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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수 Oct 27. 2024

수박의 심장을 바친다.

선상의 크리스마스

수박의 심장을 바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이스크림이나 초콜릿 같은 디저트들을 먹으세요.

스트레스(Stressed)를 거꾸로 읽으면 디저트(Desserts)입니다.

-찰리 채플린     

 첫 항차의 목적지는 호주 글래드스턴이다. 12월에 6일 통영항 출항 후 이틀 정도 겨울을 느낄 수 있었고 하루 정도 봄을 느낄 수 있었다. 나흘 차에 일본의 오키나와 부근을 지날 때는 완연한 여름이었다. 빠르게 계절을 건넌 뒤에 적도를 넘었다. 일주일 후 적도를 지나가는데 지구과학 수업에서 적도는 무풍지대라고 들었던 것을 떠올리며 무풍을 경험해 보기 위해 야외 계단으로 나가려 했다. 나무로 된 비상구 손잡이를 가볍게 밀었지만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생각보다 거센 바람에 몸을 문에 부딪혀가며 힘겹게 문을 열었다. 일본의 자연재해를 그린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재앙을 막기 위해 문을 닫으러 안간힘을 쓰는 장면이 떠올랐다. 

  무풍지대라기에는 바람이 너무 세게 불고 있었다. 호루라기가 난간 위에 있었다면 불지 않아도 소리가 날 정도였다. 생각해 보니 내가 발을 디디고 있는 곳은 육지나 섬이 아닌 시속 38KM로 나아가는 상선이었다. 즉, 무풍지대를 나아가는 배에는 시속 38KM의 바람이 불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가끔 밤에 바람이 세게 불 때는 전력을 다해 문을 몸으로 밀어붙여도  벽을 미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끔 힘이 부칠 때면 스즈메와 고양이가 나타나 문 여는 것을 도와주길 바랐다. 

 한국에서 출항한 지 13일째, 적도를 지나 남반구에 있는 호주 글래드스턴 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박 중에는 외부인 출입을 막기 위해 갑판부가 문을 케이블타이로 봉인한다. 밖으로 나가려면 어퍼데크까지 내려가야 한다. 두 개의 층을 내려갈 힘과 시간이 없는 불쌍한 조리원 최지수는 금이 가있는 유리창을 통해 호주의 넓은 하늘을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 

 호주는 정박지에서 몇 시간의 외출이 가능했다. 조리수가 가스장에게 나도 나가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첫 항차에는 밖에 내보내지 않는다며 거절당했다. 조리수는 까칠하고 화가 많지만 상사가 아니었다면 동네 형으로 친하게 지내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고 정이 많았다. 대부분의 선원은 정이 많고 으리으리한 의리를 가지고 있다.

 낮에는 갑판에서 일하며 자외선을 흡수하고 저녁에는 알코올을 흡수하기 때문에 항상 볼이 빨간 갑판원이 있었다. 그는 배를 타기 전 사회에서 16년간 요리를 하였고, 처음에는 조리원으로 승선하였다. 하지만 주말에 쉬고 싶고 남이 차려주는 밥을 먹고 싶다며 갑판으로 부서를 옮긴 후 극상의 만족감을 표했다. 때로는 설거지하는 내 옆으로 와서 놀리기도 했던 친한 형이다. 볼 빨간 갑판원은 조리부 출신이어서 조리부와 친했다. 외출을 하고 오며 내게도 햄버거를 선물해줬다. 햄버거 포장지에는 헝그리잭이 인쇄되어 있었다. 버거킹은 호주에서만 헝그리잭으로 상표권을 가지고 있다. 11년 전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할 때 헝그리잭을 자주 사 먹었었다. 한국 버거킹에서 느낄 수 없는 청국장 냄새가 쿰쿰하게 나는 헝그리잭 그대로였다. 빨간 갑판원덕에 내가 머물렀던 골드코스트의 서퍼스파라다이스를 떠올릴 수 있었다. 

 11년 만의 호주 방문인데 공기도 맡아보지 못하는 게 아쉬워 케이블타이로 묶여있는 문을 열어봤다. 캥거루 손이 하나 들어갈 정도로 작게 문이 열린다. 문틈으로 코만 겨우 내밀어 호주 공기를 맡을 수 있었다. 호주 공기를 맡으니 내가 일했던 수박 농장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필름처럼 길게 펼쳐졌다.      

 흙내음이 금방이라도 날 것만 같은 그곳은 가장 가까운 마트까지 130KM가 떨어져 있던 크리스털브룩이라는 농장이었다. 농장에 도착한 첫날 생애 처음으로 은하수를 봤다. 그 밤을 놓치고 싶지 않아 모닥불 앞에 앉아 은하수를 보며 밤을 새운 기억이 있다. 사실 그곳은 밤이면 밤마다 은하수를 볼 수 있었다. 늦은 오후에 일을 마치고 맥주 뚜껑을 딸 때 즈음의 해가 저무는 시간이면 동쪽 하늘에는 항상 분홍빛 노을이 지던 아름다운 농장이었다.

