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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영 Apr 10. 2024

폴리애나 처럼.

이렇게 봄은 아름다운 것이구나. 몸을 에이던 칼바람도 , 발이 빠져 더 이상 걷기 힘들던 눈길 위의 산행도 나뭇가지에 앉아. 추위에 떨던  마리 새에 대한 연민의 감정도 기억 속에서 지워진 듯.

강변 위로, 숲 속의 길에도, 천변의 산책로에도.

내가 사는 낙산 위에도 물결이 출렁댄다. 감격과 황홀함과 그리고 소소한 일상과 작은 존재의 감사함으로. 살아있음이 고맙지 아니한가.

내 비록 병원을 전전하는 나이가 되었어도

때로 우울하지만 가끔씩  슬퍼지기까지 하지만

찾아온 봄이 반갑기만 하다

꽃길을 향유하는 땐 굳이 이 필요하지 않다.

하늘을 바라보고 가지가 무게를 견지지 못할 정도로 만개한 꽃에게  인사를 나누고

땅으로 떨어지며 작별을 고하는 꽃잎에게도 눈을 맞추며 소통하느라  홀로여도 결코  외롭지 않다.

작년 이맘때  꽃차 한잔 끓이던 시간이 행복했다.  차를 권하며 나누던 덕담을 기억한다.

'우리 건강하게 지내다  꽃피는 날 다시 만나요. 약속해요.' 그리고 이 지났다.

지난 봄날 함께 한 사랑이 깃든 따스한 시간의 공유가 무더운 여름과 혹독한 겨울을 지나

또 한 차례 새 봄을 만나게 해 준 원동력이 된 것 같다.

지금. 천하를 물들인 꽃으로 행복하다.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데 과히 많은 것이 필요하진 않은 것 같다.

가끔 폴리애나를 생각한다.

소설 속 아빠 목사님은 크리스마스날 딸에게 지팡이를 선물하셨다. 인형을 원했던 딸이 우는 것을 보시고 지금 지팡이가 필요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라고 말하신다. 그때 폴리애나는  없는 것이 오히려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론 소설 속의 이야기이지만 이모의 학대 속에서 옥탑 방에 갇혀 지내는 어린 소녀는 하늘이 가까워서 별을 더 잘 볼 수 있다며 '기쁨의 게임'을 한다. 이모가 골탕을 먹이려고 멀리 심부름을 보내면 새로운 동네의 사람들을 만날 있어 기쁘다고 말하는 폴리애나. 결국 마귀 같던 이모는 회개하고 온마을이 기쁨으로 가득해진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아무리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한 가지 기쁜 것을 생각하며 극복한다는 긍정의 심리.

 폴리애나이즘(polly-annaism)이라는 용어는  인간이 세상을 밝게 바라보며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성을 찾으려는  삶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듣기론 캐토릭에선 이것을 ~작은 비결이라고 부른단다. 자기만의 비결로 삶을 관통하는 기쁨을 찾아내는 것.

좋은 일이 생겨야만 기쁜 것이 아니라 살아있고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살아가면 기쁨의 영성이 절로 생겨난단다.

오늘처럼 꽃피는 찬란한  봄날에는 자연 속의 조화로운 삶을 생각하며 무기력을 이겨내고 삶의 작은 비결을 생각하며 기쁨의 게임을 할 일이다. 기다리던 버스가 조금 늦게 도착하면 나는 책 한 페이지를 더 읽을 수 있어 내 영혼을 살찌울 수 있을게다. 오늘 기다리던 벗의 안부를 듣지 못했다면 아마도 내일 반가운 소식을 전해오리라.

이 봄 만개한 꽃이 지고 나면   들판 위로 종달새의 지저귐과  초록의 보리밭이 나를 또 다른 행복의 세계로 안내할 것이라 생각하니 입가엔 어느새 미소가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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