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방법으로

by 김인영

도대체 몇 시간을 잠결에 빠져 있었던 것일까.
천경자 평전을 읽다 잠시 더워서 일어나 창밖을 보니,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이다.
갈등 속에서 만삭의 몸으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고 피로연만 치렀다는 대목까지 읽은 기억이 있다.

아마 그때쯤 잠이 들었을 것이다. 잠시 거실에 나왔다가 다시 방으로 들어와 이렇게 아침을 맞았다는 게 스스로도 믿기지 않아 피식 웃음이 났다.


정다운 이가 보낸 문자에 고맙다고, 나도 많이 보고 싶다고 답을 보냈다.
어제 나는 지난번과 똑같이 우이동 소나무길과 연산군 묘를 도는 코스를 택했다.
호기심의 신선함은 조금 덜했지만, 마음속에 담아둔 계곡에서의 점심 한 끼를 생각하니 그만한 이유가 되었다.

여전히 산은 크고, 숲은 푸르고, 밤나무는 노란 향기를 진하게 흩날리고 있었다.
산책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주변 풍경도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 역시 예전과 같을 리 없고, 화려한 등산복과 깊게 눌러쓴 모자 속의 그들도 어쩌면 마음 한켠이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다.


새날과 더불어 낡아가는 몸을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땀을 한바탕 흘리고, 나른한 몸을 맑은 계곡물에 식히며 점심을 먹는다.
닭 한 마리와 묵무침이 비어갈 무렵이면 우리는 현실의 이야기를 꺼낸다.
나이듦의 공허함, 부부 사이의 거리, 자식들의 삶에 대한 엷은 염려.
결국 문제는 언제나 관계다.


많은 부부가 “그냥 산다”고 말한다.
가정을 위해 평생을 일터에서 보낸 가장들은 은퇴 후 갈 곳도, 반겨주는 곳도 없어 쓸쓸히 하루를 보낸다.
아내는 모임과 취미로 바쁘고, 자녀들은 각자의 삶에 치여 부모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서로 가장 가까운 듯하면서도, 속마음을 내보이지 못한 채 초라함 속에서 하루를 견디는 사람들.

이 시대의 비극은 화려한 통계 속에 자란 독버섯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자존감을 지키며, 어떻게 6월의 장미 앞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이제는 나만의 방법으로 살아야 한다.
누구의 방식도 아닌, 나만의 길.
그날이 닥치기 전에 미리 준비해야 한다.

물질만능의 세상이라 하지만, 하루를 기쁘게 보내는 데 많은 돈이 필요하지는 않다.
‘만원의 행복’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우선 마음을 비우고, 주변의 사소한 것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일부터 시작하자.


아침에 일어나 하늘을 본다.
날이 맑으면 더욱 좋다. 신을 신고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한다.
한 시간쯤 걸으면 맑은 공기 속에서 새로운 하루의 설렘이 느껴진다.
신문을 펼치고, 그 속의 짧은 시 한 편에 마음을 머문다.
우리는 그렇게 매일 조금씩 배우며 살아간다.



“우승컵보다 다섯 살 딸을 먼저 안았다”는 한 프로골퍼의 기사를 읽는다.
행복한 미소가 나를 덩달아 웃게 만든다.
새싹을 심고 매일 물을 주자.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초록의 생명력은 내게 작은 위로가 된다.
닷새 뒤면 그 씨앗이 식탁 위의 초록으로 자랄 것이다.
신문을 다 읽을 무렵이면 오전의 시간이 어느새 흘러간다.


차 한 잔을 들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사연에 귀를 기울인다.
오후가 되면 또래 친구들이 있는 인문학 강의실로 간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젊을 때 놓쳐버린 것들을 다시 배우는 시간.
그것만으로도 삶은 조금씩 달라진다.


우리 나이엔 사소한 것도 모두 소중하다.
새로운 도전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일주일에 한 번, 혹은 마지막 수요일엔 고궁을 거닐자.
나무 아래를 천천히 걷고, 우물가를 들여다보고, 정자 밑에서 바람을 쉬어보자.
영화 한 편 보고, 점심을 가볍게 먹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 집으로 오자.
아직 혼자 영화와 식사를 즐기기 어색하다면, 함께 하면 된다.
너무 익숙해서 소홀해진 사람들과의 관계를 조금은 다정하게 바꿀 수 있지 않은가.

시작하면 어느새 일상이 된다.
그렇게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내가 나를 사랑하면, 남도 나를 존중한다.
어느새 얼굴빛이 환해지고, 말씨가 부드러워지고, 웃음이 잦아진다.
남의 말에 다치던 마음도 이젠 용서로 바뀌어 간다.
그렇게 삶은 푸르게 변한다.


이것이 나만의 방법이다.
작아진 눈이 다시 커지기를 바란다.
그러면 8월에도 크리스마스 같은 하루가 찾아오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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