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 층 남자 아래층 여자

by 김인영

만세. 드디어 일상으로 복귀가 가능해졌다. 10일간의 자가 격리에 마침표를 찍게 된 것이다. 24시간의 10일이면 240시간. 총 14,400 분을 위층 남자와 아래층 여자로 살아온 여정이 끝난 것이다.


2022년은 검은 호랑이 해라며 호랑이띠인 남편이 믿거나 말거나 생각하는 대로 잘 될 것이라고 지난해 연말에 만난 지인은 말했다


오랜만에 가족이 타지에서 모이는 기회를 맞아 여행을 준비하는 시간이 더욱 각별했고 적당히 들뜨고 이런저런 계획도 많았다. 가지가지로 마련한 정갈하고 풍성한 식탁에 곁들일 와인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디저트를 생각하고 식후엔 만두라는 이름을 가진 순둥이 개를 앞세우고 아직은 유모차에서 바깥세상을 비 라보는 기특하고 고마운 손주와 함께 허드슨 강변을 걷는 11명의 가족 순례를 꿈꿨다.


운명의 그날. 혹시나 하며 테스트를 해보니 아뿔싸 남편의 코로나 19 검사가 양성으로 판명이 되었다. 외출 준비로 분주한 내게 다가와 나는 음성인데 자신은 희미한 줄이 나와 있다며 전혀 반갑지 않은 소식을 전한다.


세상이 온통 바이러스로 들끓는 듯 불안한 시대에 살고 있다. 긴 시간을 날아와 누린 만남의 기쁨도 잠시였다. 신년 새해의 가족 식사 모임은 차치하더라도 다음 날로 예정되어 있는 손자의 첫돌잔치를 위하여 어렵게 결심한 여행이다. 며칠 전 배달되어 온 첫돌 상차림을 풀고 답답한 듯 옷을 벗어 제치는 아기를 보며 웃고 고운 모자도 씌우는 예행연습도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인생이라더니.


일단 가족들에게 전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서둘러 뉴욕을 떠나 코네티컷에 있는 시누님 댁으로 출발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연로하신 시누님은 이미 뉴욕으로 이동 중이신 시간이었다.


2022년 새해를 시작하는 정월 초하룻날이었다.


만둣국은 고사하고 아침에 커피 한잔도 마시지 못한 채 눈발이 날리는 메리트 파크웨이를 달리는 우버 속에서 마스크를 벗지 말고 말도 섞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자식들의 말을 기억하며 침묵의 시간으로 빠져 들어갔다. 갑자기 남편의 깊은 주름이 보였다. 그이가 연기처럼 사라지면 어쩌나 불안했다. 상냥한 젊은 운전자는 말이 없는 동양인 노부부가 조금은 어색했던지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으로 차 안의 공기를 바꾼다.


아무리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고 해도 우리에겐 강 건너 불이었다. 3차 접종을 마쳤으니 별일 없을 거라며 생각하고 조심하라던 아이들의 말을 귓전으로 넘기고 오래된 친구들이 고마운 만남을 주선한 자리를 다녀왔다. 그것은 큰 실수였다. 시대의 흐름을 직시하지 못하고 여전히 안전 불감증에 젖고 교만하며 고집스러운 나이 든 사람의 모습을 보인 결과이다.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것에 대한 미안함과 죄스러움에 몸 둘 바를 몰랐고 때 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착잡한 마음으로 빙판길을 돌아 도착한 후 서둘러 남편을 위층으로 보냈다. 소소한 물품과 책 옷가지 등을 분류하여 올린 후 바라보는 앞산과 강물은 이전과는 딴 판이었다. 그치지 않고 내리는 눈 또한 야속하기 만하다. 집주인도 안 계신 이곳에서 우선 닷새를 지내야 한다. 자연을 사랑한다고 평소 이야기하고 지냈어도 부실한 식사와 적막강산의 고요함을 어찌 견딘단 말인가. 나는 도시형 인간이다.


아침이 찾아와도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 채 새벽에 도착한 신문과 음식과 커피를 계단 위에 올리면 마스크로 무장한 남편은 문을 빠끔히 열고 머쓱해하며 닫는다. 때 맞춰 열고 닫고 올리고 내리는 지루한 일상이 초조함으로 마감하는 시간이 흘렀다. 나와 남편 몫으로 두 잔의 와인 잔을 채우고 홀로 치즈와 과일을 비운 지 이틀 만에 남편에게 영상 통화를 제안했다. 그 후 우린 화상통화를 하며 세 끼의 식사와 커피를 먹고 마시며 잠자리에 들기 전 마감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아래층 여자고 그이는 위층에 사는 남자였다.


며칠이 지나니 이상하게 이 낯선 상황도 나쁘지 많은 않게 느껴졌다.


간간이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높이 나는 새를 부러워하고 나무에 붙어 삭풍에 흔들리는 작은 이파리가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며 바라보고 아주 가끔씩 고향의 소식을 열어보게 되었다.


4일째 되던 날은 세상과 차단된 의도치 않은 상황에 놓인 것이 내 생애에 있어 확률적으로 흔치 않은 완벽한 휴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쫓기듯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 큰 딸과 아기에게 양성의 판정을 옮겨준 놀람을 진정시킨 작은 딸은 때맞추어 온 라인으로 작은 슈퍼를 옮겨놓은 듯 음식물을 보내왔다. 한국에서 작은 오토바이로 배달되어 오던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8톤 트럭으로 도착한 물건을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본다. 일단 냉장고가 채워지니 여유가 생긴 탓인지 닷새 그리고 이어지는 닷새를 지나고 어쩌면 또 다른 격리가 필요할지도 모르는 이곳의 생활을 잘 적응하며 지내리라고 슬쩍 다짐한다.


마음의 창을 열고나니 어느새 추운 겨울에 일찍 지던 해가 조금 늦게 산을 넘는 것이 보이고 강 건너 집들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다가온다.


닷새가 지나 음성으로 판정이 나고 희망 섞인 기다림으로 지낸 또 다른 닷새가 흐른 후 인증 숏으로 찍어 올린 두 번의 음성 판정 결과 우린 144.400시간 만에 마스크를 벗고 이야기를 나누고 한 상에서 식사를 하고 함께 T, V. 를 본다. 자축의 의미로 남겨두었던 와인도 모두 비웠다.


일상의 복귀가 가능해진 어마어마한 행복을 받아 들고 불청객으로 찾아온 코비와의 동거를 접고 위층 남자의 손을 잡고 다시 아기를 만나러 가는 아침이다. 어디선가 나타난 다람쥐가 강가에 앉아 손을 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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