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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수 Oct 27. 2024

소각실의 도예가

맥주


소각실의 도예가     

뜨거운 가마 속에서 구워낸 도자기는 

결코 빛이 바래는 일이 없다.

-쿠노 피셔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기회 또한 감사하게도 내 몫이었다. 부원 식당에 3개, 사관 식당에 3개, 주방에 2개의 쓰레기통이 있다. 75L짜리 검은 봉투를 씌우고 보통 이틀에 한 번씩 봉투를 교체했으나, 하루에 한 번씩 쓰레기통을 비우도록 지시한 조리장도 있다. 재활용 쓰레기는 캔과 병만 분리수거를 하는데 보관실이 따로 있었고 한국에 입항할 때 정리한다. 음식물 쓰레기는 디스펜서로 갈았다. 음식물 쓰레기는 육지로부터 12해리(22KM) 밖에서는 투기가 가능하다. 디스펜서에 갈린 음식물은 특별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다로 내려간다. 어느 조리장은 디스펜서를 갈 때마다 ‘물고기 밥 주자’하며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했는데 난 그 말을 참 좋아했다. 노후선이라 디스펜서가 자주 고장이 났기 때문에 수박껍질 같은 디스펜서에는 갈리지 않는 음식물 쓰레기는 밖에 던져버리기도 했다. 

 하루 혹은 이틀 동안 모아진 75L의 쓰레기 봉지 8개를 수거하여 엘리베이터 앞에 두고 새로운 쓰레기봉투를 쓰레기통에 묶는다. 나는 이 과정이 즐겁다. 헌 것을 처리고 새것을 채워 넣을 때마가 표현할 수 없는 상쾌함이 느껴진다. 마치 입에 박힌 가시를 빼낸 듯한 기분이다.

 8 봉지의 쓰레기봉투만 넣었을 뿐인데 5인용 엘리베이터가 가득 찬다. 출퇴근 시간의 9호선 지하철에 탑승하는 것처럼 나는 쓰레기들을 비집고 들어가서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MZ들은 요즘 머리 위로 카메라를 들고 정수리를 찍는다고 해서 나도 쓰레기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봤다. 이 또한 내게 주어진 직업의 일이고 대가로써 돈을 벌 수 있는 감사해야 할 행위이지만, 조금은 비참하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쓰레기봉지에서 정체 모를 짜릿한 쉰내가 나는 국물이 새서 옷이나 몸에 묻으면 울컥할 수밖에 없다.

