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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영 Jan 08. 2024

그이가 보고 싶다.

그 이가 보고 싶다.

나는 지금 그이를 보고 있다. 그이의 중저음을 좋아했고 빙긋이 웃는 모습이 멋있다고 한 때 생각했었다.

몇 해전 주변에서 연속극 '나의 아저씨'를 보라고 했을 때 두어본 보았으나 어두운 분위기가 싫었고 정확히 들리지 않는 대사가 버거워 보는 것을 멈추었던 기억이 있다. 한데 지난해 가을쯤인가 인생을 아는? 분이  권하시기에 다시 시간을 내리라 생각하던 차 덜컥 그이는 세상을 마감했다.

묘한 상실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그 냄새가  나의 기억으로 파고들었다. 그때  23세였다. 나는 신혼을 타지에서 보냈다

하나. 사람.

유일하게 믿고 아는 그이가  집을 비울 때면 혼자라는 두려움과 외로움이 뼛속까지 스며들어 나는 비라도 내리는 밤에는 공포 속에 잠을 청하곤 했다.

당시 내겐 사물도 사람도 모두 새것이었다.

 무심하게도 여전히  아침은  밝아와 한 밤의 적들은 사라지고 다시 새소리가 들리는 지상의 낙원이라 불리는 하와이의 아름다움이 펼쳐지곤 하였다.  

그곳에 가끔 이상하고 낯선 냄새가 퍼지는 것을 경험했다. 그리고 이웃 젊은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곤 했다. 그것이 아마도 마리화나의 냄새가 아니었을까 싶다. 탈출구가 없는 마약이 문틈으로 내게 다가왔던 것이다.


결국 그이가 지상에서 사라진 까닭의 시작은 그것이었다.  *탈출구가 없는 마약*

손대지 않아야 할 것을 가까이 둔 탓에 많은 이에게 아픔을 주고 떠난 것이다.

무엇이 그를 되돌아 오지 못 할 곳으로 몰고 갔을까

스타라는 이름 뒤에 감추어진 외로움은 아니었을까.

다시

외로워서 서러운   날의 연속이었던 그러나 짧아서 다행이던 나의 젊은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어느 날 집 아래에 흐르는 작은 냇물에 자리 잡은

 작은 바나나 나무를 보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어렵사리 바나나 나무를 캐다가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죄책감 없이  내가 바라볼 수 있는 뜰의 한 곳에 옮겨 심었다.   그것이 책에서 보았던 바나나라고 확신했다.

그날  이후  그 작은 바나나 나무는 내가 하와이를 떠나 뉴욕으로 가는 날까지 내 눈에 보이는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비가 한 번씩 내려주니 물은 안 주어도 되었고  열대의 태양과 함께 우리는  성장했다. 나무가 자라고 잎이 푸르러지는 만 가족과 집을 향한 그리움도 조금씩 옅어졌다.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자라던 나무의 속도로  타향에 적응했는지는 알 수없으나 나의 바나나 친구와 함께 날이 지날수록 낯설던 것들이 익숙해진 것은 확실하다.


남편이 일터로 나가면 나는 바나나와 눈을 맞추고 마음으로 그에게 편지를 쓰고  전화를 하곤 했다.

아쉽게도 예정보다 일찍  곳을 떠나 작별을 해야 했기에  들이고 떠니온 바나나의 근황이 가끔

궁금했다. 아직  살았다면 하와이 와이오밍의 최고령 바나나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으리라.


누구나 외롭다.  어느 누구에게도 녹녹한 삶은 없다.  단지 어디에 삶의 초점을 맞추고 호흡하느냐에

따라 하루의 볕을 하루 더 쪼이는 은혜의 강을 건널 것이다. 모든 것은 사라지지 않던가. 견디노라면 과거의 추억으로 지나가지 않던가.


그이가 그립다

 다시 '나의 아저씨'를  시청할 것이다.

그윽하고 따스한 미소와 좋은 연기 속으로 빠지리라. 그이가 아주 사라진 것 같지 않음은 어찌 된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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