로 용기를 잃지 않는 돈키호테는 로시난테를 한 번 쓰다듬고 뛰어올라
방패를 팔에 끼고 창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부원들의 식사를 먼저 낸 후에 사관들의 식사를 챙긴다. 마지막으로 사관들의 반찬 등이 모자라지 않은 지 확인 후에 부원 식당에서 식사한다. 뒤늦게 부원 식당에 가면 대다수가 식사를 마치고,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고 있다. 오늘 메뉴는 김치찌개와 계란말이다. 곁들임 반찬으로 가지튀김이 있었는데 이미 다 사라지고 가지튀김의 기름만 접시 위에 흥건히 남아있다. 노란색 오메가 3 알약이 미처 목으로 넘어가기 전에 입에서 터져버려 하루 종일(혹은 내일까지) 입안에 비린내가 가득할 거 같은 기분이었다.
겨우 두 번째 항차일 뿐인데 4kg이 증량될 만큼 누구보다(선장보다도) 맛있는 걸 많이 먹지만 역시나 먹고 싶은 것을 못 먹으면 서럽다. 뒷정리를 해야 하므로 편하지 않은 마음으로 식사를 빨리 마친다. 사관 식당을 청소하려 하는데 아직 식사 중이다. 그들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내 마무리 업무는 끝날 수도 시작할 수도 없다.
잠깐 뜨는 시간에 내 방에서 보리차를 들고 나와 4m를 걸은 후 야외로 연결된 비상계단으로 나간다. 두 다리가 떨려 서 있을 힘이 나지 않는다. 계단 옆 작은 공간에서 철판으로 만들어진 배의 외벽에 쿵 하고 등을 맡긴 후, 저절로 몸이 흘러내려 기대어 앉는다.
보리차 뚜껑을 따기 위해 시선을 내리는데 손에 출처를 모르는 생채기가 생겨있다. 손을 구석구석 살펴보니 여기저기 생채기가 났다. 생채기가 처음 생겼을 때는 연고를 발랐는데, 이제는 ‘이번에는 멋진 곳에 예쁘게 생채기가 생겼네, 상처 나도 좋겠다.’라고 생각한다.
노을이 지고 있다. 마치 물감이 섞인 것처럼 파란색 바다에 빨간 노을이 비쳐 주황색 바다로 변해있다. 구름 또한 노란색으로 예쁘게 물들었다. 잘 익은 거대한 골든브라운 색의 가지튀김들을 보는 듯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비릿한 바다 냄새 그리고 배의 희미한 기름 냄새가 섞여 설렘을 만들어낸다. 설렘의 종류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모험 정도로 네이밍 해도 되려나.
바다를 보는 베테랑 선원들은 대개 두 부류로 나뉜다고 한다. 바다를 봐도 봐도 멋있다고 느끼는 사람과 바다를 너무 많이 봐 더 이상 아무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 나는 이제 겨우 두 번째 항차인데도 전자가 되지 않을까 싶다. 시원하게 펼쳐진 드넓은 바다가 내 두 눈에 들어올 때 질린다는 감정이 상상되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사관들이 식사를 마칠 때가 되었다. 뒷정리하기 위해 일어서는데 아래 보이는 어퍼데크에 평소에 보지 못하던 게 있었다. 배의 후미에 철조망이 설치된 것이다. 후에 볼 빨간 갑판원에게 철조망에 대해 물어봤다.
“형, 왜 후미에만 철조망이 쳐진 거예요?”
“풋내기야, 생각을 좀 해봐라. 앞과 옆은 항해사와 조타수가 항상 견시중이기 때문에 뒤에만 친 거야. 태평양만 지나는 호주 항차와는 다르게 우리가 향하는 카타르까지의 항로에는 중간에 싱가포르의 해상강도, 베트남 보트피플도 있고 중동 정세 악화로 이란과 반군들의 위협에 철조망을 설치했단다. 예전에 소말리아 해적이 기승을 부릴 때는 뒤뿐 아니라 양옆, 앞까지 사방으로 철조망을 쳤어. 당시에는 아프리카를 건너 유럽으로 가기 위해 수에즈 운하를 넘을 때 실제로 전투용병들이 탑승했어. 내가 들은 소문 중에 난민이 몰래 배에 올랐는데 문제가 복잡해지기 때문에 문제를 벌리고 싶지 않아 난민을 바다에 투척(?)한 사건도 있다고 해.”