 쓰레기봉지들은 소각실에 가져다줘야 한다. 거주구에서 나와 소각실 들어가는 갑판을 지날 때마다 이상하게도 바다에 떠다니는 해양 쓰레기들이 보인다. 나중에 의식을 하고 바다의 쓰레기들에 대해 관찰하였다. 사방의 망망대해에 배가 없는 환경은 쉽게 만날 수 있다. 그 정도의 원양에서도 바다를 잘 보면 100%의 확률로 인간이 버린 쓰레기들이 떠다니고 있다. 나를 포함하여 배에 탄 사람 중 쓰레기를 바다에 단 한 번이라도 버리지 않은 사람은 단연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너무 쉽게 바다를 사람의 소유물로 생각한다. 후대에게 물려줄 바다를 좀 아끼고 바다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바다쓰레기에 대해 심각성만 몇 번 전해 들었는데 실제로 바다에 나가보니 바다 쓰레기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 특히 중국과 공유하는 서해는 쓰레기 천지다. 가슴 아픈 일이다. 이미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쓰레기를 들고 해양쓰레기에 고민하며 소각장에 입장했다. 소각을 담당하는 기관수는 평일에는 일과시간에 일을 하고 주말에 소각을 했다. 주말임에도 일을 하고 있던 그는 나에게 받은 쓰레기를 제철소의 용광로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재질의 쇠로 만들어진 통의 문을 열고 쓰레기를 버린다. 소각기는 매트한 표면의 은색 철로 뒤덮여있고 코뿔소나 하마 정도 크기의 정사각형 모양이었다. 소각기가 버틸 수 있는 최대 온도는 1000도로 900도 이상이 넘어가면 기관실과 선내에 알람이 울린다고 했다. 보통 700~800도 선에서 관리를 한다고 했다. 온도가 일정 수치 이상으로 오르면 소각기에 넣는 쓰레기의 양을 줄여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작업하면 소각 시간이 끝도 없이 늘어나 문을 열고 소각을 한다. 소각실은 한 시간만 있어도 신경쇠약에 걸릴 것 같은 환경이다. 소각장은 엔진 위에 위치하여 매우 건조하고 덥고 시끄럽다. 그런 경험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고, 마치 화성에서나 느껴볼 수 있을 듯한 극한의 작업 환경이다. 기관수는 귀마개를 끼고 열을 차단하는 용접용 마스크를 끼고 소각하기도 한다. 무스카트 호에서 소각을 담당하는 기관수는 불멍 하듯 타들어가는 쓰레기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극한의 환경에서도 정말 초연한 얼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의 지인 중에는 전남 강진에서 30년째 고려청자를 만드는 도예가가 있는데 그가 1300도의 불가마 앞에서 작업을 할 때와 비슷하게 기관수도 극한의 상황과 삶에 초연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관수의 얼굴에는 선함과 성실함이 보인다. 종교는 없지만 흔히 일컫는 교회오빠 특유의 느낌이 났다. 나는 세, 네 번에 걸쳐 쓰레기봉투와 박스들을 소각장에 투척한다. 그는 분명 몇 번이고 괜찮다고 했지만 주말에 몇 시간이나 악조건에서 쓰레기를 태워야 하는데 자꾸 쓰레기들이 추가되는 건 그다지 괜찮은 상황이 아닐 것이다. 

 다른 기관수였으면 눈도 못 마주치고 도망갈 텐데 교회오빠 기관수에게 한 번은 실례를 무릅쓰고 할 만하냐고 물었다. 다른 기관수였으면 욕을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부원 중 유일하게 내게 웃음과 함께 인사를 해주는 착한 선배였다. 배에서 업무는 당연히 힘들다고 이것도 힘들지만 주말에 다 쉬는데 몇 시간이고 일해야 하는 게 짜증 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과하고 소각 자체는 재밌다고 했다. 만화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보면 살아서 말을 하는 불 캘시퍼가 있는데 쓰레기를 넣으면 불이 커져 매번 캘시퍼에 밥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고 했다. 또한,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매주 불한증막에 온다고 생각을 했다. 소각이 예정된 날이면 전날에 술을 조금 더 먹기도 한다고 한다. 해장국을 먹듯 해장 소각을 하면 금방 속도 괜찮아지고 몸에 쌓인 노폐물들과 술의 독성분이 빠져나가는 것 같다고 했다. 그의 긍정적인 마인드에 어느새 그의 옆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하며 쓰레기가 불에 타오르는 장면을 함께 바라봤다. 소각기의 유리덮개 안에서 낮은 온도를 불은 붉고 노랗게 서로를 뒤엎고 있었다. 그는 나보다 겨우 네 살 많은데 벌써 세 자녀의 아버지다. 대학교 신입생 때 만난 캠퍼스 커플과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했다고 한다. 가족에게도 성실할게 분명한 그의 가족 이야기를 들었고 물론 그도 고민이 많다고 했다. 쓰레기를 삼키는 불을 보며 생각하면 고민으로 생기는 스트레스도 풀리고 고민에 대한 답이 나올 때도 있다고 한다. 나는 그 업무가 부러웠다. 만약 업무를 바꿀 수 있다면 조타 다음으로 소각 업무를 해보고 싶다. 

