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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수 Oct 27. 2024

선상 투표

평행세계의 우리는 웃고 있었겠지

선상 투표     

투표는 탄환보다 강하다

-에이브러햄 링컨     

 육지에서 10일간의 짧고 불안한 전선 대기 기간을 보내고 인천에서 무스카트호에 탔다. 

 무스카트 호에서 시간을 조금 보냈고 4월 2일,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거일보다 8일 앞서 선상에서 사전 투표를 하였다. 브릿지에서 선장과 항통사의 입회하에 진행되었다. 미리 신청하여 받은 지역구 투표용지에 후보와 비례대표정당에 각각 동그라미를 쳤다. 투표용지는 스캔 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 보내졌다. 나중에 한국에 입항하게 되면 선거가 전부 끝났음에도 투표용지 원본은 선관위로 보내진다.

 선상에서 투표를 하니 배를 타기 전 내게 생긴 일이 떠올랐다.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23년 11월 초의 일이다.     

 전세사기에 대한 사회적 이슈에 편승하여 나와 내 책‘전세지옥’은 많은 관심을 받았다. 현재는 야당의 대표로 있는 전 법무부 장관이 내 책을 기자회견장에 들고 나와 수많은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내가 쓴 한 문단을 읽고는 정책의 기조로 삼겠다.’는 말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유튜브, 라디오, 뉴스, 신문, 북토크 그리고 예능에까지 출연하며 전세사기 피해자의 암담한 현실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출판사를 통해 미디어로부터 온 섭외요청을 받았다. 다만, 그 한 통의 연락은 출판사가 아닌 내 개인 연락처로 문의가 왔다. 어째서인지 그 연락은 귓속말을 하는 것처럼 조심스러웠고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겠다고 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위한 것이라면 손가락 하나쯤은 자를 각오... 까지는 아니더라도 손톱 하나 정도야 기꺼이 뽑아버릴 각오로 무어든 할 생각이었다. 연락을 받은 다음날 홍대입구역 8번 출구 앞의 스타벅스에서 연락을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방송 출연 제의를 할 거라는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였다. 자신은 어느 정치인의 요청으로 이 자리에 왔으며 그 정치인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전세사기 대책에 관해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고 이야기했다. 맨살이 드러날 때까지 손톱을 물어뜯어가며 스트레스를 이겨내며 쓴 책의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치인의 정책에 내 의견이 귓속말처럼 가깝게 피력될 수 있게 되었다. 그 정치인은 내 책을 정책의 기조로 삼겠다고 말한 법무부장관일까? 직접적인 정책을 펼칠 수 있는 국토부장관?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용산?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 정치인이 누굽니까?’

그는 양옆을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보고는 자세를 낮추고 내 눈을 바라보며 자세보다 더 낮은 목소리로 내게 이야기했다.

‘L 대표’

 대한민국에서 정부와 여당을 제외한 가장 힘이 센 야당의 대표가 나를 부른 것이다. 그 한마디에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날 자극했다. 세찬 바람에 하늘로 빨려 올라가 구름으로 만들어진 의자에 앉은 기분이었다. 나는 당연히 승낙했고 그와 악수를 하며 헤어졌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피가 중력을 거슬러 얼굴로 솟구치는 게 느껴졌다. 정신을 차리러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얼굴이 새빨갛다. 과거에 전 여자 친구가 내 고백을 받아줬을 때, 선크림을 바르지 않고 후지산에 올랐을 때보다 더 빨겠다.

 내게 연락을 준 사람은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다. 그는 대외적으로는 다른 일을 하면서 뒤에서는 조용히 M당의 일을 하는 게 마치 브루스 웨인과 배트맨처럼 느껴졌다. 

 이틀 후, 양복에 파란 넥타이를 매고 국회의사당으로 향했다.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홍대에서 만났던 배트맨을 기다렸다. 국회의사당 정문 옆에는 세 살 터울의 누나와 또래로 보이는 여성이 장애인의 권리를 보호해 달라며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유튜브에 나가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슬픔에 대해 토로하던 나의 간절한 표정과 닮아 있었다.

