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문턱, 10월 중순. 충남 아산시 '신정호, 충남 제1호 공원'에서 올해 우리의 두 번째 만남이 이루어졌다. 1998년, 아주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시작된 인연, 일명 '아주대를 사랑하는 모임', '사모아'의 오랜 우정은 20여 년의 세월 동안 굳건히 이어져 왔다. 젊은 날 00학교 교사로 함께했던 시절의 회비를 모아가며 만나왔고, 이제는 모두 퇴직하고 백수가 되어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일 년에 두 번, 이렇게 친목을 다진다. 다섯 명이었던 우리 중 한 분이 식중독으로 인해 결석해서 아쉬웠지만, 네 명의 만남은 그 자체로 충분했다.
오랜만의 재회는 늘 허기짐을 동반하는 법. 우리는 신정호 인근의 식당가를 찾았다. 우리의 목적지는 '본가어죽'이라는 매운탕 집이었으나, 주차된 차들이 몇 대 안 돼 조금 망설였다. 그 옆 김치찌개 집은 차들로 가득한 모습과 대비되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김치찌개는 좀 아쉽지 않나?" 하는 만장일치 의견에 따라, 우리는 과감히 매운탕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주문한 참게메기매운탕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얼큰하면서도 깊은 맛이 일품이었고,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누며 잊었던 옛 시절의 추억까지 맛있게 건져 올렸다.
신정호수 주변에 즐비한 카페들 중 우리는 검색을 통해 리뷰가 가장 많은 '안낙'이라는 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밀린 수다를 떨었다.
신정호 공원 산책로를 거닐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신정호를 세 번을 찾았지만 호수 전체를 한 바퀴 돌아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모두 걷기를 평상시에 즐기는 사람들이기에 가능했던 결정이었다. 신정호는 늘 느끼지만 참 잘 꾸며진 정원 같다. 등나무 터널과 장미 터널이 조경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하늘로 높이 솟은 메타세콰이어 나무들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호수 둑방길을 따라 걷는 길, 낮은 키로 싱싱하게 꽃을 피운 백일홍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 화사한 모습에 모두 발걸음을 멈추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참 예쁘다. 어쩜 저렇게 생기가 넘치니." 가을 하늘과 흰 구름이 조화를 이룬 언덕을 배경 삼아 기념사진을 남겼다. 편안함과 여유로움이 가득한 순간이었다.
신정호에서의 여유로운 시간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음 코스인 곡교천 은행나무길로 향했다. 15분 남짓 걸리는 가까운 거리. 하지만 은행나무길에 도착했을 때, 기대했던 황금빛 물결은 아직이었다. 10월 중순, 은행나무들은 여전히 짙푸른 잎을 자랑하고 있었다. "아, 노란 단풍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의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지만,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는 없는 법. 우리는 다음 모임을 기약하기로 했다.
대신, 주차장 옆 곡교천 천변에 펼쳐진 백일홍과 코스모스 군락이 그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곡교천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 형형색색의 백일홍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신정호 둑방길의 작고 싱싱한 백일홍 꽃과는 달리 키가 컸다. 강렬한 색채로 수놓아진 꽃밭은 가을의 풍요로움을 온몸으로 전해주었다. 백일홍 꽃밭 끝자락에는 홍화 코스모스가 하늘하늘 피어 우리를 반겼다. 우리는 그 아름다운 꽃들을 배경으로 다시 한번 추억의 사진을 남겼다. 은행나무 단풍은 놓쳤지만, 이 풍성한 가을꽃 잔치는 충분한 위로가 되었다.
우리는 수십만 그루가 숲을 이룬 은행나무길을 걸었다. 널찍하게 뻗은 길, 양옆에는 걷기 편한 데크길이 조성되어 있었고, 차량은 통제되어 있어 안전하고 쾌적했다. 축제 기간이었지만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은 많지 않았다. 파란 잎을 머금은 은행나무 아래를 걸으며, 머지않아 이 길이 온통 노랗게 물들고 은행잎이 수북이 쌓일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 모습은 분명 오늘 놓친 아쉬움보다 훨씬 아름다운 장면일 터였다.
오랜 벗들과 함께 걸었던 아산의 가을길. 맛있는 음식,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무엇보다 20여 년 변치 않은 '사모아'의 우정. 오늘 못다 한 이야기와 내년 4월의 만남을 기약하며, 우리는 아쉬운 석별을 했다. 짙어가는 가을만큼이나 깊어진 우정의 빛깔을 가슴에 안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볍고 행복했다. 내년 봄, 다시 만날 그날을 기다리며, 아산의 백일홍처럼 오래도록 싱싱하게 피어날 우리의 우정을 다짐해 본다.
(25. 10.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