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 현관 벨이 울린다. 등기로 된 우편물을 전해주고 황급히 돌아서는 택배 기사님. 눈길 언덕을 오르느라 힘드셨을 거라는 생각에 따뜻한 차 한 잔을 권했지만, 손사래를 치신다. 미안한 마음으로 문을 닫고 봉투를 열어보니, 한 해를 함께 보낸 낯익은 유치원의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 풀잎 반’, ‘시내 반’, ‘이슬 반’, ‘새싹 반.’ 싱그러운 이름을 가진 그곳에서 우리의 전래동화를 들려주던 시간이 참 행복했다. 향기 나는 이름처럼 작고 어린 생명들이 자라나는 동안, 나 역시 삶의 의미를 산더미만큼 부여받았다.
고향을 떠나 지방에서 터를 잡고 살면서, 함께하지 못하는 가족들의 부재로 허전할 때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지인의 도움으로 서류를 접수하고 면접을 보고 교육을 받은 뒤 유치원에 배정되었다. 그렇게 나는 무구한 눈빛의 어린이들을 만나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가 되었다.
때때로 생각한다. 어쩌면 나는 작은 꿈 하나를 이룬 게 아닐까.
벌써 45년 전, 20대 초반의 어느 날이었다.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생가를 방문했을 때, 그곳을 안내해 주던 분은 은발을 곱게 빗어 올린 참 고운 할머니였다. 대통령이 머물던 거처를 계단을 오르내리며 차분하게 설명하는 모습이 얼마나 멋져 보였던지! 그 시절 나의 어머니나 이모님들이 그저 가정주부로서 현모양처의 본을 보이시던 환경에 익숙했던 나는 문득 생각했다. “언젠가 나도 저렇게 고운 옷을 입고, 아름다운 미소로 내가 가진 지식을 타인과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서쪽 하늘을 물들이며 넘어가는 해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지금, 나는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가 되어 있다. 한복을 입고 단정한 모습으로 선현들의 미담을 공부하며, 어린이들과 함께 웃는다. 젊은 날의 바람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귀는 쫑긋, 눈은 반짝. 이야기가 시작되면 아이들의 귀와 눈은 어느새 이야기 나라로 여행을 떠난다. 그들은 ‘할머니’라 부르는 것도 잊고 ‘선생님’이라 부르며 무릎 위로 올라와 안긴다.
작은 새 한 마리가 품에 안긴 듯 따스한 숨결이 전해질 때면, 가슴 깊은 곳이 저릿하게 감동한다.
“할머니 이야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이 사랑해요. 건강하세요. 너무 재미있어요. 우리 생각 많이 해주세요. 추운 겨울 잘 보내세요. 오래 사세요.”글씨보다 큰 마음이 담긴 아이들의 편지. 글쓰기가 서툰 어린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그림처럼 썼다.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그것이 말의 온도다. 감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익혀진 교육의 힘이기도 하다.
꽃게와 원숭이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쓴 아이, 그날 손동작을 더 해보자며 졸랐던 그 얼굴이 떠오른다. 땅에 항아리를 묻은 어머니 이야기를 좋아하던 아이, 그 지혜로운 어머니가 되어 연기하던 내 모습이 문득 그립다. 매일 와줬으면 좋겠다고 쓴 편지를 읽으며, 당장 달려가 그 볼을 비비고 꼭 안아주고 싶었다.
수업을 마칠 때마다 말했다. “지혜롭고 용기 있는 어린이가 되세요. 나눔과 배려,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세요.”한 주 뒤 다시 만나면 물었다. “친구에게 배려했나요?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렸나요?”그러면 아이들은 앞에 나온 친구의 대답을 비슷하게 따라 하거나 그대로 반복하곤 했다. 그런 순간마다 웃음이 터졌다. 웃음이 있는 곳, 바로 천사들의 쉼터였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말하길,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즐겁게 놀아야 한다.” 나 역시 그 말에 공감한다. 새로운 이야기를 외우고 준비하는 일은 내게 도전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들과 함께 놀기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수업 중에 질서를 위해 아이들을 지도해 주신 선생님들께 이 글을 빌려 감사드린다.
사람이 사람을 가르치는 일, 그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보람된 일이라 믿는다.
부드럽게, 그리고 꾸준하게. 아름다운 할머니로서 품위를 지키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어린이들이 건강한 인성과 따뜻한 마음을 지닌 인격체로 자라도록, 그 작은 묘목에 물을 주는 일. 그것이 나의 행복이다. 인공 지능이 인간의 자리를 대신하는 세상이 되어도, 고사리손을 잡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마음으로 소통하는 일만큼은 오롯이 인간의 몫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다던 아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쌍둥이 형제라던 아이, 책을 만 번 읽었다며 자랑하던 아이들. 그 모든 아이들이 오늘도 건강하고 밝게 자라기를, 나는 매일 아침 기도한다.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 사는 세상, 그 길목에서 꿈을 품고 희망의 꽃씨를 뿌리는 어린이들이 되길 소망한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아쉬워요. 할머니 오래오래 사세요. 또 만나요.” 귓가를 맴도는 아이들의 합창. “그래, 고맙다. 오래오래 듣고 싶구나.” 이야기를 기다리는 아이들처럼, 나도 그 말이 오래오래 이어지길 바라는 욕심쟁이 할머니로 살아가고 싶다.
풀꽃 ! 나 태 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