 국회의사당 입구에서 배트맨을 만나 배트카를 타고 국회의사당 안으로 진입한 뒤에 의원회관 앞에 주차하였다. 배트맨은 사이드브레이크를 올리며 내게 말했다.

 ‘사정상 L대표는 만날 수 없고 P의원을 만나게 될 겁니다. 지수 작가를 국회의원 후보로 염두하고 있으니 너무 놀라지 마세요.’

 그는 내게 아프지 말라며 예방주사를 놓은 것인데 예방주사에 나는 넋이 나가버렸다. 어떻게 검문검색대를 통과하고 의원실까지 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지금껏 국회의원을 멀리서도 본 적도 없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국회의원이 내 맞은편에 앉아 있다. 어려워하는 내게 P의원은 본인이 정치에 관심 갖게 된 이야기를 해주었다. 난 그의 눈빛과 말과 얼굴 표정 중 어느 하나만 봤어도 그의 진실함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순식간에 존경하게 되었다. 여전히 국회의원 금배지의 벽에 얼어있던 내게 국회의원이 되면 비싼 양주 많이 마시게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며 술 이야기를 하였고 그가 하이볼 얘기를 꺼내는 순간 Ice Breaking이 되었다.

 나는 준비해 간 정책 제안서와 내 책을 건네며 전세사기에 대한 심각성과 피해자들의 아픔을 그에게 공감시키려 했다. 정책 제안서에는 피해자 입장에서의 보다 더 효율적인 전셋법 개정안과 구제책 수정안 그리고 사기꾼들에 대한 형량을 강화하는 법안을 적었다. 의원은 내 긴 이야기를 끊지 않고 천천히 들어주었다.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 담아 요약한 내 말이(여전히 길었다) 다 끝나서야 그는 말했다.

 ‘책을 꼭 읽어볼게요. 사태에 대해 당이 좀 더 책임감을 갖고 임하겠습니다. 저희가 좀 더 잘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네요. 지수 작가와 피해자분들께 미안합니다.’

 나는 그가 사과를 한 것에 감사를 느끼며 대답했다.

 ‘정치인 분들께서 모든 사태를 다 예방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이번 계기로 전세로 고통받는 사람이 줄고 고통이 작아졌으면 합니다. 누군가는 정치인들이 놀고먹으며 맨날 싸움만 하는 사람들이라 비하하지만, 저는 정치인 분들이 있기에 세상은 조금씩 더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남의 본론이 나올 때가 되었다. M당의 최고 위원 P는 내게 물었다.

‘정치에 도전해 볼 생각이 있나요?’

 나는 마치 슈퍼마켓에서 맥주를 훔친 적 있냐고 경찰관에게 추궁당하는 것처럼 빠르고 간결하게 대답했다.

‘없습니다.’

‘흠, L 대표가 인재 영입 리스트에서 지수 작가를 제일 먼저 만나보라고 이야기했어요. 우선 선대위에 소속되어 있다가 비례대표나 천안(이곳에서 전세 사기를 당했다)에 공천할 후보로 염두하고 있습니다. 잘 생각해 보시고 다음 주에 한 번 더 보기로 해요.’

 그 말을 끝으로 P의원과 배트맨은 나를 엘리베이터까지 배웅해 주었다. 국회를 빠져나와 국회의사당역에서 9호선을 타고 신논현역으로 갔다. 용인 집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기 위해 강남대로를 걷는데 그곳은 내 머릿속만큼이나 복잡했다. 오늘 받은 제의는 내게 독이 든 성배처럼 느껴졌다. 성배를 받아 마시고 독을 버티지 못하면 내 인생도 꿈도 망가지리라. 

 나는 국회의원과 조종사를 놓고 저울질을 했다. 두 직업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국회의원이 되려면 우선 당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 공천 경선을 하고 후보로 나가 다른 당과 경선을 해야 된다. 조종사가 되려면 배를 타서 돈을 모은 후에 훈련소에 합격해 수년간 공부와 훈련을 하고 수천 명의 비행낭인들과 겨뤄 라인 입사에 합격해야 한다. 각각에 대해 실패했을 경우에는 경선에 들어가는 비용과 훈련까지 한 후에 취직하지 못하면 빚이 얼마나 생길지도 짐작해 봤다. 국회의원은 누군가의 인생을 통틀어 한 번이나 올까 말까 한 기회이고 조종사는 지금 아니면 나이 때문에 도전조차 할 수 없게 된다. 겨우 책 한 권 써놓고 배도 타지 않은 채 출마하게 되면 먹을 욕과 책의 진정성이 떨어지는 일이 걱정되기도 했다. 물론 현재의 나는 국회의원이 될 만한 자질이 없다는 건 당연지사였다.

