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지수 Oct 27. 2024

기묘하게 흐르는 배에서의 시간

젊음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기묘하게 흐르는 배에서의 시간     

내가 시간을 낭비했더니,

이제는 시간이 나를 낭비하는구나.

-윌리엄 셰익스피어     

 배에서는 육지와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특수상대성이론에 기반하여 세슘원자로 만든 초정밀시계로 측정한 결과 전투기 조종사들의 시간이 천천히 간다는 것과 같은 과학적 개념은 아쉽게도 아니다. 다만 심리적으로 내가 뭍에 있었을 때와 비교하면 하루는 천천히 나아가고 한 달은 빠르게 지나갔다. 하루가 천천히 가는 이유는 매일 아침, 점심, 저녁 세 번 출근해야 했고 잠을 두세 번으로 쪼개서 자기 때문이다. 한 달이 빠르게 가는 이유는 뭍에서는 평일과 주말의 구분이 있었기에 시간이 나뉠 때마다 시간이 흐른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평일 주말 구분 없이 매일 일하는 나는 시간의 흐름을 파악하는 주기가 중동으로 가는 18일, 한국으로 돌아가는 18일로 나뉜다. LNG선에서는 일주일이 7진법이 아닌 18진법이다.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시간의 단면’처럼 원형의 시계가 녹아내려 타원형이 된 것처럼 시간의 상대적 개념이 이곳에서는 잘 통하지 않았다. 같은 한 시간이라도 일할 때는 천천히 나아가고 잠잘 때나 퇴근 후에는 빨리 지나갔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면 배가 있는 장소의 시간은 몇 시며 어떻게 시간이 바뀌는지 물어왔다.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를 0도로 하는 협정 세계시 기준으로 경도에 따라 동중국해, 남중국해, 말라카 해협, 뱅골만, 아라비안해에서 한두 시간씩 시간이 바뀐다. 카타르나 오만은 한국보다 5시간 느리다. 

 다만, 선장의 능력은 전지전능하여 시간을 움직이는 날짜는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 해를 좋아하던 선장은 중동에서 돌아올 때 시간을 빠르게 전진시켜서 늦게까지 해를 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뱅골만에서 삼 일간 한 시간씩, 3시간을 전진시켜 실제 배가 속한 곳의 협정세계시가 오후 6시여도 배의 시계를 8시로 만들기도 있다. 나는 물론 업무 후에 여유 있게 노을을 보며 갑판을 뛸 수 있었기에 너무 좋았다. 그 순간 선장은 내게 자비로운 태양의 신 헬리오스처럼 느껴졌다. 

 시간을 전진시키는 시점은 대개 오후 8시였다. 일과 시간인 아침 9시에서 10시로 바꿔 일과를 한 시간 줄여 선원들의 박수를 받는 선장도 있었다. 다만, 조리원은 그 시간이 아침과 점심 사이 쉬는 시간인데 두 시간에서 한 시간으로 줄어 비통했다. 물론 슬픔을 겉으로 표현해서는 안된다. 인간이 신에게 덤비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 전진 계획표가 게시판에 붙어있는데 당시 삼등항해사의 이름은 전진이었다. 시간을 조정하는 업무는 삼등항해사가 하였다. 그는 단 일분의 오차도 없이 시간을 전진시킴으로써 전진이라는 이름값을 멋지게 하였다. 

 오후 8시가 되면 1초에 1분씩 시간이 바뀐다. 시계의 분침이 시간을 거슬러 거꾸로 가는 후진하는 모습을 볼 때면 가끔 머리가 고장 난다. 시계가 뒤로 움직이는 것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이전보다 더 어려 보이는 것 같은 이색적인 장면이다.

 나는 시간이 움직이는 걸 재밌고 긍정적이게 받아들였다. 전진하면 전진하는 대로 배에서의 시간이 줄어서 좋고 후진하면 후진하는 대로 배에서 퇴근 후 자유시간이 늘어 좋았다. 

