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이라는 공간이 나를 그렇게 이끌었다.
천안 YWCA 여성인력개발센터 독서 자격증 반을 맡으면서 도서관에 열성적으로 다녀야 했다. 수업 준비를 위해 읽어야 할 책이 너무나 많았기에 수업 이후의 시간은 도서관 서가에서 책을 찾고 공부하기 바빴다. 기특하게도 이때의 시간들이 너무 알찼다. 독서에 필요한 공부를 위해서라면 전국 어디든 달려가서 배워왔다. 그러나 나를 가장 발전시킨 건 도서관에서의 책들! 바로 그 책들이었다. 도서관으로 향한 내 발걸음은 행운이었다. 채사장 님 <열한 계단>이란 책에 도서관에 대한 글이 있다. 수없이 도서관을 드나들며 나도 이런 생각을 했었고 이 문장을 읽으며 공감의 밑줄을 쳤다.
도서관이 더 많고 좋아졌으면 한다. 책은 더 많아지고 자리는 더 쾌적해지고 밥은 더 저렴해졌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무엇인가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지혜를 앞에 두고 침묵 속에서 내면으로 침잠해 가는 그들의 용기를 사회가 보호해 주었으면 좋겠다. 도서관이 있다는 건 위안이 된다. 세상과 내가 빠르게 변해가는 동안에도 도서관은 변하지 않고 언제나 나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으니. 익숙한 고요와 책 냄새.
-채사장 <열한 계단> p.330에서
이십 년 전 나는 저 문장 속의 그처럼 무엇인가를 도모하며 도서관으로 향했었다. 언제나 그렇듯 책 읽기엔 묘한 힘이 있고 조금씩 마음에 에너지가 생기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나를 눈여겨보았던 시선들이 있었고 그렇게 시작된 도서관의 인연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대학원을 다니고 도서관 프리랜서로 수업을 했던 이야기의 시작이 이러하다. 한 번쯤 꼭 정리해 보리라 다짐했던 일, 나처럼 길을 찾으려 골목길을 헤매고 계신다면 아주 조금은 용기를 얻으실 수 있는 이야기일 거다.
도서관에서 책을 찾고 빌려와서 열심히 읽고 노트 정리 하는 일은 삶의 기본 값이 되었다. 가장 기본적인 이 일은 내 통장을 화수분처럼 만들어주기도 했지만 사실 더 큰 건 나를 좀 더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줬다는 데 있다. 책 읽기는 좀 더 의미 있는 선택을 하도록 도와줬다. 삶의 단계마다 필요한 지혜를 책 속 루소에게서 스토너에게서 얻을 수 있었다. 삶의 길목에서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자기 연민이나 절망에 빠지지 말고 다시 시작하라는 그들의 충고를 내 마음속에 단정한 아포리즘으로 간직하며 살 수 있었다.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하나하나 또박또박 읽어낸 책, 책들! 그 책들을 정리해서 수업 자료를 만드는 시간은 힘들었지만 환희를 느낄 때도 많았다. 고민해서 만든 수업 자료로 멋진 수업을 끝내고 돌아오는 내 발걸음은 하울과 소피가 하늘에서 내려오듯 경쾌하고 가벼웠다.(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
대부분의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낸 나날들이었다. 독서 수업을 했고 나머지 시간은 열람실에서 책을 살피며 보냈다. 그리고 또 도서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도서관의 다양한 사업에 조언도 했다. 내 나날들의 소소한 에피소드를 글로 모아 나의 세계가 만들어졌다. 오래전 써 놓은 노트를 펼쳐보면 그 속에 지금보다 훨씬 젊었던 내 모습을 오늘의 내가 바라보는 게 기쁘면서도 마음이 이상했다. 갈 곳 없던 내가 도서관으로 발길을 향했고 수업할 기회를 얻은 건 행운이었다. 좋은 평가를 받은 수업도 있었고 폭삭 망한 수업도 있었다. 수업을 잘 마치면 가볍게 돌아오지만 폭망 한 날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좌절만 할 수 없지 않은가. 성공으로 가는 우수한 실패였다고 생각하며 다음 수업에 반면교사로 삼았다. 수업 제안이 들어오면 할까 말까 망설임이 있었지만 되도록 받아들였다. 왜 한다고 했을까 후회도 잠깐, 끝까지 최선을 다해 마무리했다. 재미도 있었고 성취감도 얻을 수 있었다. 더 잘하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나를 그렇게 이끌었다. 이렇게 돌아보니 모든 시간들이 나름의 의미를 품고 있다. 참으로 신기한 경험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