 경우의 수와 직업을 갖게 되는 과정을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는 너무 복잡해졌다. 심플하게 내가 좋아하는 밸런스 게임으로 생각해 봤다. 국회의원, 조종사라는 선택지를 받으면 나는 내 목숨보다 중요한 꿈, 조종사를 고를 생각이다. 

 버스를 타고 경부고속도로를 달렸다. 불과 30여분 되는 거리를 달렸을 뿐인데 10차선 도로에는 수많은 인터체인지가 있었다. 그곳에서 어느 곳을 선택하여 빠져나가는지에 따라 나는 전혀 다른 곳으로 도착할 것이다. 

 당의 제안에 완전한 거절도 승낙도 하지 않았다. 물론 당에서도 우선 나를 검증하고 싶어 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난 국회의원 후보의 후보였다. 나의 적극적인 의지 표명이나 당의 확실한 제안 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배를 타기 전 부산에서 열리는 전세사기 대책 회의에서 내게 모두 발언할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분명 내 시험 무대였을 것이다. 당의 시험과 상관없이 나는 피해자들을 위해 이를 갈아가며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스피치를 준비하였는데, 대책 회의가 승선일 이후로 연기되었다. 연락을 기다리라는 기약 없는 말만 듣고 승선하였다. 승선 후에도 배트맨에게 종종 연락이 왔다. 배에서 영상 편지를 찍어 부산에서 열린 전세사기 대책 회의에 사용하기도 했고, 정책 제안서 작성을 요청받기도 했다.

 배에서의 생활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휴일도 없이 매일 10시간의 육체노동을 하는 것은 두툼한 월급을 받으며 빛나는 미래를 상상하면 문제 될 게 없었다. 

 다만, 일을 마치고 방에 누워 각각 1,500명의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있는 두 개의 오픈채팅방을 훑으며 그들의 절규를 방관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채팅방에 쏟아지는 글들을 읽으면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이 떠오른다. 레미제라블의 뜻인 ‘비참한 사람들’처럼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가 비참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특히 저녁, 새벽 시간에 일 끝내고 대출이자 갚으러 쿠팡 뛰러 가는 중이라는 말이 내게는 가장 슬프게 들렸다. 나도 육지에서 카드론을 갚기 위해 투잡을 뛰어봤기 때문에 이미 소진된 체력으로 다시 일하러 가는 비참한 기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만져보지도 못한 돈이 그대로 빚이 되고 그 빚을 갚는다는 납득하기 힘든 이유는 이미 빚을 다 갚았음에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내가 배에 있는 동안 M당(+J당과 당 대표 S위원)은 비참한 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었으며, 전세 피해 대책, 구제책 개정안을 힘겹게 진행해 나가고 있었다. 그 과정은 자전거 페달을 한쪽 발로만 밟아 나가는 것처럼 느리고 힘겨워 보였다.

 원양상선 속에서 독을 품은 두꺼비처럼 분노에 차 있던 나는 구제책 개정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민주당의 의지를 누구보다 잘 짊어나갈 자신이 있었다. 그때부터 노골적으로 배트맨을 통해 당에 정책 제안서를 내보기도 했고, 뜬금없이 H 신문에 M당 출산율 정책에 찬성하는 칼럼을 투고하며 내 의지를 간접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배트맨의 관심과 연락 빈도는 줄어갔다.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그의 회색 말풍선보다 내 노란색 말풍선의 비중이 커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로부터 배를 갈아타야 하니 육지에서 10일 정도 대기하라는 지시가 왔다. 나는 이 기회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당에 직접적으로 나를 받아들여달라고 할 계획이었다. 배 타기 전에 불쌍한 표정을 짓고 피해자들의 슬픔을 알렸다면, 이번에는 인상을 찌푸리고 화를 내며 세상에 포효하기 위해 다섯 개 정도의 대본을 짰다.