 수박 농장은 풋볼경기장 99개 크기로(가끔 구글 지도를 통해 찾아보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더 커져 있다.) 밭 끝에서 끝을 바라보면 지평선이 보였다. 그 모든 밭을 한 번에 재배하지는 못했지만, 수박밭이 펼쳐져 있으면 수박의 바다 위에 떠있는 느낌이 들고는 했다. 그 넓은 농장에서 가끔은 혼자 일을 하기도 했다. 혼자 일을 하다 보면 기묘한 일을 많이 겪게 된다. 40도에 육박하는 살갗을 에는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그늘도 없이 일하다 보면 매 두세 마리가 내 머리 위 창공을 빙빙 돈다. 내가 쓰러지기만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나는 눈치도 없이 쓰러지지 않고 꿋꿋이 땡볕 아래에서 일을 해 나아갔다.

 또 다른 기묘한 일은 분명 혼자 일하고 있는데 가끔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밭고랑 너머의 수풀 사이로 인기척이 느껴진다. 호주 원주민 어보리진일까? 섬뜩하지만, 이런 곳에 사람이 있을 리 없다.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밭일을 이어나간다. 또다시 더 많은 시선이 느껴져 숲을 쳐다보았다. 숲 사이로 사람의 형체를 한 무언가가 여럿 서있다. 두 발로 서있고 사람처럼 팔도 달렸다. 하지만, 사람이라기에는 몸에 털이 너무 많다. 눈을 마주쳤다. 공격성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호기심 가득한 사슴 같은 눈망울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세 마리가 호기심과 사람에 대한 경계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듯하다. 시야가 숲 속 그늘에 적응하면서 초점이 맞춰지니 캥거루과에 속하는 미니캥거루 왈라비임이 식별되었다. 참 신기한 경험이다. 동물원에서 사람이 동물을 보듯 밭에서 왈라비들이 나를 구경하고 있었다. 외롭게 밭일하다 보면 왈라비마저도 반갑게 느껴진다. 조금 더 오래 일하고 보니 사실, 그들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비싼 모종을 기름진 땅에 심어 좋은 비료로 기른 최고로 맛있는 수박이 그들의 진짜 목적이었다. 가끔 용감한 왈라비들이 내가 일하고 있는 와중에도 저 멀리서 재빠르게 수박을 먹고 도망갔다. 왈라비가 먹튀 한 수박의 잔해를 보면 전쟁 영화에서 방탄모를 쓰지 않고 싸우다 총을 맞고 깨져버린 머리가 떠올랐다. 총알이 박힌 것처럼 한 부분에 구멍이 뚫려있다. 총 맞은 사람의 뇌와 골수가 쏟아져 버린 것처럼 수박이 깨진 부분의 흙바닥에는 참담할 정도로 수박 잔해와 과즙이 흥건하다. 신기했던 점은 왈라비들은 수박의 가운데 부분만 먹었다는 것이다. 수박의 단면을 잘라보면 지구처럼 층이 나뉘어 있다. 껍질과 흰 부분을 지각이라 하면 그 밑의 비교적 더 단단한 빨간 부분을 멘틀이라 지칭할 수 있겠다. 그리고 가운데 멘틀보다 더 부드럽고 달달한 핵 부분이 있다. 색깔도 좀 더 연하고 설탕이 섞인 것처럼 흰 빛을 띤다. 당도를 측정하는 brix수치의 가운데 부분과 겉 부분이 다르다. 

 수박의 핵을 멜론 피커(하루 종일 수박만 따는 직원)들은 수박의 Heart, 즉 심장이라 불렀다. 이들도 왈라비처럼 수박의 심장만 파먹고는 나머지는 버렸다. 나는 버려지는 수박이 아까워 멘틀까지 다 퍼먹었는데, 그곳은 말 그대로 수박 농장이었다. 지평선이 보이는 수박 농장에서 수박을 아낀 들 염전에서 소금을 아끼는 격이었다. 나중에는 수박의 심장 그것도 외핵 부분 말고 내핵 부분 아주 조금만 먹고 버렸던 기억이 있다.     

 호주에서 한국으로 출항한 다음 날 점심 후식으로 수박을 내었다. 고작 한 통을 34명에게 나눠줘야 했다. 상선이라는 계급사회에서 가장 좋은 재료는 선장 식탁에 올려야 한다. 선장 식탁에는 선장과 기관장 혹은 선장과 기관장의 직급을 갖고 있지만 가스장, 1등 기관사의 직책을 맡고 있는 이들이 앉아 있었다. 11년 전 호주 마타랑카의 수박 농장에서 일할 때를 떠올리며 수박의 심장을 선장 식탁에 바쳤다. 그들은 달달한 수박의 심장을 맛있게 먹었다. 마치 왈라비처럼. 