 매번 전해지는 쓰레기 폭탄 투하에도 내게 인상대신 웃음으로 답해주는 게 너무 고마워서 한 번은 잘 식혀진 콜라를 갖다 줬다. 그는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내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각자 역할은 다르지만 쓰레기를 비우고 쓰레기를 태우는 작업은 고민을 태우고 아픈 마음을 치유해 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맥주     

술 마시는 건 시간낭비, 마시지 않는 건 인생낭비란 말이 있지

-아따맘마中     


 승선 50일 차, 짧은 기간 동안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게 있다. 몸무게를 10일에 1킬로그램씩 꾸준히 5kg을 증량해 냈다. 아마추어 복서에게 리버샷(간장 파괴 펀치)을 맞아도 한 대 정도는 흡하고 버텨낼 수 있을 것만큼 배가 포동포동해져 있다. 그동안은 살이 쪘다는 사실은 앞치마 속에 숨겨놓고 혼자만의 비밀 간직하고 있었다. 어느 날, 식당의 옆 테이블에 앉은 선배가 내게 어느샌가 갑자기 동그래져 있어서 깜짝 놀랐다고 이야기했다. 그냥 동그래진 것을 느낀 게 아니고 동그래져서 ‘깜짝’ 놀랐다니…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내게 큰 관심을 쏟지 않는 사람이 살쪘다고 말하는 건 심각한 경보다. 사태의 모든 원인은 야심한 밤마다 조금씩 홀짝이는 맥주와 함께 즐기는 맥주의 친구들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가장 손쉽고 가장 나쁘게 해결하는 방법이다. 

 배에서는 술에 관한 엄격한 룰이 있다. 지금부터의 사건은 그리 가깝지 않은, 하지만 10년도 채 되지 않은 과거의 이야기다. 다른 해운회사에서 선장과 일등 항해사가 술을 마시다 감정이 격해졌다. 선장이 병을 깨고 깨진 병의 날카로운 부분으로 일등 항해사의 부드러운 목을 찔렀다. 제삼자가 그들을 발견했을 때 일등 항해사는 이미 사망하였고, 선장은 술에 취한 채 일등 항해사 옆에 누워 자고 있었다고 한다. 병이 아닌 흉기로 인정이 되었고 선장 아니 살인자는 감옥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 후로 해당 회사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해운회사에서 알코올 도수가 10퍼센트를 넘어가는 술이 반입 금지되었다고 한다. 

 맥주도 무제한이 아닌 인당 하루 평균 1.5캔만 먹을 수 있게 반입을 제한하였다. 카타르를 왕복하는 이번 항차의 경우에는 36일 정도 소요되어 2박스를 실을 수 있었고, 저번 호주 항차는 25일 정도 소요되어 1박스만 실을 수 있었다. 주어진 맥주를 한 번에 몰아 마실 수 없게 하고, 일과 중에는 음주를 금지한다. 회사에서 지침을 내려 불시에 알코올&마약 검사를 해 혈중알코올 농도가 높으면 경고를 받는다. 보통은 일과 중에 불시 지침이 내려온다. 실제로 방송을 통해 검사 지시가 내려오면 작업을 중단하고 대회의실이나 브릿지에 모인다. 음주운전 불심검문 시 사용하는 바람 부는 기계를 통해 혈중 알코올 수치를 파악한다. 또한 소변검사를 통해 마약 검사를 한다. 당연히 소변은 회항 후에 분석을 하는데 어느 한 명에게 마약 성분이 양성반응이 나온 적 있다고 했다. 하지만, 분석 결과가 나왔을 때 즈음 그는 이미 대양으로 떠나버렸기 때문에 임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한 번은 회사가 배의 위치와 시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저녁 회식 중에 검사 지침을 내린 적이 있다. 사관들도 부원들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모두 당황했다. 알코올 측정 기계 세팅을 0으로 맞춰놓고 부는 시늉만 했다. 한 항차에 한 번 주기로 불시검문을 시행했는데 내가 승선해 있는 동안 걸린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만큼 선원들은 각자가 맡은 일에 책임감이 강했다.

