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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영 Nov 20. 2023

아름다운 그녀

아름다운 그녀

 '선생님 지금 오고 계신가요?'

11월 토요일의 길은 늘 밀린다. 감기 기운이 있는 남편과 발목 인대 보호를 위해 기브스를 한 나는

꼭 가야 한다고, 참석하시라고 계속 보내오는 문자를 차마 거절할 수 없어 출발한 차 속에서 오랜만에 듣는  아그네스 발차의 저음이 나름 위로가 되는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아, 오랜만이에요. 저도 달려갑니다. 반가워요. 곧 만나요.'


그녀를 처음 본 것은 아마 6년 전쯤 인가 그리고 우린 단지 2번의 만남이 있었을 뿐이다.

인사동에서 한 번. 그리고 우리가 오늘 향하는 영종도에서 남편들과 한 번.

그것이 다다.

첫 번째 만남에서 난 이름도 낯선 영종도의 전원의 삶을 머릿속으로 그렸고

두 번째 만남에서 나의 소유가 될 아파트 거실 22층에서 바라 보이는 바다와 산으로  들떠있었다.

난생처음 뵌  그녀의 남편도 대기업에서 은퇴를 하셨다고 하시는데 여간 살가운 분이 아니셨다.


더 할 수없이 좋은 조건으로 드디어 서울의 삶을 잠시 잊고 가끔 남편이 혼자 책을 읽고 조용한 곳에서 자신과의 만남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만족스러웠다. 말이 쉽지 그이가 바라는 전원주택이 그리 좋기만 하겠는가 말이다. 나이가 들어가니 건강은 분명 전만 못해질 테고  도시형 인간인 나는 그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줄 수가 없겠다고 생각이 들곤 했다.  은퇴 후  그동안 일해온 남편을 기쁘게 해주고 싶던 차 영종도의 임대 주택의 조건은 내겐 안성맞춤이었다. 나는  스승님도 친구도 가족에게도 어서 함께 하자고 부추기기까지 했다.

모두 좋다고는 하면서도 계약은 한 분도 하지 않고 우리만 외로운 닻을 올렸다

헌데  나이만 먹었지 세상살이에 서툰 우리 부부인지라  암만 기다려도 올라가지 않는 나의 선물은 남편에게 보따리를 풀 수가 없었다. 1 년. 2 년. 그리고 3 년이 지나 이미 영종도의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할 우리에게 분양 사기 덫에 걸렸다고도 하고, 기다리면 된다고도 하니, 그저 잊고 살자고 다행히 그다지 많은 돈을 지불하지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며 아이들에게도 말을 꺼내지 못하고 세월만 보냈다.

답답한 마음에 알아본 공인중개사도 자신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며 100프로 사기를  당했다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한다.


나는 간간이 그녀에게 전화를 하곤 했다. 아마 공인 중개사의 확신에 찬 답을 듣던 날은 통화가 길어졌으리라.

그녀는 맑고 밝게 내게 응대를 하곤 했다.

'염려 말라고. 늦어도 완성된다고.'

드디어 7 년이 되는 내년 3월이 되면 제비부부갈 곳이 생긴다. 그동안 기다림의 겨울은 조금 추웠다.


우리는 계획된  회의가 끝난 후 그녀가 대접해 주는 해물 칼국수에 곁들인 맥주 한잔과 더불어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정권이 바뀌어 지체가 되었고 시공사가 두 번 바뀌고, 올라간 자재 값으로 애초의 분담액 보다 많이 올랐어도 여전히 매력 있는 조건과 환경이라고 우린 자축하며 웃었다.

자리를 옮겨 차를 마시며 그녀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들을 사고로 잃고 힘들어할 때 뇌신경에 문제가 있는 부모도 친척도 없는  여인을 만나 10년 채 돌보며 떠난 아들 대신 보내주신 딸이라고 생각하고 24시간 간호하며  사회복지학 학사과정을 마치고 마지막 시험을 치른단다.


그녀의 상처가 다른 이의 이불이 되는 것을 보았다.

고난의 시간이 타인의 지팡이가 되는 것을  보았다

아픔 위에 피어난 한 송이 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녀의 의연하고 여유로움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나는 생각한다.

기다림의 끝은 있는 것인가.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는 가.

선한 의도로 시작하는 일은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인가.

돌아오는 길.

남편도 나도 머리는 가볍고 다리도 훨씬 부드러워진 느낌이었다.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리라.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마종기 /우화의 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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