내 마음에도 쳐져 있는 철조망이 생각났다. 사기로 인해 인류애를 잃어버린 나는 동료들에 대한 철조망이 굳건했었다. 다른 사람이 내 바운더리 안으로 들어오는 게 싫었고 혼자인 게 좋고 편했다. 이제야 어느 정도 생활에 적응했고 웃으면서 농담을 할 수 있는 동료가 생겨 철조망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 여전히 굳건한 마음속 철조망 안으로 선배 2명이 들어왔고 다른 1명이 철조망으로 들어오기 위해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다.
철조망으로 누군가 들어와 준 계기를 이야기해 보면, 아침에 밥을 먹지 않는 나는 커피와 커피 안주로 빵류를 먹는다. 꽈배기를 만드는 날 그 이야기를 조리부 선배들에게 했더니 식사를 마치고 나자 내 탁자 위에 꽈배기가 한쪽에는 비닐에 싸여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알루미늄 포일에 싸여 있었다. 다음날 커피와 함께 먹은 식은 꽈배기에는 설탕과 감동이 발려져 있었다. 이제 내 마음의 철조망도 뒤에만 달아놓아야겠다.
웃다가도 언제든지 나를 때릴 수 있다는 조리수는 나의 첫 항차가 끝남과 동시에 하선을 하였다. 사실 내 과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며 내 입에서 호주에서 하선하고 싶다는 말이 나오도록 만들려다 봐주었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섬뜩했지만, 그는 내리기 전 웃으며 농담처럼 말했다. 조리장은 조리수 직급으로 내려갔고 나이가 지긋한 수석조리장이 탔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내게 우호적이었다. 조만간 인류애가 되살아나 철조망을 모두 철거시키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사관 식당에 다시 돌아왔다. 이제 식사를 마쳤나 보다. 선장, 기관장 등의 시니어 직급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민 걱정 훌훌 털어버리듯 두 손 가볍게 방으로 돌아간다. 주니어 사관들은 잔반을 버리고 그릇을 싱크대 위에 올려놓고 나간다.
아직까지는 사관들과 인사와 업무에 관한 일 외에는 거의 말을 나눠보지 못했다. 누군가 먼저 내게 말을 걸지 않으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사기를 당해 배에 올라탄 사람처럼 항상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봐도 별로 말을 걸고 싶을 것 같지 않다. 그렇다고 항상 혼자 있고 싶은 건 아니다. 사관이나 부원들이 유쾌하게 떠들고 있는 거를 보면, 동년배의 시니어 사관들과 친해져서 가끔은 이야기도 하고 선교에도 놀러 가고 싶다.
이미 내 사연을 다 아는 선배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무언가가 느껴지는 것 같다. 조소와 동정이 약간씩 섞여 있는 거 같다. 어쩌면 아무 생각이 없을 뿐인데 나 혼자의 자격지심에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사관 식당에는 아직 가지튀김이 남아 있었다. 윗부분은 말라 있고 밑 부분은 기름으로 절여진 가지튀김을 먹는다.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의 튀김처럼 위바아촉(위에는 바삭하고 아래는 촉촉한) 느낌이 나고 공기에 숙성되어 진해진 맛이 나쁘지 않다. 남들이 남긴 가지튀김도 감사하며 먹을 수 있게 된 것처럼 삶의 다른 부분들도 긍정적으로 생각해 나가야겠다. 가지튀김을 철근같이 씹어먹으며 오늘도 사관들이 싱크대 위에 올려놓은 18인분의 그릇을 설거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