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지하철 속에서

by 김인영

약속에 맞추려 시간적 여유를 두고 나왔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허락된 일주일의 시간 속에서 느긋하게 조금 더 여유 있는 듯, 늦게 일어나고 늦은 식사를 하고 때론 한 끼 식사에 진심인 내가 먹는 것을 거르기도 한다.

의도적이기도 하고 늦은 출발인 까닭이기도 하다.


오늘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여행의 후유증인가 늦게 일어나 도무지 입에 맞지 않는 커피를 비우지 못하고 카페로 향한다.

울상인 시어머니 낯빛 같은 찌푸린 하늘 아래 너무나 긴 줄로 늘어 선 사람들을 보았다.

얼핏 보니 '삼일문'이라 쓰인 현판이 보인다.

소위 말하는 파고다 공원의 어르신들을 위한 무료 급식 장소이다.

여전하구나. 이곳은.

하긴 겨우 10일 고작 240시간이 지났을 뿐이다.애초에 변화 따윈 기대를 말아야한다.

오늘은 한 끼는 건너뛰리라 생각한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담아왔던 파란 하늘 밑 카페 사진을 찾아본다.

여행을 다녀온 후

이틀째 보고 있는 넷플릭스의 '프라하의 연인'에서 물 위에 비치는 한 밤의 성벽과 배우들의 연기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시간으로 나를 안내한다.

20년 전에 방영되었던 것이라는데 그래서 주연 배우들의 표정과 연기는 더욱 풋풋한데 나는 2025년 5월에야 빗나간 사랑과 저질러진 물거품과 새로 다가온 사랑에 빠져들며 시차를 극복하려 하고 있다.


사진을 찾노라니 커피 향과 와인과 세계 최고라는 포루투갈의 작은 도시의 에그타르트를 찾아 걷던 시간이 그립다.

경로석에 함께 앉아있는 내 또래의 두 분의 할머니 친구들은 쉬지 않고 손자 손녀의 자랑 섞인 일상과 영어 유치원의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손자 사랑은 할머니의 몫이 분명하다.

이런들 어찌하며 저런들 어쩌리오.

못 먹는 자나 넘치는 자나 함께 공존하는 세상 아니던가

어느새 나는 자리를 비워 내릴 시간이 되었다.

삼성역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돌아오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