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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희 책여울 Jan 09. 2024

내 삶도 한 편의 소설 같은 기분이  비로소 든다.

로맹가리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본명은 로맹가리, 필명은 에밀아자르! 러시아에서 유대계로 태어나 홀어머니 아래서 자란 그는 "어떤 일도 내게 일어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어머니의 해피엔드이므로"라는 찡한 말을 남겼다. 세계대전 참전 영웅으로 외교관으로 세계적인 작가로 이름을 날리다 권총자살로 극적인 삶을 마감한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것에 유감이 있었는데 그의 인터뷰를 엮은 책 <내 삶의 의미>를 보니 더 이상 보여줄 게 없는 여한 없는 삶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의미에서의 자살이었다. 물론 아들의 동의 하에. 경지가 다르구나 혀를 찼다.


로맹가리 이름으로 발표한 단편 모음집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난 이 책을 2008년 늦가을 내내 들고 다녔다. 한 편 한 편 너무도 인상적인 이야기들이라 다 읽고 반납할 때는 돌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마저 들었다. 그러다 내가 빌려 읽었던 그 책을(같은 도서관이었고 그때 빌린 그 책이었다.) 도서관 서가에서 다시 발견했다. 서가에 쪼그려 앉아 첫 번째 단편 <새들은>을 다시 읽었다. 피가 식기 시작해 이곳으로 날아올 힘밖에 남아 있지 않은 새들이 페루 해변 모래사장으로 날아가  몸을 던지는 것처럼  쓸쓸한 인생. 소설 속 나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페루로 간 이 남자에 끌렸다. 그는 체게바라를  사랑하고 이상 세상에 젊음을  바친 사람으로 나이는 마흔일곱! 그리고 독자인 나는 이 남자를 그려봤다.  바다가 보이는 그의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를 내려 함께 마시고 싶었다.  겨울은 햇살 아래에 서 있어도 춥고 쓸쓸하니 그와 함께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 큰 위안이 될 것이기에.

로맹가리 책을 읽게 된 계기는 공지영의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사랑할 것이다>에서 소개를 받아서였다. 자신의 딸 위녕에게 쓴 편지 모음인데 좋은 책을 많이 추천하고 있다. 일단 제목이 맘에 든다. 이 책을 읽기 전 공지영이 세 번 결혼하고 그때마다 성이 다른 아이를 낳은 것 때문에 그녀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이후 그녀와 화해의 의미로 공지영 책은 거의 대부분 읽었다. 물론 공지영 작가님은 내 화해를 모른다.


공지영은 로맹가리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에 이런 제목을 붙였다.

"희망은 파도처럼 부서지고 새들처럼 죽어가며 여자처럼 떠난다"


그리고 어느 겨울날의 내 이야기 하나.


청주에 있는 오성당이라는 빵집을 굳이 찾아서 다녀왔다. 청주 오성당은 쫄면과 로케로 배고픈 학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곳이었다.  1983년 자주 갔던 이곳을 다녀왔다.(아~~ 몇 년 만인지!) 친구랑 500원을 모아 쫄면 한 그릇과  로케 하나를 나눠 먹었으니... 내가 돈만 벌면 실컷 사 먹으리라 얼마나 다짐했던가. 그러고는 내 기억 속에 사라진 그곳을 언젠가 가 보니 오성당 빵집이 없어지고 다른 가게가 있는 게 아닌가. 그렇게 내 기억에 잊혔던 그곳. 우연히 지인을 통해 장소를 옮겨 지금도 영업을 하고 있다는 감격스러운 정보를 얻고 달려간 거다.


어린 날 그 맛은 아니었다는 슬픈 현실. 나도 나이를 먹는 거... 감동은 오래가지 못했다. 쫄면은 너무너무 매웠고(심지어 삶은 달걀 반 쪽도 없었다. 가격을 생각하면 다 이해되지만!) 로케는 어찌나 기름진지 다음날까지 속이 안 좋았다. 어째 인생은 이렇게 핀트를 못 맞추고 자꾸 어긋나기만 하는지. 지금은 로케를 몇 십 개 살 수 있는 돈이 있건만 먹을 수 없으니!


1983년 청주 시내 본정통을 친구 인애(500원을 모아 고로케와 쫄면을 나눠 먹던 친구)랑 하릴없이 걸었던 그날들이 아련하다. 인애랑은 결혼 이후 몇 번 연락 끝에 서로 살기 바빠 어느새 소식이 끊긴 지 오래됐다. 문득 인애가 너무 그리웠다. 기대도 안 하고 인애 이름을 넣어 검색을 했다. 그런데 정말 인애가 나왔다. 20대 모습만 기억하고 있는데 사진 속에 인애는 어엿한 모습으로 제법 어른스럽게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못지않게 내 삶이 걸어온 시간들도 한 편의 소설 같은 기분이 비로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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