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아침 운동을 마치고 손에 걸리는 매화나무에서 꽃잎 몇 장을 손안에 살그머니 담았습니다. 다칠세라 부서질세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조심스레 발을 옮겼지요. 뜨거운 물을 찻잔에 붓고 꽃잎을 띄우면 매화가 터지며 잔을 채운다는 벗의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이지요. 눈으로 보고 코로 향을 느끼며 목으로 넘어가는 아리한 맛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봄입니다. 늦은 봄처녀의 귀환으로 가슴에 기다림을 심어놓더니 개나리도 목련도 서로 자태를 뽐내며 자리를 지키고 있더군요. 만개한 매화는 너무도 화려하여 눈을 뗄 수가 없었지요.
오늘은 바람도 따스하여 “하늘의 따뜻한 바람이 그대 집 위로 부드럽게 일기를” 바라던 체로키 인디언들의 봄을 향한 축원 기도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전달되는 듯합니다. 인생은 길 위를 끝없이 걸어가는 바람이라고 말했던 사람도 오늘처럼 달콤한 바람이 부는 길 위의 인생엔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겁니다. 저도 왠지 누군가에게 축복 기도를 해주고 싶은 봄날입니다.
새로운 시작의 봄바람이 따스하게 불어 눌리고 어둡고 힘들 게 사는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감싸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어깨 뒤에 있는 희망의 무지개를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봄이 제겐 어떤 색깔로 다가올까요? 멋 부리고 싶은 계절이 시작되었습니다.
무거운 겨울 외투를 벗어버리고 마음도 가볍게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목에 스카프를 두르겠습니다. 노랑과 초록과 분홍빛의 색상에서 잠시 선택의 갈등을 하겠지만 아마도 전 초록빛이 섞인 것을 고를 겁니다.
그리고 되도록 걸음걸이를 조심하겠습니다. 나의 발자국이 닿는 어딘가에서 생명이 움트고 있을 것을 생각하며 가볍게 발을 옮기겠습니다. 귀 기울이고 나무의 말을 듣겠습니다. 어떻게 한자리에서 그렇게 꿋꿋이 버티어 오랜 세월을 견디어 왔는지 한 번쯤 조용히 묻고 싶습니다. 아플 땐 어찌했는지 흔들리는 순간을 어떻게 피해 갔는지 알고 싶습니다. 살면서 그 많은 상처들을 어떻게 보듬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조용히 말해주겠습니다. 내 곁에 있어주어 고맙다고 어느 때고 나를 바라보아주어 힘이 난다고 고백하겠습니다. 그리고 더욱 힘을 주어 내 팔이 허락하는 만큼 많이 깊이 보듬어 주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다가가면 어느새 날아올라버리는 이름 모를 새와도 사귐을 갖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의 언어로 소통할 수 있을까요? 그의 몸짓과 날갯짓을 흉내 내보겠습니다. 아침을 깨우는 그의 고운 노래를 따라 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가 나와 함께 동행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벌써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러 오름을 느낍니다. 봄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풍성한 식탁을 마련하겠습니다. 눈 닿는 곳마다 깔린 냉이며 머위 원추리나물과 쑥과 달래로 마련한 그를 위한 식탁에서 사랑의 나눔을 갖겠습니다. 살면서 찾아오는 춘곤증 따위는 쉽게 이겨 낼 수 있을 겁니다. 아마도 제가 밝고 경쾌한 노랑이 아니고 모성애의 상징이며 우아한 핑크빛 스카프가 아닌 역동적인 초록을 고른 이유는 무엇보다 힘차게 다가오는 봄을 느끼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온 세상이 다 초록으로 물드는 이 봄을 생각해 봅니다. 초록의 숨으로 모두가 풍성한 삶을 그리고 생각만 해도 건강하고 자유로운 봄을 맞고 싶습니다.
초록으로 다가오는 이 축제의 봄을 누가 막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