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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수 Oct 27. 2024

선상의 달리기

전선을 간다

선상의 달리기     

나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계획대로 차근차근 밀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반드시 기회는 옵니다.

-이봉주


 선상에서 나를 무너지지 않도록 지지해 주는 세 가지가 있다. 맥주, 문학 그리고 달리기. 다시 생각해 보니 매일 무너져 있는 상태이지만, 세 가지가 무너진 내 멱살을 끌고 전진해 주고 있다. 달리기를 좋아하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뭍에서 한 달 반 그리고 바다에서의 기간. 23년 8월에 철인 3종 경기 하프 코스를 완주했다. 몸 컨디션이 올라왔는데 이대로 배에 오르기엔 여전히 자기만족과 성취에 배가 고팠다. 10월과 11월에 마라톤에 출전하였고 그 과정에서 달리기와 사랑에 빠졌다.

 달리기의 매력은 역시 언제 어디서나 준비와 생각 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그곳이 선상일지라도. 배에도 체육관이 있다. 다만 배의 수명만큼이나 기구들도 낡았다. 2대 있는 러닝 머신 중 1대는 고장 났고 나머지 1대도 온전치 않다. 트레일의 접지가 좋지 않아 속도가 때때로 빨라지거나 느려진다. 롤링의 영향도 있는 것 같다. 가운데서 뛰면 어느 정도 갑작스러운 속도 변화를 컨트롤할 수 있을 테지만, 가운데서 뛰면 오래되고 털털거리는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는 소리가 체육관이 있는 A 데크에 크게 울려 퍼진다. 쥐라기 공원의 티라노사우루스가 달리는 소리를 영화관에서 듣는 것만큼이나 크다. 러닝머신 앞에는 ‘운동하는 지금 시간은 다른 선원분들의 쉬는 시간입니다.’라고 쓰여있어 소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최대한 뒤쪽에서 사뿐사뿐 뛰어야 하는데 갑자기 속도가 빨라지면 러닝머신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몇 번 떨어진 적 있는데 다행히도 다치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직선으로 뛰어도 배에서의 롤링 때문에 몸이 좌우로 움직였다. 롤링이 약할 때는 좌우로 움직이는 정도가 적어 결국에는 가운데 부분에서 달리게 되는데, 롤링이 심할 때는 좌우로 심하게 움직여져 옆구리가 팔걸이에 부딪히고는 했다. 지금은 롤링에 적응하여 롤링 패턴의 파악해 좌측 대각선으로 그리고 우측 대각선으로 달리며 팔걸이에 부딪히지 않게 되었다. 

 한 달을 체육관에서 달렸을 때 갑판부 선배에게 주말에는 갑판을 달려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는 화요일날 들었는데 주말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평소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마침내 주말이 다가왔고 일찍 갑판에 나왔다. 아침 해가 빛나는 끝이 없는 바다를 마주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신나게 달려 나갔다. 창문 하나 없는 건조한 체육관에서 달리다 갑판에서 달리니 헤르메스처럼 하늘을 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비록 불편하고 무거운 안전화와 안전모를 착용해야 하지만, 대양의 하늘과 바다를 보며 달리면 불편함조차 헤르메스의 날개 달린 신발과 모자처럼 가볍게 느껴진다. 주로 적도 부근의 습하고 더운 지역을 항해하므로 달리기 위해 생활동에서 문을 열고 갑판으로 나가면 덥고 습한 바람이 나를 맞이한다. 다행히 해풍이 강해 덥고 습한 대기가 내 목을 조여 오는 최악의 상황은 막아준다. 배의 연장은 280m이고 폭은 43m로 선두와 선미를 제외하면 한 바퀴에 400m가 조금 넘는다. 배의 오른쪽은 스타보드, 왼쪽은 포트라고 부른다. 나는 시선과 고개를 약간 우측으로 두어 바다를 보며 반시계 방향으로 달린다. 스타보드를 달릴 때면 선두에 부서지고 있는 파도를 보며 바다 위를 달리는 느낌을 받는다. 포트를 달릴 때는 이미 선두에 부서져 있는 파도를 보며 바다를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을 받는다.

 두 번째 항차 주말에는 조리장님의 배려로 아침을 하지 않아도 되어 늦잠을 자야 한다.(그만큼 나는 게으르다.) 점심을 마무리하고 태양 빛이 절정에 달해 헤르메스의 신발과 모자를 녹여버릴 수 있을 때 즈음 갑판을 달린다. 태양을 피하고 싶어 안전모 아래에 검은색 나이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달리지만, 해풍이 심할 때는 모자에 바람의 저항이 심해 착용할 수 없다. 