 가끔은 바람이 들어 맛이 밍밍한 수박이 있었다. 그럴 때면 수박에 설탕을 왕창 뿌려서 내놓았다. 한 번은 그렇게 내놓은 수박을 먹은 갑판수가 설탕 뿌린 것처럼 달달하다면서 엄청 좋아했다. 극찬을 듣고는 햄스터를 닮은 조리장과 눈이 마주쳐 조용히 웃었다.           


선상의 크리스마스     

Carpe Diem

-‘현재를 즐겨라’라는 뜻의 라틴어     

 내 기억 속 수십 번의 크리스마스는 매번 행복과 은총이 흘러넘쳤다. 좋은 기억들의 연속성은 이번 크리스마스를 계기로 깨어질 것만 같았다. 도무지 태평양 한가운데에서는 기적을 바랄 수 없었다. 

 크리스마스이브날, 대개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것을 먹으며 따듯한 시간을 보낸다. 항상 진수성찬이 나오는 배에서도 특식으로 양갈비가 나왔다. 낯을 많이 가리는 나는 아직 선배들과 많이 친해지지 못했다. 선배들은 술잔을 맞대며 호쾌하고 행복하게 웃었다. 그들의 큰 입에서는 외로움이나 우울함을 찾을 수 없다. 연말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선원 특유의 우정, 의리, 동료애, 헌신, 이타심으로 충만한 느낌이다. 만화 [원피스]에 나오는 해적들이 떠들썩하게 술을 마시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와중에 MBTI가 95%의 I(내향형)인 나는 대중 속에서 식사하며 고독을 느꼈다. 고독에 도전하기 위해 아끼는 지인들에게 크리스마스 인사를 보냈다. 열심히 다니던 성당의 지인과 인사를 나눴는데 곧 성탄전야 미사가 시작한다며 이쁘게 꾸며진 성전 사진을 보내줬다. 내가 다니던 성당에는 동경하는 자매님이 한 명 있었는데 만약 육지에 있었더라면 성당에서 함께 기도를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우울한 마음에 방에 들어와 냉장고를 열어 차게 식어있는 캔맥주를 딴다. 냉동고와 냉장고가 함께 있는 작은 일체형 냉장고의 냉동고 바로 밑 칸은 맥주 전용 좌석이다. 육지에서 가져온 유리잔에 맥주를 따른다. 잔속에 차가운 액체가 들어가면 색이 변하며 앙상한 가지만 있던 나무에 분홍 벚꽃이 활짝 피어오른다. 구름처럼 아름답게 거품이 낀 맥주를 단숨에 반 이상을 들이켰다. 퐁퐁 거품으로 더러운 접시를 닦아내듯 맥주 거품으로 우울을 단번에 닦아 내린다. 입가에는 산타클로스처럼 흰 수염이 만들어진 채 이게 육지에서 수많은 연인들이 하고 있을 뽀뽀보다 더 좋다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내일은 이전의 크리스마스들과 같이 행복한 하루가 되길 바라며 일찍 잠에 든다. 뺨 위로 뭔가가 흐른다. 눈물인 것 같다. 

 크리스마스 당일, 여느 때와 같이 새벽 다섯 시에 출근하여 아침밥을 짓는다. 조리원에게 연휴는 의미가 없다. 아침부터 사관 식당을 세팅하는데 바로 옆에 위치한 사관 휴게실의 초라한 트리와 미약한 조명을 보니 괜스레 화가 올라온다. 이단옆차기를 날려 플라스틱 트리의 나무를 반파시키고 싶다. 시누이처럼 얄밉다. 조명은 번쩍거리는 게 눈을 맞추며 나를 놀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저녁에는 크리스마스 만찬이 차려졌다. 오징어 먹물 리소토와 토마토 베이스의 해산물 파스타 그리고 랍스터 꼬리에 특제 갈릭 버터 소스를 바르고 그 위에는 모짜렐라 치즈와 파슬리 가루가 뿌려진 한상이 제공되었다. 치즈 위에 정성스럽게 토치질 해서 버터와 랍스터 그리고 파슬리의 향을 끌어올린다. 로맨틱함이 흘러넘치는 이 음식을 포크와 나이프가 아닌 숟갈과 젓가락으로 먹는 선원들과 함께하니 뭔가 허무하다. 술도 약간 곁들였는데 아쉽게도 선택지는 맥주뿐이었다. 포도주잔에 6분의 1만 포도주를 따르고 잔을 흔들어가며 에어레이팅을 충분히 한 후에 한 층 부드러워진 포도주가 담긴 잔을 들고 입과 코로 동시에 숨을 들이쉬어 입으로는 맛을 음미하고 코로는 향을 감상하며 아주 천천히, 천천히라는 표현보다 더 천천히, 천 천천히 마시고 싶다.  

