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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영 Jun 17. 2023

이젠 떠나도 돼요 (#5)


이젠 떠나도 된다.(#5)

난 지금 뉴욕 맨해튼의 가장 남쪽의 커피숍에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가 들리는 곳에 앉아있다. 이름은 Le Pain quotidian , 매일 빵을 먹는 곳?

매일 빵을 먹는 곳. 서울의 수많은 빵집과 커피숍을 생각해 본다.  가게의 사인만 다를 뿐 길 위의 비둘기도 화단의 꽃들도 거리의 개들도 다 비슷하다. 인천 공항에서 구입한 너트가 많이 올라간 크롸상과 Le Pain의 블루베리 머핀을 한 잔의 커피와 함께 아침 식사로 먹었다. 둘 다 맛이 좋다.

뉴욕의 맛과 경치가, 서울의 맛과 경치가 비슷하다.

 나는 또한 이집트인처럼 보이는 웨이터의 도움으로 와이파이를 잡고 여기저기로  반가운 이들과 통화를 했다

세계는 하나. 우리도 하나. 따뜻한 가슴도 하나.


13세기에 베니스 사람 마르코폴로가 보았던 세상은 결코 지금과 같지 않았다. 당시  서쪽에서 멀고 먼  동쪽으로 건너가 원나라 사람을 만나는  것은 천만분의 확률쯤이었을까?


supermoving.com 트럭이 창밖으로 지나친다. 오늘날 21 세기에 사는  우리는 일종의 화엄 세계에 산다.

~. com의 세계. 연결되어 있는 세상.

모든 것은 하나. 우리는 하나. 세상도 하나.

동에서 서쪽으로 건너온 나는 오늘날엔 결코 새롭지도 별로 신비할 것도 없는 여행의 바다에서 시차 적응이 어려워 둥둥 떠다니고 있다.

그러나

많은 것이 비슷한 것 같은 상황임에도 여행은 늘 새롭다. 여행은 우리에게 새로운 산소를 공급해 준다.

그래서 우리는 감춰진 여행의 비밀을 찾아  떠나고, 떠나온 곳을 다시 그리워한다.

얼마나 경이로운 삶의 여정인가.

오늘

별로 변한 것 없는 뉴욕의 한 복판. 내겐 큰  변화가 일어난 이곳에서 한 분의 부재를 떠올리며 허무감과 상실감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이번 여행에 가장 먼저 예를 갖추어 찾아뵈어야 할 분이다.

떠나셨으나 살아 계신 분.

우리 가족 모두의 가슴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빛으로 남을 것이고  생전에  우리의 버팀목이 되어 주셨던 분을 뵈러 간다.


여행의 출발이 늦어진  탓에 가슴에 얹힌 응어리를 담고 이제야 큰 절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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