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콜을 잡고 손님에게 전화를 하니, 해맑고 밝은 목소리로 "아우~~ 고생 많으시죠? 따뜻하게 시동 걸어놨습니다. 천천히 오세요"라고 말한다. 이런 콜은 영하 -10도의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추운 걸 느낄 틈이 없다.
손님과의 거리는 1.4km 도보로 이동하기에는 꽤 먼 거리다. 그런데 뛰고 싶었다. 왜냐고? 영하 -10도였으니깐.
목적지에 도착해서 고객에게 인사를 하고 고객이 안내하는 차로 이동을 하는데, 이쁜 색으로 페인팅된 소형차가 보였다. 어디서 상당히 익숙히 본 차량이다. 우리 집에서 쓰는 사용하는 인터넷 회사의 로고였다. 속으로 아싸~~~ 인터넷 얘기만 해도 30분 걸리는 먼 거리에 지루할 틈이 없을 것 같았다.
서비스업을 하는 사람들은 어디선가 티가 나는 듯했다. 고객의 평점을 잘 받아야 단돈 1만 원이라도 성과급을 받을 수 있기에 항상 타인에게 친절하려는 것이 몸에 베여 있다. 이 고객님도 그랬다. 타자마자 춥지 않냐며 엉뜨(열선시트)를 켜 주는가 하면, 차 안에서 담배냄새가 너무 나는데 괜찮냐며 나의 심기를 묻기도 하는 것을 보니 천성이 딱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 같았다.
40대 초반의 두 아들의 가장이자, 집집마다 인터넷을 선을 설치하거나 인터넷 고장이 났을 때 수리해 주는 인터넷 설치 이전 기사님이셨다. 20대 초반 고등학교 졸업하고 군대 갔다 오자마자 시작한 일이 이제는 20년이 넘었다고 한다. 과거 인터넷 설치 및 이전은 통신사 소속이 아니라 별도의 사업자를 내고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통신사의 외주였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고객이 소속된 통신사는 이런 외주를 다 합쳐서 하나의 자회사로 설립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의 고객은 개인사업자 사장님에서 이제는 월급 받는 직원이 된 것이다.
과연 개인사업자 사장님일 때랑 직장인 어떨 때가 좋았을까?
개인 사업자일 때의 장점은 내가 일 하고 싶을 때 일하고 일하기 싫을 때 일 하지 하지 않는다는 것. 본인이 사장이면 당연한 얘기다. 그런데, 행여나 작업을 하다 다리 골절이나 기타 부상을 당하면 몸 회복하는 동안에는 돈을 벌지 못해 낭패라는 것이다. 이게 직장인이 되었을 때 가장 큰 좋은 점이라고 했다. 고객님이 한숨을 쉬며 예전 첫 애가 태어나고 한참 돈이 들어갈 때 전봇대 위에 올라가 작업을 하다 낙상사고를 당한 적 있다고 한다. 다행히도 발목이 골절된 것 외에는 큰 부상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는데, 부상이 회복될 때까지 3개월 동안 일을 못해 아기 기저귀뿐만 아니라 분유값 걱정을 했던 때가 있었단다. 그런 것이 비하면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좋은 건 정년 60세 이후에는 1년 계약직으로 5년 더 근무할 수 있다는 것.. 한마디로 정년이 65세...
문득, 그분이 나에게 묻는다. "집에 인터넷 뭐 쓰세요?" "고객님이 설치하러 다니는 S사 사용합니다."
S사를 사용한다는 말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절대 갈아타기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3년마다 갈아타는 것보다 하나의 통신사를 꾸준히 오래 쓰며 요금 할인받는 게 훨씬 유리해요. 당장의 상품권에 현혹되지 마세요." 사실 난, 전화해서 이전 설치하며 이것저것 절차 자체가 귀찮았을 뿐인데, 오히려 그게 더 이익이라니 이거 뭐라고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궁금했다. 항상 이렇게 싱글벙글 웃지만 그 역시 스트레스가 없는 것일까? 항상 남들의 평가를 받아야 하고 남들의 평가에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직업이라면 그 일 자체가 매일 스트레스여서 버티지 못했을 것 같았다.
도착지가 다가올 때쯤 조심스레 물었다. "고객님은 스트레스가 없는 것 같아요. 그 비결은 뭐예요? 아니면 스트레스인데 없는 척하는 건가요?"
네? 그게 스트레스인가요? 제가 친절하게 상세히 설명하고, 조금 늦으면 늦는다고 먼저 양해말씀 구하고, 시간이 지연되면 명확히 사유를 설명하며 지연 이유를 얘기하면 다들 수긍하고 웃으면서 응대해 주던데요.
머리가 띵~~~20년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고객님에게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