 저녁 일까지 마치고 쓰레기를 버린 후 잠시 바다를 보았다. 바다는 먹물처럼 검다. 달빛이 바다를 비추고 있다. 낭만은 딱 4초만 느낄 수 있다. 배가 물살을 가르며 마름모 모양의 물결을 만든다. 배의 진동과 배가 물살을 가르는 차진 소리가 겹쳐 내 마음 심연의 불안을 불러온다. 마름모 모양의 물결에 달빛이 비쳐 거대한 눈처럼 보인다. 저 정도 거대한 크기의 눈이라면 전설 속의 해양괴물 크라켄이나 모비딕쯤 될 것이다. 갑자기 크라켄의 빨판이 튀어나와 나를 심연으로 데리고 갈까 두려워 선내로 들어와 문을 닫는다. 휴, 살아있음에 안도한다.

 기대하며 카톡을 켜 보지만 아쉽게도 누군가가 내게 먼저 카톡을 보내주는 일은 없었다. 연필을 들고 일기장을 채워 나가며 내년 크리스마스에 하고 싶은 일을 적었다. 오늘 먹은 먹물 리소토와 토마토 해산물 파스타 그리고 랍스터 꼬리를 한강이 보이는 여의도 콘래드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내가 함께하고 싶은 그리고 나와 함께하고 싶어 하는 사람과 먹는 것이다. 테이블 중앙에는 장미 한 송이와 작은 촛불이 있었으면 좋겠다. 장밋빛 미래를 상상하며, 동시에 검은 바다만큼의 우울함에 젖은 채 잠에 들었다.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보낸 크리스마스 밤이었다.

 우울한 생각을 하며 잠에 들면 우울한 꿈을 꾸게 마련이다. 하지만 나의 크리스마스는 항상 행복한 기억뿐이었다. 꿈속은 칠흑 같은 밤이었다. 지인들과(누구인지는 어둠 때문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반말을 한 걸로 보아 호의적인 관계임에는 분명했다.) 통통배를 타고 낚시를 했다. 찌를 넣고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예사롭지 않은 입질이 왔다. 낚싯대가 활처럼 휘었고 내 팔에도 강한 텐션이 걸렸다. 나는 물고기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어르고 달래며 릴을 감았고 배 앞으로 끌고 왔다. 지인이 뜰채로 들어 올린 곳에는 아주 거대한 복어가 있었다. 우리 일행은 차례로 세 마리나 월척을 잡았다. 지인들은 참돔과 광어를 낚았다. 물고기는 사람 몸통만큼이나 거대했다. 자로 쟀다면 세 마리 전부 7짜 혹은 8짜 정도 됐을 것이다. 만선을 한 후에 금의환향을 하듯 의기양양한 채로 육지로 돌아왔다. 

 배에서 내린 후 횟집에 가서 복어는 지리로 끓여 먹고 참돔과 광어는 회로 썰어 먹었다. 지리는 말 그대로 지리는 맛이었고 참돔은 달달하고 쫄깃했다. 광어는 혀에서 미끄러질 만큼 기름기가 흘러넘쳤다. 지인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며 밤새 유쾌하게 술을 마셨고 횟집 창가를 통해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였다. 웃으면서 잠에서 깰 정도로 너무 즐거운 꿈이었다. 이렇게 2023년에도 크리스마스에는 기적이 일어났고 내 루틴을 지킬 수 있었다.

 다음 날 내 꿈속 참돔과 광어의 행운을 조리장과 조리수에게 나눠줬다. 그들은 고맙다고 이야기를 했다. 선배들 왈 가끔 문제없이 배를 나아가다 보면 입항일을 맞추기 위해 배를 잠시 멈추고 드리프팅(닻을 내리지 않고 수면 위에 머무는 것)을 한다고 한다. 그때 (몰래) 낚시를 하는데 한 번은 갑오징어 떼를 만나 20마리를 잡았다고 한다. 외국물을 먹은 갑오징어는 매우 컸다고 한다. 갑오징어로 회를 쳐 먹었는데 너무 질기고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오징어볶음을 해 먹었는데 살이 통통하고 야들야들해서 선원들의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 또, 입항할 때 가끔 통발을 내린다. 내가 양파를 까기 때문에 양파망을 갖게 되는데 입항 전 선배들의 부탁으로 양파망을 만들기 위해 예정에도 없던 양파를 까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양파를 받아간 선배들은 물고기를 잡으면 아무 말이 없었고, 물고기를 잡지 못할 때만 말짱 꽝이었다며 내게 결과 보고를 했다. 선상생활 곳곳에는 이스터 에그 같은 재미가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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