 하선 직후 후보 지원서를 작성하여 당에 제출하였지만, 아무 답이 없었다. P 의원의 명함에 적혀있는 메일로 연락을 해보니, 배트맨에게서 다음 기회를 기약하라는 언질을 받았다.

 이미 총선이라는 원양을 향해 떠나간 M당이라는 거대한 배는 나를 실으러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생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를 걷어차 버린 것을 이제는 후회하지 않는다.(뻥이다. 미치도록 후회 중이다. 전셋법 개정과 사기꾼들에 대한 형량 강화를 직접적으로 실행해보고 싶었다.) 


 시간은 다시 4월 2일 상선으로 돌아와, 선상에서 사전 투표를 마쳤다.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한 평행세계의 최지수가 되어 최지수를 뽑는 상상을 해보았다. 이번에 임명될 국회의원들이 임기를 마칠 사 년 후 나는 국회의원보다 더 멋있는 파일럿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살겠다. 이제부터 내 집은 천안도 국회도 아닌 태평양이다. 나를 받아준 배와 회사에 감사하며 내가 받는 충분한 보답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지. 이곳에서 마음 다잡고 높은 뜻을 세울 것이다. 내 이름 최지수(높을崔뜻志물가洙)처럼.     


평행세계의 우리는 웃고 있었겠지     

나는 내 삶을 살고 싶다. 그래서 나의 밤은 후회로 가득하다.

-스콧 피츠제럴드     


 라스라판호에서 무스카트호로 전선을 왔다. 복도에 널브러진 쓰레기마저 똑같은 배라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렇게까지 같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예를 들면 동일한 시기에 같은 공장 라인에서 앞뒤로 생산된 규격화된 자동차 두 대가 조금은 연식이 되어 내부 생김새만 조금 달라진 느낌이었다. 

 내가 거주하게 된 방도 동일했다. 왼쪽에는 조리장 오른쪽에는 조리수가 방을 사용했다. 다른 점은 그 배 안에 타고 있는 낯선 선원들과 무스카트호의 조명이 좀 더 어두웠던 것뿐이었다. 계약서에 적힌 배의 제원에는 건조된 년, 월까지 동일했고 93,000톤의 배가 겨우 2톤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평행 세계로 건너온 기분이 들었다. 평행 세계(우주)는 현재 우리가 존재하는 세계가 아닌 평행선상에 위치한 또 다른 경우의 세계를 가리키는 물리학 가설이다.

 다만, 그곳에서의 업무는 조금 더 힘들었다. 무스카트호에서 만난 첫 조리장은 내게 자신을 조리원 킬러라고 소개했다. 자기 때문에 조리원이 다섯 명 그만두었다고 자랑했다. 왜 그만두었는지 물어보았더니 ‘(수준 이하의 조리원들을) 쥐 잡듯이 털었다’고 했다. 그때는 미처 몰랐다. 내가 가까운 미래에 조리장의 쥐가 될 줄은. 이 또한 내가 배를 타기 전 상상했던 것이고 감수해야 할 과제이었다. 털린다는 사실보다는 나를 쥐 취급을 한다는 점이 서러웠다. 문뜩 요리하는 쥐가 주인공인 애니메이션 라따뚜이가 생각났다. 한 항차 후에 외장하드를 통해 받아 본 영화에서 쥐는 요리라도 잘하던데 그럼 나는 쥐만도 못한 게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무스카트호에서의 시작이 좋지 않았기에 평행 세계에서 과거에 다른 선택을 한 나를 상상해 봤다. 전선을 오지 않고 라스라판호에 타고 있었으면 내가 좋아하는 조리장과 계속 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오 차장도 한 항차만 승선하고 전선을 갔다고 했다. 그곳에 있었으면 행복했을 것이다. 배를 타지 않고 정치권에서 분투하고 있을 나도 생각해 보았지만 역시나 그 옷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전세사기를 당하지 않았을 때의 평행세계를 상상해 보았다. 이미 훈련소를 졸업하고 라인에 입사해 대양 위를 날아다니고 있을 것만 같았다. 