 배에서 나만의 시간을 확보하고 착실히 보내기 위해 일과 후에 나는 밖에서처럼 세이코 브랜드의 오토메틱 시계를 찼다. 몸에 무언가를 걸치는 걸 귀찮아해서 장신구는 일절 하지 않지만 손목시계만큼은 내 시간처럼 소중히 하고 있다. 지금껏 배터리가 내장되어 몇 년 동안 방치해도 시간이 흘러가는 쿼츠시계만 사용하다가 작년에 오토메틱 시계를 처음 샀다. 시계 뒤판의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무브먼트들이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초침, 분침보다 명확히 말해준다. 

 나는 하루 이틀 슬럼프에 빠지면 쉽게 일주일이고 보름이고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회전추가 돌아가는 무브먼트를 동력으로 하는 오토메틱 시계는 하루하고 반나절만 차지 않으면 전력 공급이 중단되어 멈춰버린다. 매일 손목의 시계를 보며 내 시간을 관리하고 슬럼프에 빠지더라도 시계가 멈추기 전 다시 시계를 차 삶의 시간을 나아가게 하기 위함이다. 

 시계의 브랜드명인 세이코(SEIKO)의 뜻은 일본어로 정밀공업(精工)인데 동음이의어로는 성공(成功)이라는 말이 있다. 시계를 보며 시간을 관리하는 동시에 앞판에 새겨진 성공을 보며 마음을 다질 수 있기 때문에 나는 항상 시계를 찬다. 내 꿈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서는 시계를 멈추게 해서는 안된다. 그곳이 비록 살바도르 달리의 시계처럼 기묘하게 시간이 흘러가는 원양상선일지라도.


젊음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성공은 단지 끈기 있는 사람들의 것이다.

- 윈스턴 처칠 


 라스라판호는 두려움과 파도를 물리치며 싱가포르 해협을 건넜다. 싱가포르 해협은 태평양에서 인도양으로 이어지는 해양 교통의 요충지다. 수에즈운하와 함께 세상에서 배가 가장 많이 지나는 곳으로 연간 10만 척 이상이 통과한다.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사이의 불과 20km밖에 되지 않는 어쩌면 운하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는 좁은 해협이다. 

 이곳에는 선박 충돌 위험과 해상강도의 위협이 있다. 근해를 지나갈 때는 브릿지와 기관실에 당직자가 추가되고 보다 철저한 등화관제, 불필요한 소음 차단 등의 여러 가지 제약이 발생한다. 조리사들에게는 당직자 밥 배달, 음식물 쓰레기 배출 금지 등의 미미한 제약밖에 생기지 않는다.

 싱가포르 해협 통과 준비를 며칠 전부터 해서 싱가포르에 관한 이야기를 선배들에게 많이 들었다. 틈만 나면 바깥에 나가 바다세상을 바라보는 내게 선배들은 싱가포르 해협은 아름다우니 그 광경을 필히 눈에 담으라고 일러줬다. 싱가포르를 지나간다는 걸 알게 된 며칠 전 싱가포르에 있는 친구 J에게 연락했다. 곧 싱가포르를 지나가니 그날 만나자고. 나는 바다에서 플래시로 모스 부호를 만들며 소리를 지를 거라고 했다. J는 손을 흔들겠다고 하니 두 눈을 크게 뜨고 잘 보라고 답장했다.

 물을 밟고 서 있는 배 그리고 그 속의 작은 내 방에서 스탠드를 켜놓고 조용히 맥주를 마시며 배의 심장 고동 소리를 듣는다. 고고한 시간, 이곳에 두 가지가 자주 찾아온다. 문학과 기억. 또다시 추억의 바다에 깊이 잠수한다.

 2019년 여름이었다. 제약회사에서 후원하는 국토대장정에 참가했다. 포항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500km가 넘는 거리를 3주에 걸쳐 걸었다. 144명의 대원이 참가를 했고, 그중 2명을 제외한 모두가 완주에 성공하였다. 부끄럽지만, 그 둘 중 하나가 나다. 

 나는 발목이 좋지 않고, 국토대장정 이전에 양쪽 발목을 수술받은 경험이 있다. 국토대장정에서도 발목을 여러 번 접질려 인대가 헐렁헐렁해졌다. 평지를 걷다가도 발을 접질릴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지금 당장 수술대에 올라가야 한다는 의사의 진단으로 핑계를 대고 싶지만, 핑계는 결국 핑계일 뿐이다. 못 걸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수술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대장정의 반이 조금 넘었을 때, 걷기를 포기하였다.

