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어가는 황금 들판과 코스모스와 흔들리는 억새를 생각한다.
가을이다.
한 생애를 살아보니 자신이 구름의 딸이고 바람의 연인이라고 말한 여류 시인의 자화상을 떠올리며 걷는다.
오늘은 비가 오시려나 보다.
평소 저음이던 허스키한 목소리가 더욱 깊어진 친구가 병원에서는 앞으로 더욱 상황은 나빠질 것이라고 했다며 20년 가까이 살아온 타국 생활에 별로 말을 하지 않고 살았기 때문이라고 담담히 전하는 모습이 마른 이파리 하나가 땅 위로 떨어지는 듯했다.
나이 70에 들어선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고 말하는 친구의 말에 모두 동의했다. 그래서 만날
때마다 즐거워야 한다며 웃고 떠든다.
우리는 여고 동창생.
가을은 떨어짐인가. 멀어짐인가.
익숙한 것들과 멀어짐.
늦은 봄부터 길고 지루한 여름 내내 입던 옷을 드디어 정리하며 하마터면 아쉽다고 말할 뻔했다.
옷감의 까끌까끌함에 너무 익숙해진 탓이다.
그 익숙하지 않은 질감에 친해지느라 인내의 시간을 보낸 기억이 새롭다.
보내야 한다. 때가 오면.
다가오고 멀어지고 받아들이고, 보내는 행위가 어찌 바뀌는 계절에만 일어나는 일일까보냐
적당히 낮은 기온으로 겉옷 하나쯤 필요한 듯한 날에. 순무 김치를 보내온 지인 덕에 반찬 없는 밥을 맛있게 먹었다.
지독한 여름을 견디고 강화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뿌리를 땅속 깊이 내리고 또 내리어 키워낸 순무 김치의 새빨간 국물과 시큼하게 익은 김치 사이에 배인 달콤한 새우젓 느낌이 좋다.
장안의 화제라는 요리 경연에 빠져있던 몇 시간 전에 비하면 너무 초라한 식탁이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두부를 주제로 흑백의 요리사가 27가지의 요리를 해내는 것을 보고 자극받아 나도 오랜만에. 탕수두부를 만들어 식탁에 올리긴 했다. 그리고 멋진 솜씨로 탕수육을 배가 터지도록 먹게 해 주시던 우리 가족의 최고 백색 요리사이신 어머니를 떠올리며 잠시 울컥했다.
지난 여름의 힘든 어려움을 떠나보내고 아픈만큼 성숙한 군상들 속에 섞여 걷는 느낌이 낯설지 않다. 오늘은 비가 정말 오시려나?
시간의 흐름과 함께 떠나고 찾아오는 것들을 맞으며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아직 꺼지지 않은 희망의 불씨를 본다. 그리운 이가 생각나고 바람처럼 떠도는 인생도 생각나는 10월 중순.
인간이기를 거부하며 나무가 된다고 믿는 주인공이 나오는.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떠오르는 날. 나 또한 어떤 형태의 것이던 폭력을 거부한다.
삶은 공평치 않아 자본주의의 폭력 속에 풍족함으로 넘치는 듯한 세상에 500원이 더 있어야 가능한, 혼밥에 달걀 하나를 얹은 것으로 힘을 얻어 일터로 나가는 이의 고단한 이들도 있다.
그 음식점 골목에선 비릿한 냄새가 난다고 한다. 버려진 생선과 사내들의 배설물이 쌓인 그곳이 일상인 사람들의 모습도 스쳐 간다.
비싼 돈을 지불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3년이라도 기다려야 맛볼 수 있는 요리사의 이름과 인생이 들어간.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맛있기까지 한 한 끼의 식사를 이야기하는 내가 조금은 부끄럽다.
가을이다. 반드시 내게 다가올 고운 나비 같은 새날을 가슴에 품고 걷는 봄 같은 가을이다.
나는 지금 버몬트의 단풍과 단풍나무에서 떨어지던 시럽을 기억하며 익어가는 가을의 오전을 사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