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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영욱 Sep 20. 2023

즐거운 고려장

(2023년 2월 웹진 시인광장)

 

여보, 잉카 사람들처럼 

바랑에 방울 달고 바람을 돌고 돌아 

산굽이 오르내리다 보면 

두 사람 누워 네 다리 뻗을 

조그마한 땅뙈기 만나지 않겠어요

우리 외할머니의 시어머님은 

아드님이 울며 지게 매고 

산으로 데려 가셨대요 

눈이 많이 내린 날이었대요 

어제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육십갑자 한 바퀴를 완주한 날, 

당신과 난 먼 생을 걸어가야 돼요

아무도 뒤쫓아 오지 못하는 

높은 곳으로 천지사방 쏘다니다 

지치면 부둥켜안고 잠들자고요 

두 몸뚱이 포개진 채로 

천만년 풍화되어 바람으로 살아지더라도 

우리 둘만 알아볼 수 있도록 

껍데긴 여기 버려두고 

알맹이로 떠나자고요 

여보, 고대 잉카 사람들은 

아이들을 낳고 기른 지붕 아래 

두 개의 시간을 매달아두고 

시계바늘이 포개지는 첫날

새벽길을 떠났대요 

그림자 떼어놓고 울며 

뒤돌아보지 않으려 웃으며 

구름 위로 뛰어다녔대요 

여보, 눈이 다 녹아가요 

우리도 잉카 사람들처럼 

돌아온 생은 아무데서나 

먼지처럼 부려놓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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