 배를 탄 기간 동안 세 번 울었다. 앞서 말한 갑판에서 비를 맞으며 슬픔과 기쁨의 감정이 뒤섞이며 흘린 눈물. 4월에 전세사기 피해자들 희생 1주년 추모행사를 할 때. 이때는 너무 슬펐는데 마땅히 감정을 표출할 방법이 없어서 전역 후 처음으로 머리를 빡빡 밀었다. 마지막으로 5월에 8번째 전세사기 피해자가 유명을 달리했다는 비보를 전해 들었을 때다. 

 8번째 피해자는 대구에서 피해대책위 활동을 하며 피해자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누구보다 씩씩한 분이었다고 한다. 나는 대구 피해대책위원장과 친분이 있어서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가 비통한 표정으로 국회에서 발언하는 영상을 볼 때 나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대책위원장은 이런 말을 했다.

"꼭 그래야만 했습니까. 왜 제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늘 피해자들에겐 친절하게 다 챙겨주면서 왜 정작 본인은 챙기지 못했습니까. 제가 더 열심히 다니며 잘하겠다고 약속드릴 테니 한 번만 다시 돌아와 주시면 안 될까요..."

 8번째 희생자는 소액임차인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 후순위의 세입자였다. 전세보증금 8,400만 원 중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할 운명이었다. 그럼에도 국토부로부터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운명이 달리 한 날 임대인이 월세를 요구하며 인터넷 선을 자르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등의 괴롭힘을 받았다고 한다. 희생자는 그렇게 유서와 남편 그리고 어린아이를 남기고 하늘나라로 갔다. 원망스러운 세상은 하늘나라로 돌아간 며칠 후 뒤늦게 그녀에게 전세사기 피해자격을 부여했다. 

 평행세계의 그녀는 어쩌면 사기를 당하지 않고 혹은 사기를 당했더라도 적절한 보상을 받아 행복하고 씩씩하게 잘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기꾼은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기꾼 때문에 피해자가 자살을 하면 사기꾼은 살인죄로 판결해야 한다.

 그즈음 O신문사로부터 전세사기 관련 칼럼 기고 요청을 받았다. 칼럼에 8번째 피해자 관련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정의 원고비를 받았다. 차마 그 원고비를 내 주머니에 넣을 수 없어 조의금으로 냈다. 평행세계에서는 내가 8번째 희생자가 되었을 수도 있다.

 통탄스러운 날이다. 그날만큼은 배를 탄 것을 후회했다. 나는 보잘것없는 인물이데 왜 나를 M당에서 국회의원 후보로 영입 제의를 했는지 의문이었다. 그제야 의문이 풀렸다. M당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대표해서 대변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았던 것이고 그 사람이 나였을 뿐이다. 나는 나만의 미래를 놓고 선택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다른 피해자들의 아픔을 짊어지고 무슨 수를 써서든 국회를 갔어야 했다. 그곳에서 간절한 요청을 통해 야당과 정부를 설득하고 주어진 예산 안에서 보다 더 효율적인 구제책 개정안을 빠르게 통과시켰어야 했다. 그랬다면 8번째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증조할아버지가 생각나는 밤이다. 그는 산과 땅을 팔아 자금을 마련하였고 광주와 서울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그의 원래 꿈은 무엇이었으며 어떤 계기로 독립운동가가 됐던 것일까. 역사서에 나올 만큼 유명한 투사는 아니었고, 다만 그와 동료 독립운동가들을 기리며 만든 동상에 몇 번 방문했을 뿐이다. 친척어르신들로부터도 별 이야기를 전해 들은 적 없기에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국가유공자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타이틀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사실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증조할아버지의 정의로운 피가 내게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정의를 향한 간절한 마음의 외침에 피가 끓어오른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릴 적부터 가족뿐만 아니라 친구들에게서 일제 강점기 때 태어났으면 넌 독립운동을 했을 거 같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언젠가는 달콤한 꿈을 포기하고 대의를 위해 후회 없이 싸울 수 있는 큰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2024년의 내게 가장 큰 정의는 대한민국에 기생하는 사기꾼들을 어떻게 해서든 박살 내는 것이다.     

 8번째 전세사기 희생자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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