 모자를 벗어던지면 바다만 보이던 내 시야에서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구름을 보며 무언가를 닮았다고 생각한 게 몇 년 만이던가. 버섯 모양 구름을 보고 지난 몇 년간 구름을 보고 비슷한 피사체를 떠올려 본 적 없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몇 바퀴를 더 돌고 나니 버섯 모양 구름 옆에 티라노사우루스 구름이 버섯을 먹으려 하고 있었다. 티라노사우루스는 육식 공룡으로 알고 있는데 저 티라노사우루스 구름은 자기 관리하는 비건 공룡이구나 생각했다. 그날 이후 하늘은 내게 온통 도화지처럼 보인다. 멋진 구름을 만녀면 손에 담아 주머니에 넣는다. 가끔 다시 구름을 보고 싶으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구름을 본다.

 한 번은 배의 가까운 곳에 적란운이 서 있었다. 강력한 상승 기류에 탑과 같은 모양으로 수직으로 치솟은 구름이다. 마치 클라이머들이 타는 암벽처럼 생겼다. 갑판에 서서 구름을 보며 암벽등반 루트를 찾아 튀어나온 구름 홀드를 잡고 올라가는 멋진 상상을 했다. 결국은 정상 등반에 정복하고 구름의 꼭대기에 앉아 배와 바다를 내려다보는 모습까지 그려봤다. 한참을 적도의 태양 아래에 서 있느라 몸속에 수분이 많이 부족해졌다. 관자놀이에서 출발한 땀이 볼을 타고 내려와 내 입꼬리에 안착했다. 입꼬리를 타고 혓바닥 위에 올려진 땀구슬은 짭짤했다. 마침 염분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때라 입맛을 다셨는데 인중에 있던 땀이 짜고 달달하게 느껴졌다. 구름을 보며 땀을 맛보니 스타벅스에서 제일 좋아하는 클라우드 치즈케이크 맛이 났다. 카페에 가서 아이스아메리카노와 클라우드 치즈케이크를 시키고 싶은 무더운 날이었지만, 가장 가까운 카페까지는 적어도 1000km는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확 다가온 현실에 조금 서글퍼졌다. 서글픔을 달래기에는 역시 달리기가 제격이다. 혼미해진 정신의 끈을 매고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선미에서 선두까지 달리고 선두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폭이 40m도 채 안 된다. 잠깐이지만 우측이 아닌 정면의 바다를 보며 달린다. 땀에 범벅이 된 채 그대로 난간을 뛰어넘어 푸른 바다로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바다 위에 있어도 수영 한 번 하지 못했다. 무인도에서 바닷물을 보면서도 물을 마시지 못해 갈증을 느끼는 듯한 기분이다. 사람이 바라보는 수평선의 거리는 5km 정도 된다. 헝가리에 있었을 때 헝가리의 바다라 불리는 발라톤 호수를 종단하며 5.3km를 수영하는 대회에 나간 적이 있다. 섬이 보이고 만약 바다가 성나지 않다면 그 섬까지 무난하게 헤엄쳐 갈 수 있다. 내게 미래가 없다면 오늘, 모험을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물에 대한 갈증과 개인적 욕망들에 의한 갈증에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기만 한다. 심해에서 푸른빛을 띤 광선들이 올라와 영롱히 빛나는 바다는 마치 파워에이드 맛이 나 내 모든 갈증을 헤쳐줄 것만 같다. 

 예전에는 앞뒤 가리지 않고 빠르게 달려 순간의 높은 페이스를 유지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이제는 천천히 달리지만 예전보다 더 멀리 갈 수 있게 되었다. 한 번 달릴 때 400m의 트랙을 10~20바퀴 달린다. 달리는 페이스에 관계없이 일단 20분 정도 달리면 위기가 찾아온다. 그 위기를 겪으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이 선상에서 유일하게 스스로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다. 위기를 지나치면 그 위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한 발 한 발 내딛는 순간에 집중하며 전진한다. 곧 그 위기는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나는 평소 지독하게 우울을 느끼는 만큼 아주 쉽게 도파민이 분비된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20분경 위기가 지나면 바로 도파민이 분비되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도 좋아 죽을 것처럼 느껴진다. 

