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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영 Apr 03. 2023

봄비.

 봄비.

 아침 창을 열고 밖을 보니 비가 내릴 듯 잔뜩 찌푸린 아침이다.

방금 전 버스커 버스커벚꽃 엔딩을 듣고 화사한 봄 날을 기대한 것과는 대조적인 하루를 보니 약간 실망이다. 곧 뒤이어 들려오는 어머님의 목소리. ‘오늘은 어데 가니?’ 난 웃으며 아니요, 아무 데도 안 갑니다.’라고 답하며  가슴을 감싸드린다.

 어제도 같은 말씀을 하셨고 아마 내일도 같은 질문을 하실 것이다. 문 밖 출입을 안 하신 지 벌써 반년이 가까워온다. 한겨울에 외출을 권할 땐 봄이 되어 따스해지면 나간다고 여러 차례 약속을 받아 놓았건만 아파트 창으로 보이는 중학교 담장이 개나리로 덮여 가고 예전의 엄마의 모습처럼 환하고 부드러운 얼굴로 목련이 탐스럽게 피었어도 문지방 턱은 아직도 높기만 하다. 외출을 유도하느라 식당을 권하면 마지못해 따라 나시어 음식이 입에 안 맞는다고 타박하시는 것은 예전이나 다름없지만 양은 확실히 줄었다. 엄마의 취미이자 건강 지킴이었던 목욕도 머리가 무겁다거나 몸이 이실 댄다며 피해 가신다. 특히 노천탕에 몸 담그는 것을 좋아하시고 영양 팩을 수시로 하시던 어머니였다.

혹 내가 여행을 하고 돌아올 땐 면세점에서 고가의 화장품을 부탁하시던 어머니였다. 하루가 끝 나갈 무렵이면 잠자리에 드시기 전 얼굴 두드리는 소린 우리에겐 익숙한 일상이었다.

 엄마의 음식 맛은 누구나 인정하는 솜씨장이 엄마였다. 근래  단정히 엄마의 소파에 앉아 보시는 티브이 프로그램에 음식 프로 가 많아진 것은 다행스럽다. 요리 고수들의 래서피에 꼭 토를 다시는 습관은 여전하시나 본인의 마음에 들면 적으라고도 나에게 말씀하신다.

 언제부터인가 어머닌 음식 만든 것을 단념하셨다. 처음엔 다시 부엌 출입을 하실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희망사항일 뿐 어머닌 식사 준비는커녕 식사도 하루에 두 번 만 드신다.


얼마 전까지도 내가 쓴 글을 읽어 드리는 것을 좋아하시고 자랑스러워하시던 어머닌 이젠 내가 도서관에 가는 것에도 별로 관심이 없으시고 일찍 마치고 돌아오기만 기다리신다. 내가 돌아올 때엔 가끔씩 주무시고 계시기도 한다. 어머닌 말씀하신다. ‘그저 자는 듯이 갔으면 좋겠다고 그것이 남아있는 자신의 바람이고 최상의 복이라고 조용히 말씀하신다.

진작에 하늘로 가신 분들을 때때로 그리워하는 어머니를 보며 나의 부족함으로 빈자리를 채워 드리지 못함이 늘 미안하다. 그리고 언젠가 돌아가야만 하는 인간의 무력함과 찰나의 삶에 한계를 느끼고 막막함을 느낀다. 보이지 않는 것에 소망의 단을 쌓고 있어도 곧 손에서 빠져나갈 모래 한 줌을 쥐고 있는 것 같아 가슴에 싸한 바람이 분다.

가끔씩 어머니에게 남편과 내가 있어 얼마나 다행이냐며 어머니의 동의를 얻어내기도 하고 함께 웃는다.

 밖은 더욱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비가 내릴 것이다. 봄비다. 화단의 파란 잎새들은 새끼 새가 입을 벌린 듯 보인다. 이 여리고 어린잎들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타민을 받아먹고  마음껏 피어나고 자랄 것이다. 이 봄비를 몸으로 받아들인 붉은 동백은 더욱 진한 열정으로 춤을 추는 무희가 될 것이다.

모두가 회생하고 깨어나는 봄의 전령사  봄비가 내린 후 어머니도 기력을 회복하셨으면 좋겠다. 아직은 저물지 말고 아직은 지지 말고 우리의 곁을 지켜 주셨으면 좋겠다. 내게 힘이 되어 주셨던 그날이 그립다.

버스커의 노래처럼 꽃잎이 울려 퍼지는 거리를 어머니와 함께 걷게 될 날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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