 배에서 느낄 수 있는 확실하고 효과 빠른 위안은 역시 술이다. 신나는 일은 배에 반입되는 술은 면세가 적용되어 키 작고 뚱뚱한(355ml) 캔 맥주 24개들이 한 박스가 국산은 11,500원, 외산은 18,500원에 구매할 수 있다. 하선하는 마지막 항차에는 미리 양주를 주문하여 면세 가격에 2병의 양주를 들고 내릴 수 있다. 아직 인생의 쓴맛을 덜 느껴봐서 그런지 양주의 맛을 모른다. 그럼에도 익히 들어보고 몇 번 마셔본 밸런타인 21살이 10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양주 관리 또한 내 업무였는데 한 번은 선배가 양주 좀 빼달라고 했다. 나는 단박에 거절했다. 조리부 선배가 미리 내게 양주를 빼달라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절대로 거절해야 한다고 일러뒀었다. 양주는 매 입출항마다 수량이 철저히 관리되는데 한 병이라도 모자라면 문제가 되기 때문에 양주를 마시고 빈 병에 물을 채워 놓는다고 한다. 특히 술을 금기시하는 이슬람 문화권인 중동에서는 술 창고를 해당 국가의 직원이 직접 봉인한다. 안타깝게도 배에서는 술을 낙으로 하는 선원(나 포함)이 꽤 많았다.

 밤에는 책을 읽고 일기를 쓰며 매일 한두 캔의 맥주를 홀짝인다. 지금껏 술 냄새나는 일기를 많이 써왔다. 나는 과거에 한때는 자제를 하지 못해 스스로 알코홀릭 진단을 내렸던 술고래다. 술을 하도 많이 마셔 기억마저 취해있으며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숙취가 느껴질 정도이다. 술 냄새 진한 3개의 기억 중 하나의 기억을 꺼내본다.     

 중국 연태 유학 시절 2주간의 휴일이 이어지는 중추절 때였다. 2015년 당시 제일 싼 병맥주(연태맥주 혹은 라이산 맥주였던 걸로 기억한다.) 600ml가 250원 정도 했다. 아무래도 물탄 것처럼 맛이 밍밍하고 홉 특유의 쌉쌀한 맛이 부족했다. 첫 한두 병은 600원 정도 하던 어느 정도 혀를 만족시킬 수 있던 칭다오를 마셨다. 곧 취기가 올라와 혀가 마비되어 맥주 맛을 분간하지 못할 즈음부터는 250원짜리 저렴한 맥주를 마셨다. 중추절의 첫날 기분 좋게 3병을 마셨다. 다음날 6병을 마셨고, 3일 차에 9병을 마셨다. 신기하게도 몸이 맥주를 다 받아내었다. 당시 25살의 나는 동작구청 수영대회에 나가 은메달 두 개를 따고 아레나 수영대회에서 동메달 하나를 딴 체력이 좋은 물개였다. 물개가 서해를 건너 중국으로 넘어와 ‘맥주개’로 진화하는 순간이었다. 사일 차에 12병을 마시다 잠에 들었다. 그렇게 며칠간 12병의 페이스를 유지했다. 멍청한 것에도 도전을 좋아하는 나는 마지막 피치를 올렸고 15병의 만리장성은 넘지 못한 채 맥주개는 전사하였다. 그렇게 2주간의 연휴 동안 일주일은 술을 마셨고 일주일은 앓아누웠다.(엄마 미안) 당시 중의학을 공부하는 동생에게 위가 왜 쓰린지 물어봤는데 그는 술을 15병 마시면 위가 쓰린 게 당연하다는 우문현답을 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술을 좋아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지만, 지금은 예전처럼 많이 마시지는 않는다. 그때는 술 마시는 것보다 더 하고 싶은 게 없었는데 지금은 술 마시는 것보다 더 즐겁고 중요한 게 있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는 글을 쓰는 것이고 또 하나는 조종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다. 지금 당장 조종에 대한 무언가를 공부할 수는 없지만, 미래에 조종사가 되기 위해 몸과 마음을 관리하는 중이다. 세상사람 모두가 아는 것처럼 술은 몸에도 마음에도 해롭다. 

