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장

by 김인영


어릴 적 제복을 입은 남성이 참 멋져 보였다. 그래서 미래의 남편이 군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물지 않은 사고와 충동적인 성향이 강하던 때였다. 멋진 모자와 함께 줄이 빳빳하게 세워진 바지와 더불어 내 눈을 끈 것은 빨갛고 파란색으로 때론 오렌지색 이기도한 가슴에서 빛나던 것이었다. 그것이 훈장이라는 것은 한참 후에 알게 되었다. 그러나 제복을 입는다고 누구나 소유할 수는 없는 것이 훈장이었다.

뿐만 아니라 훈장은 군인만 달 수 있다고 생각한 것도 잘 못된 것임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훈장이란 직무에 충실하여 공적이 뚜렷한 공무원에게 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경제 사회 교육 예술 분야를 통틀어 국민의 복지향상에 기여한 분들에게 주는 것이라 한다.

뉴스에서 전직 대통령이 훈장을 반납한다고 하는 기사를 보았다.

우리나라 최고의 훈장은 무궁화 대훈장이라 하는데 대통령과 그의 영부인에게 주는 것이다. 그러니 그분은 우리나라 최고의 훈장을 받은 것이다. 그 귀한 것을 왜 반납할까? 훈장을 반납하는 이가 보냈을 번뇌와 갈등의 시간을 생각한다. 마지못해 내놓을망정 양심에 귀 기울인 것일까? 한 때 하늘을 나는 권세를 가졌어도 결국 진실 앞에는 감 출 수 없는 것이 세상사이다. 사필귀정이라 했던가? 내가 그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아도 부끄럽기 그지없다.


모임에서 글을 읽었다. 30년 넘게 군 복무를 마치고 훈장을 받으신 남편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놓았다. 젊은 시절 가정 형편이 어려워 자원입대하였다고 했다. 긴 세월 힘들었을 과정들을 생각해보니 그간의 희생과 노력으로 만으로도 마지막 내려오는 길에 충분히 훈장을 받을만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훈장 한번 받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이 든다.

학창 시절 상장은 몇 번 받아보았다. 공부 잘해 받고 남에게 본이 되어 모범상도 받고 근면하다고 근면상. 결석하지 않았다고 개근상도 받았다. 돌아보니 이러한 상을 받은 것이 스스로에게 격려와 동기 유발을 물론 자긍심을 준 것 같다. 할 수 있다는 피그 밀리온 효과를 준 것 같기도 하다.


이제 인생의 겨울에 난 누구에게 감히 훈장을 받고 싶다고 말하는 것일까? 사회적으로도 정치는 더더욱 그렇다고 멋지다고 생각하는 예술가의 삶에서도 재능이 보이지 않는 내가 무엇으로 가슴에 영광의 보석을 단단 말인가? 어느 새라는 말이 가장 정확한 단어이다. 어느새 이만큼 온 것이다. 길 위에서 때로 외로웠고 위험한 순간도 있었으며 그리고 많이 행복했다.

오늘처럼 한 없이 푸른 하늘을 보면 지나간 세월이 생각난다. 세상에선 우리의 노후를 대비해야 한다고 더 이상 자녀들에게 의지하며 살 순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멋지고 우아하게 나이 든 사람의 권위와 여유로움을 갖고 살고 싶은 우리들의 가슴을 자꾸 조이는 이야기를 들으면 괜히 슬퍼진다.

느지막이 참 자유를 누리며 사는 것은 욕심일까?


내 비록 특별히 역사와 사회에 공헌한 바 없으나 가정을 꾸리고 45년 잘 살았으니 수고했다며 한 날을 잡아서 훈장 한번 주었으면 좋겠다. 작은 보상을 받고 싶다. 나의 사랑하는 가족에게서.

나는 이런 훈장을 달고 싶다.

스스로를 사랑한 자.

이해와 관용으로 베푼 자.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

예술을 바라보는 눈을 가진 자.

풀잎 한 포기에 호흡을 같이한 자.

하늘에 손 모으는 겸손함으로 낮추며 산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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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어진 것에 감사한 자.


문득 바람이 내게 말한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 훈장 달 수 있어요.’라고.

가족의 이해와 사랑으로 반 납 할 필요 없는 훈장을 달고

멋진 행진곡에 맞추어 위풍당당하게 남은 길을 걸어가고 싶다.

가슴을 쫙 펴고 노년의 인생을 만끽하고픈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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