 이때부터는 나만의 세계로 빠지게 된다.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며 망상이 시작되고 현재를 잊는다. 이 순간만큼은 이어폰에 흘러나오는 음악도 소음이 된다. 그저 현재의 소리, 냄새, 시각 등 감각의 입력 없이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환상을 마치 루시드드림(지각몽)을 꾸듯 생생히 느낀다. 그렇게 시간 여행을 하고 달리기 시작한 지 한 시간이 흐르면 체력에 한계를 느낀다. 이 한계를 깨면 또 다른 감각을 느낄 수 있지만, 저녁을 만들러 가야 하므로 아롱사태처럼 탄탄해진 종아리를 뽐내며 생활동으로 복귀한다. 

 샤워기에서 물이 나오지 않아도 샴푸로 충분한 거품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머리카락이 흠뻑 젖어있다. 욕실로 와서 티셔츠를 걸레 빨듯 꽉 짠다. 소금물이 줄줄 흐른다. 내 우울과 나태 그리고 전날 마신 맥주의 불순물도 함께 내 몸에서 땀으로 배출된 듯하다. 샤워를 마치고 냉장고에서 차갑게 식은 이온 음료를 꺼내 원샷한다. 구름 위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 같은 천국의 맛이 느껴진다. 거울을 통해 본 내 얼굴은 관우처럼 붉지만 그만큼 생기가 넘친다. 상쾌한 감정의 파도 속에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달리면 하루가 즐겁고 우울함이 줄어든다. 배에서 우울의 심장을 찌를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달리기인 것 같다. 나는 계속 달리고 싶다. 저기 푸른 바다 위를.     


전선을 간다     

정의가 무너진 사회에서는

어떠한 번영도 있을 수 없다.

-노무현


 아침에 이틀 연속으로 물을 테이블에 내놓지 않았다. 점심 저녁은 잘 내주는데 이상하게도 아침만 물 내놓는 것을 잊어버린다. 오전 5시에 출근하여 아침 식사 시작 시간인 6시까지도 뇌의 부팅이 덜 되어 사고회로가 잘 돌아가지 않는 듯하다. 조리수는 한 번의 실수는 가볍게 넘어가 주지만 두 번 연속으로 실수하면 한마디 한다. 보통은 집중하라고 하는데 그날의 멘트는 평소와 달랐다.

“조심해, 너는 모르는 위기가 네게 다가오고 있어.”

 그의 한마디에 나는 불안함의 망토에 온몸이 휘감긴 기분이 들었다. 아직도 부팅이 끝나지 않았던 뇌가 순간적으로 빠르게 회전하며 위기에 빠지는 두 가지 경우의 수에 대해 생각해 봤다. 다른 부서에서 내가 실수를 많이 한다고 조리수에게 손 좀 보라고 이야기를 했거나, 하선했던 오 차장(무서움)이 재승선하는 것 중 하나일 것으로 생각했다. 조리수의 그 한마디에 하루 종일 긴장하며 조리부 선배뿐 아니라 다른 부서의 선배들 눈치도 봐가며 스스로에게 계속 물었다. ‘인사를 더 잘해야 하나?’, ‘옷차림을 좀 더 단정히 하고 싹싹하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 하나?’ 하루 동안 눈칫밥을 먹고 저녁 식사 후 설거지를 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뒤에서 설거지거리를 나르고 있는데 내가 들어왔는지 모르는 조리수가 설거지하며 한탄을 하고 있었다.

“아이고, 지수 불쌍해서 어떻게 하나. 아이고, 지수 어떻게 해.”   

 대체 무슨 일이길래 날숨 한 번에 아이고를 두 번이나 연달아 사용하며 나를 걱정하는지 깜짝 놀라 물어봤다.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맥주 두 캔 들고 내 방 찾아 온나”   

 막상 설거지를 끝내고 맥주 네 캔을 들고 방으로 찾아가니 조리수는 다른 선원들과 게임 중이었다.

 고독한 내 방으로 왔다. 방에 외롭게 앉아 무드등을 켜놓고 두려움에 떨며 배의 엔진 진동 소리를 들었다. 고래의 배 속에 갇혀 빠져나갈 궁리를 하는 피노키오가 된 기분이었다. 조리수에게 들었던 위기에 빠진 사유를 도출한바 저번 항차에 내린 오 차장이 이곳에 돌아온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고민에 빠진 채 잠들었는데 밤 동안 나의 무의식이 결론을 내려주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있자. 이 또한 내가 감당해야 할 것으로 받아들이자. 오 차장이 한없이 나를 내리쳐도 그저 쇳덩이처럼 잘 식혀가며 계속 단단해지자. 또,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자. 오 차장은 본인의 짜증에서 생겨난 분을 이기지 못해 내게 파편이 튀어나오는 것이고 그 순간만 제외하면 충분히 잘해주고 재밌다. 이런 불편한 관계를 과거에는 그냥저냥 버티기만 하며 시간이 흘러 관계가 끝난 적은 있었지만 사이가 좋아지도록 극복해 본 적은 없는데 이번 기회에 한 번 해보자.

