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시산맥 여름호)
스타킹에 발을 밀어 넣을 때마다
밤기차를 타는 기분이랄까
사라진 발가락, 사라진 종아리, 사라지는 허벅지,
작은 거스러미에도 멀리 가버리는 걸
번번이 놓쳐버리지만, 괜찮아
이정표에는 새로운 목적지가 표시되니까
실크 양말 구둣발과 망사 하이힐이 얽히는
스텝으로
이별이 속도를 높이는 소실점까지
허리춤을 잡아당기면
복선으로 말려 올라오는
뜨거운 눈빛
구멍 난 바람의 맨살은 더듬지 말고
휘파람 불어 주름치마 부풀려
엄지 척, 치켜세우면
발꿈치부터 들리면서
어디라도 갈 수 있는 왕이 된 기분이 될까
스타킹을 창턱에 걸어놓은 밤,
도움닫기 없이 뛰어내린 플랫폼에서
머리까지 풀어헤치고
마지막 기차는 트랄랄라로 떠났으니까
귀신처럼
지금부턴 맨발로 떠도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