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이여 평안하신지요? 높고 푸른 하늘은 바깥세상의 어려움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 겨울에도 볼이 붉어지도록 뛰노는 말간 아이들의 마음 같군요.
‘창을 통해 바라보는 그것과 문을 열고 나가는 것 그것은 차이가 있다’라고 했던 분의 말씀이 생각나네요. 내 집엔 많은 창이 있지요 창을 통해 때로 따스하고 때로 빛나는 햇살을 받으며 바깥세상을 봅니다. 가끔 창밖으로 들리는 소리도 있지요. 그러니 우리는 보고 듣는 모든 것을 창으로 가능합니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 새날을 맞으면 먼저 창을 통해서 하루를 가늠합니다. 하늘에 별과 달이 우리들의 밤을 잘 지키고 있는지를 살피는 일로 시작하는 하루지요.
제가 사는 곳이 지대가 높은 곳이라 버스는 잘 다니는지 겨울이 오면 간밤에 눈은 얼마나 쌓였는지 건너편 초등학교 운동장 상황은 어떤지 멀리 보이는 롯데 타워가 안개에 가려지지는 않았는지 등등입니다.
아침형 인간인 제가 가장 기뻐하는 순간은 창을 통해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맞이할 때입니다. 모두가 잠든 듯 고요하기만 시간을 지나 침잠의 숲에서 깨어나는 우주의 신비를 바로 창을 통해 느낄 수 있음에 늘 창에 감사하곤 하지요.
만약 내가 몸담은 집에 창이 없다면 그것은 무호흡의 순간을 살고 있는 것일 겁니다. 무호흡이란 결국 생명을 멈춘다는 것이 아닐까요? 내게 아름다움을 전해주고 살아있음을 각인시켜 주고 해야 할 일이 있음을 기억나게 해주고 밝아진 새날을 맞이하여 사랑하는 이와의 대화를 시작하는 순간들은 바로 창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지요.
창의 방향이 동쪽으로 향하지 않아도 상관없지요. 그이의 마음이 나를 향해있는 창이면 되지요. 멀리 보이는 타워가 안개에 가려져 있는 들 크게 상관없겠지요.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희미하나마 보이니 괜찮습니다.
아침을 지나 오후가 되면 하루를 조금씩 잃어가는 햇빛이 거실로 들어옵니다. 난 그 시간이면 한 번 더 창을 열어 놓아요. 환한 빛으로 가득 채우던 거실이 창에 걸린 블라인드의 그림자로 다른 모양의 무늬를 놓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사는 것은 인생이라는 길에 무늬를 집어넣는 것입니다. 기왕이면 날과 씨로 아름다운 문양을 넣은 직물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한없이 평탄하기만 한 길도 그렇다고 끝없이 탄식만 하는 여정이 아닌 적당히 어려운 가운데 삶을 알아가는 것.
한 겨울나무의 나이테가 더욱 두꺼워지듯이 밤이 깊을수록 별은 더 빛나는 이치를 알아가듯이 그렇게 고통과 아픔이 기쁨과 함께 날과 씨로 섞여 있는 삶.
직녀의 옷자락처럼 거친 직물이 아닌 비단으로 하늘하늘 여린 것. 자꾸만 손길이 가는 천. 그래서 놓아도 손끝에 여운이 남는 그것으로 우리의 삶을 수 놓으면 좋겠습니다.
그대여 오늘 당신을 생각하는 까닭은 바로 당신의 아름답고 따스한 손길과 당신이 베푸신 애정의 실타래 때문인 그것을 잘 압니다.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고,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행하는 것. 우린 그런 사이가 아닙니까?
우리 곁에 많은 창이 있습니다. 당신의 모습이 창으로 지나가십니다. 당신의 음성이 창으로 들립니다. 내가 너무 쉽고 가까운 것으로 이해타산을 맞추며 살지! 말라고 말씀하는 듯합니다. 내가 교만하여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말라고 하시는 듯합니다. 주위의 모든 것들과 화합하며 살라고 하시는 듯싶습니다. 오늘 이만큼 보이고 허락된 그것으로 만족하라고 하시는 듯싶습니다. 물처럼 그렇게 살라고 하는 듯싶습니다. 부딪치지 말고 돌아가고 낮은 곳으로 흘러 바다로 나가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머리로 이해하고 알지만 말고, 가슴으로 느끼어 문밖으로 나가서 실천하며 살라고 하시는 듯싶습니다.
알겠습니다. 창을 통해 바라보지만 말고 문밖으로 나가라고 하신 뜻 이제야 알겠습니다. 내일부터라도 문을 조금 더 열겠습니다. 이제 곧 당신을 뵐 수 있겠군요. 설레는 마음으로 이만 접을까 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