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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벽 속의 속삭임

귀신탐정 권두칠

by 바람비행기 윤기경

권두칠은 장명호의 옛집 지하통로에 앉아 있었다.
피곤이 아닌, 기억의 무게에 짓눌린 듯한 침묵.
벽에 걸린 폴라로이드 속, 자신과 꼭 닮은 인물.
하지만 눈이 없는 자신.

“이건, 내가 아는 내가 아니야.”

그는 손전등을 들어 통로 안을 더 깊이 비췄다.
벽은 무수한 아이들의 손글씨로 가득했다.

“아빠…”
“무섭다…”
“형아… 여기 있어…”

아이의 공포가 이 벽에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누구… 있어요…?”


권두칠은 멈춰 섰다.
낮고 떨리는 목소리.
분명히 실제 목소리였다.

“유나냐…? 신유나 맞니?!”

잠시 침묵.
그러다, 다시.

“… 여기, 갇혔어요…
자꾸, 자꾸 벽이 닫혀요…
눈이 없는 아저씨가 와서… 또 닫아요…”

그는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다.
텅! 텅!
하지만 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발밑의 바닥에서 찌이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돌판 하나가 미세하게 열려 있었다.
그는 판을 걷어냈고, 아래로 이어진 더 깊은 수직 통로가 나타났다.

“이건… 감금이 아니라, 감추기였군.”

사다리를 타고 내려간 아래,
좁은 콘크리트 방 안.
그곳엔 오래된 플립 차트 하나가 놓여 있었다.

차트 위에는 수십 개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실종된 아이들의 얼굴.
그리고 그 가운데, 신유나의 얼굴에만 붉은 원이 그려져 있었다.

책상 위에는 오래된 테이프 하나.
라벨엔 낙서처럼 적혀 있었다.

「조용히 해, 그러면 아무도 몰라」

두칠은 테이프를 재생했다.
낡은 기계가 덜컥 덜컥 돌아가더니,
처음엔 잡음,
그다음엔… 아이의 울음.

“흐윽… 여긴 어두워요…
아저씨가… 웃어요… 눈이 없어요…
근데, 자꾸 엄마 흉내를 내요… 흉내를…”

“조용히 해. 다시 울면, 문 닫는다.”

“안 돼요… 다시 오지 마요… 아저씨 아니잖아요…”

그 순간,
방 안 조명이 깜빡였다.
등 뒤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

“찾았네… 또… 찾고 말았네…”


천천히 돌아보자,
눈이 없는 남자.
코트 차림.
입만 웃고 있었다.

“두칠이 형… 그때 넌 대신 가지 않았지.”


박형섭.
그는 아직 살아 있었다.
아니,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들은… 나를 잊어버릴 수 없었거든.”

그가 걸어오자,
벽면에서 희미한 아이들의 그림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개를 숙인 아이들.
눈이 없는 아이들.
모두 그를 피해 몸을 떨고 있었다.

“아이들을 돌봐야지. 어른들이 못하는 일을, 내가 해야지…”

권두칠은 천천히 손을 옷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예전 사건에서 남겨둔 증거용 손전등을 꺼냈다.
그 손전등에는 음성녹음기가 붙어 있었다.

“그래. 네가 한 말, 지금 전부 녹음되고 있다.”

박형섭의 웃음이 멈췄다.

“……넌, 항상 귀신보다 더 귀찮았지.”

그 순간, 아이들 그림자가 박형섭을 향해 밀려들었다.
형체는 허물어지듯 어두워지고,
박형섭은 처절하게 외쳤다.

“그만! 넌 죽은 놈이야, 권두칠!!
죽었잖아!!!”

두칠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럼… 나는, 죽어서도 추적하는 놈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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