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려 받고 싶은 것

by 김인영

라디오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전화로 청취자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진행자는 연결된 청취자에게 살아온 인생에서 되돌려 받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40여 년 전 군대에 가며 보살펴 달라고 부탁했던 친구에게 맡겨 둔 애인을 빼앗겼다고 했다. 애인을 돌려받고 싶으냐고 웃으며 묻는 진행자에게 그는 머뭇거리다 이미 결혼해 잘 살고 있으니 명절 때 선물이나 보내 달라며 전화를 끊었다.

명절 선물로 예전의 애인을 한 번 보고 싶은 것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미 쓸려 가버려 아무것도 남지 않은 바닷가 백사장처럼, 우리에게도 과거로 흘려보낸 것들이 있다. 우연히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는 무엇을 회복해 곁에 간직하고 싶을까. 안개에 가려 희미해진 기억 속에서 다시 불러내고 싶은 장면은 무엇일까.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께 여쭈었다. 과거로 돌아가 되돌려 받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느냐고. 즐겨 보시던 텔레비전에서 시선을 떼시며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공부’
여든이 넘은 지금도 오래전 오빠에게 양보했던 간호학교 진학의 꿈이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이다. 어머니가 공부를 마치셨다면 그 일을 누구보다도 훌륭히 해내셨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삼촌은 이미 세상을 떠나셨다. 내가 택시를 타면 기사님들이 혹시 교수님 출신 아니냐고 묻지 않느냐며 너스레를 떨자 어머니는 웃으셨다.

다음 날에는 남편에게 물었다. 여러 표정이 잠시 그의 얼굴을 스쳤고, 그는 말했다. ‘어머니’

남편보다 네 살 어린 동생을 낳다 산후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 예순을 넘어서도 여전히 어머니가 그리운 내 남편에게,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모임에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로 서로에게 마음을 열지 못한 채 살아가는 부부의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에 그녀를 위해 준비했던 작은 선물은 그녀가 모습을 보이지 않은 탓에 해를 넘겨 내 방 장롱 속에서 잠자고 있다. 그녀가 빠진 모임은 허전했다. 늘 서글서글한 얼굴로 나를 언니라고 부르고 싶다던 사람. 언젠가 나는 더 이상 그녀의 편이 되어 줄 수 없다며, 먼저 매듭을 풀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말이 너무 매몰찼던 것은 아닐까. 되돌리고 싶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그녀가 세월이 흐른 뒤 지금 돌려놓지 못한 것을 가슴을 쓸며 후회하지 않기를 바란다.


살면서 후회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군가는 결단하지 못해 후회하고, 누군가는 도전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한 이유 속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놓치며 살아간다. 어떤 이는 사랑하지 못한 것을 어떤 이는 버리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후회는 아침과 밤처럼 그렇게 자연스레 우리 곁에 머무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내게도 과거로 향하는 타임머신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젊은 날 볼을 스치던 강바람과 가슴 아리던 갈등과 분노 속에 허우적거리던 시간들까지도 진지하고 정중하게 맞이하고 싶다. 그 이름만으로도 눈부신 젊음을 조심스레 다시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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