 일을 마친 뒤 방에 들어와 형광등을 켜지 않고 주황색 무드등과 파란색 빛이 나는 가습기를 켠다. 최근 무드 등에 매직으로 십자가를 그려놓았다. 기도는 하지 않지만 뭔가 성스러운 분위기도 나고 마음이 조금 더 편해지는 것 같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영화의 OST 피아노 버전을 재생한다. 냉장고에 있는 맥주를 냉동실에 넣는다. 맥주가 차가워지길 기도하며 천천히 샤워를 한다. 샤워를 마치고 로션을 바르기 전 냉동실에서 차가워진 맥주를 꺼내 든다. 손에 닿는 알루미늄 맥주 캔의 차가운 냉기가 짜릿하다.

치- 폭! 꿀꺽꿀꺽꿀꺽 하…

오늘도 맥주 한 모금으로 배에서의 공과 사의 경계선을 긋는다. 매일 한 캔만 마시자고 다짐했지만, 다짐은 쉽게 깨진다. 첫 한 캔을 마시며 일기를 쓰며 책을 읽는다. 다음 캔을 마시며 드라마를 본다. 집중력이 약한 나는 맥주가 들어감에 따라 할 수 있는 활동에 제약이 생긴다. 예를 들면 두 캔을 마시면 글을 잘 쓸 수 없게 되고 읽던 책의 내용을 따라갈 수가 없어진다. 그래서 빠른 페이스로 술을 마시는 날에는 드라마나 영화 등의 직관적인 영상밖에 보지 못한다.      

 배에 탄 후로 잠이 모자라 시간과 이불만 주면 언제 어디서든지(비록 갑판이나 기관실 일지라도) 잘 수 있지만, 취기가 아까워서 잠과 싸워가며 드라마를 본다. 조금 취한 채 이태원 클라스를 보며 위대한 사람이 된 후에 사기꾼들에게 복수하는 상상을 한다. 한편 배에서 타이타닉, 캐리비안의 해적 등 선박에 관련된 영화를 보면 현장감이 넘쳐흘러 재밌게 볼 수 있다. 

 음주도 가끔 장점이 있다. 나는 원래도 상상력이 많은 편인데 술에 적당히 취했을 때는 상상력에 창의성이 더해진다. 술 마시고 글 쓰면 체계는 박살 나지만 예쁜 문장들이 가끔 나온다. 술을 마시며 글을 쓰고 다음날 숙취를 느끼며 퇴고를 한다. 또한, 술을 마셨을 때 용감해진다. 평소에는 꿈조차 꿀 수 없을 정도의 높은 기백을 지니고 계획을 짠다. 가끔은 그렇게 설정한 조금은 비현실적인 히말라야 하이킹, 유럽 근무, 책 출판, 고백 공격 같은 계획을 성취하기도 한다. 

 술은 몸에 해롭다. 요즘 살도 찌고 운동도 잘하지 않는 데다 맥주만 들이부으니 호르몬에 이상이 생겼다. 안 그래도 스트레스에 취약한데 더 약해진 기분이 든다. 자다가도 팔다리에 불편감이 느껴지고 얼굴이 빨개지는 게 느껴질 정도로 분노가 치솟아 오른다. 

 한때 간헐적 금식 다이어트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하루에 여섯 시간 이내에만 밥을 먹고 나머지 시간에는 밥을 먹지 않는 다이어트 방법이다. 의사들이 방송에 나와 의학적으로 설명을 할 정도로 효과적이라고 한다. 술을 줄이기 위해 간헐적 금식 다이어트에 착안하여 간헐적 금주 다이어트에 도전했다. 적어도 낮에 만큼은 술을 마시지 말자, 하루의 일과 때만 술을 마시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음주 시간에 제한을 두니 그 시간을 잘 활용해서 폭음하기도 했다. 결국 간헐적 금주는 술의 양만 늘리는 역효과만 생성하고 실패로 끝났다. 

 정신이 나약해졌다. 이제 맥주를 줄이고 달리기로 스트레스를 풀 때가 된 것 같다. 물론 달리기는 내일부터 할 거지만 오늘 술에 취한 채 운동화 끈을 조여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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