 스스로 생각을 매듭지었을 무렵 인사팀 직원에게 메시지로 인사 통보가 왔다. 

“2월 8일 하선 후 2월 18일 다른 배로 전선(傳船) 갈 예정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혹시 왜 전선을 가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새로 올라오는 조리수가 경력이 적은데 지수 씨도 첫 승선이기 때문에 부담을 줄이기 위해 다른 선박으로 가는 겁니다.”

 뜻하지 않게 승선 66일 차에 하선하게 되었다. 조리수에게 이야기했더니 다행이라고 한다. 이곳에 오 차장이 타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내가 전선 간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둘이 타게 되는 줄 알고 나의 안위를 걱정한 것이다. 햅쌀로 갓 지은 밥처럼 따듯하고 고소한 조리수의 마음이 참으로 고맙다. 조리수는 내게 하선하면 뭘 하고 싶은지 물었다. 6월에나 다시 땅을 밟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선이라는 건 까마득히 먼 미래의 이야기라 그 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건 오직 하나였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무엇이든 해보고 싶습니다.”

예상외의 의젓한 대답에 조리수도 나도 놀랐다. 매일 자기 전 각각 1,500명의 전세사기 피해자가 있는 두 개의 오픈채팅방을 훑으며 함께 분노하며 내가 할 수 있는 걸 고민했던 까닭일 것이다. 15,000명의 전세사기 확정 피해자들은 현재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있다. 6월이면 중지된 경매가 조금씩 재개된다. 그들이 받는 전세사기의 고통은 멈춘 게 아니라 미뤄지고 있을 뿐이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내가 겪은 고통을 만 명 2만 명의 피해자들과 그의 가족들이 그대로 겪을 것이다. 

 전세지옥에서 살고 있는 피해자들은 사기꾼들이 운영하는 양계장의 정지된 레일 위에서 팔다리를 묶인 채 아무 저항 못하고 경제적 살인을 당할 운명에 처해 있다. 그저 절규하며 기다릴 뿐이다. 레일이 재가동되는 건 시간문제다. 피해자들을 도와줄 수 있는 힘은 그 소수의 절규를 철저히 외면한다. 마치 피해자들과 힘 사이에는 소리가 통과하지 못하는 방음벽이 세워져 있는 듯하다. 힘은 벽 너머의 다수 국민에게 전세사기 피해 대책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잘 대처하는 중이라고 이야기한다. 세월호 사건 때도 이태원 참사 때도 힘은 그럴듯한 뉴스를 발표했다. 나는 힘이 최선을 다해 피해자들을 열심히 지원해 주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이 왜 어린아이 떼를 쓰듯 끊임없이 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전세사기 피해자가 되기 전까지는. 

 내 전셋집은 지난해 4월 경매가 마감되어 더 이상의 구제를 받을 수도 없고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지금 전세지옥에 빠져 있는 피해자들이 조금이라도 진심이 담긴 도움을 받기를 바랄 뿐이다. 앞으로 다가올 재난도 지지하는 당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것이다.  

 전선(傳船) 통보를 받고 지난 2주 동안 나는 사기꾼들에 대한 복수의 칼날을 갈며 나와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위한 두 개의 약속을 잡았다. 하나는 원양 상선의 첫 월급으로 하선 다음 날인 내 생일(2월 9일)에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다. 선물은 상당한 금액의 고소 수임료다. 내게 사기를 친 사기꾼들을 민사 고소하기 위해 변호사와 만나기로 했다. 피해자로서의 직접적인 첫 반격이다. (나머지 한 개의 약속은 ‘선상투표’ 장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라스라판호는 대한해협을 지나 동해로 흘러들어왔다. 답답하고 두렵고 걱정되는 마음에 갑판의 동쪽으로 나가보았다. 일본의 어느 섬이 보인다. 날씨가 우중충해 답답한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있을 서쪽으로 돌아서니 동쪽과 별다른 바 없어 보이지만 한쪽에 두꺼운 회색 구름을 뚫고 햇살이 바다를 비추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노라면 마치 하늘이 열리는 듯하고 곧 희망찬 미래가 펼쳐질 것 같다. 이 신비스러운 광경은 틈새빛살이라고 일컫는다. 어두운 먹구름 위에도 항상 빛은 우리를 향해 비추고 있었다. 희망의 찬송가를 실은 동해의 바람이 귀를 스쳐 지나간다. 나는 삼척에 하선하여 전선(戰線)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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