 나를 제외한 우리 조원 11명 모두 대장정을 완주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꿈을 이뤘다. 공무원, 초등학교 교사, 육군 장교, 술집 사장, 대기업 사원 등. 그중 2명을 언급하고 싶은데 우선 태생부터 우월한 조장의 꿈은 다른 이들처럼 직업이 아닌 경제적 자유와 자아실현이었다. 현재 전업 투자가로서 달에 천만 원은 우습게 번다는 그를 세 살 동생임에도 나는 존경하고 있다. 그리고 싱가포르에 있는 J. 5년 전 국토대장정 때부터 승무원이 되고 싶어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본격적인 입사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그 길이 막혔다고 한다. 하지만 J에게는 국토대장정을 통해 자신의 역치를 끌어올림과 동시에 오랫동안 노력해서 무언가를 이뤄낸 경험이 있었다. 마침내 코로나가 끝났고 마부작침의 노력 끝에 싱가포르항공에 입사하였다. 

 다시 2024년으로 회귀해서 오전 11시에 싱가포르를 지났다. 점심을 준비해야 하는 가장 바쁜 시간이지만 마음이 싱가포르에 있는 것을 눈치챈 선배들이 내게 눈으로라도 싱가포르 관광을 하고 오라고 했다. 브릿지에 올라 싱가포르 해협과 싱가포르의 마천루를 바라봤다.

 해양 교통의 요지답게 수많은 거대한 배들이 우측통행을 지키며 두, 세 줄로 나란히 서서 횡단한다.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의 바탐섬을 왕복하는 작은 유람선들이 아찔하고 빠르게 대형 선박의 앞을 종단하며 무질서 속의 질서를 지켜가고 있었다. 곡선 모양의 세 개의 빌딩 위로 배 모양의 지붕이 놓여있는 싱가포르의 심볼 마리나베이샌즈가 보인다. 금융사들이 즐비한 고층 건물들의 스카이라인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이렇게나마 친구와 같은 구름 아래 있을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보이지는 않지만, 느낄 수 있는 한 여름의 시원한 바람을 만난 기분이었다.

 브릿지에서 내려와 선배들에게 친구 이야기를 하니 놀라운 소식을 알려줬다. 4월에 싱가포르의 도크에 들어가 한 달간 배를 수리한다고 한다. 물론 매일 밥을 해야 하지만, 저녁에는 시내에 나갈 수 있다고 한다. 맙소사 석 달 후면 J를 볼 수 있겠다 싶어 기뻤다. 

 일을 마치고 방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국토대장정을 떠올리니 그 당시 완주에 실패한 나의 부끄러운 과거가 떠오른다. 함께한 대원 중에는 무릎을 6번 수술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기어서라도 완주할 각오였다고 한다.

 나는 국토대장정을 계기로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로 다짐했다. 23년 10월에 처음 마라톤을 나갔는데 시간 초과로 컷오프를 당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11월에 있는 다른 마라톤을 신청하였고 한 달 동안 매일 연습하고 체중을 감량해 결국 완주에 성공했다. 

 전세사기를 당했을 때, 나와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글을 썼다. 내 슬픈 기억들을 되짚는 힘든 작업이라 처음에는 글을 쓰다 울면 그대로 침대에 누워 그날을 포기했다. 하지만 그렇게 몇 번 울고 나니 마음에 굳은살이 생겼는지 울면서 글을 써 나아갈 수 있었다. 결국 눈물 속에서 책이 피어났다.

 전세자금은 내 꿈인 파일럿 훈련 비용이었다. 그 돈이 사기꾼들에 의해 한 줌의 재가 되어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선택지밖에는 내 눈에 보이지 않았고 한때는 깊은 좌절에 빠졌다. 하지만, 이미 나는 포기를 하지 않기로 다짐한바 꿈을 쟁취하기로 굳게 마음을 먹었다. 파일럿 훈련 비용을 벌기 위해 상선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문득 국토대장정에서 144명이 터널을 지나며 외치던 구호가 머릿속에 생생히 떠오른다.

“젊음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젊은 날의 우리가 지른 함성은 터널 속에서 우레와 같이 메아리쳐 다시 우리 마음속에 와닿았다.


이전 07화 희대의 낭만가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