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대통령의 그림자

나도 대통령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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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대통령을 원하던 시대가 있었다.
결정을 미루지 않고, 말을 돌리지 않고, 자국을 먼저 외치며, 주먹을 탁 치며 나가는 리더.
대중은 그의 입을 바라보며 안도했고, 그의 목소리에 손뼉 쳤다.
하지만 강함은 때로 몰아치는 바람이 된다. 나뭇잎은 흔들리고, 약한 자는 쓰러지고, 누구는 "왜 나만 맞는 거야"를 외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은 애국심, 경제 부흥, 자기 확신으로 열광적 지지를 받았다. 동시에 극단적 이분법, 인종·젠더 갈등, 가짜뉴스 양산의 상징이기도 하다. 세계 언론에서 '가장 사랑받는/가장 미움받는 대통령' 양쪽 리스트에 모두 등장하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려 했지만, 미국을 둘로 갈라놓았다.”라는 호응과 비난을 함께 받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종교 자긍심, 경제 인프라 개발로 힌두계의 영웅이었다. 그러나 소수 종교 차별, 표현의 자유 억압으로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았다. 힌두교 외 계층에선 두려움과 불신의 상징이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는 러시아 안에서는 ‘강철의 리더’라고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국제적으로는 자유의 적, 전쟁 책임자이다.

“자국에겐 영웅, 세계에겐 경계대상.”이라는 극적인 평가의 인물이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는 마약 척결로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인권 유린으로 국제 망신의 아이콘이 되었다. 필리핀 국민 사이에서도 "미움과 존경"이 동전의 양면이었다.

그럼, 왜 이렇게 극단적일까? 강한 리더는 적도 많이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명확한 편 가르기, 과감한 개입은 지지층에겐 영웅이지만, 반대쪽엔 공포였다.

작은 말도 퍼지고, 잘못된 말은 과장되고, 해명은 묻히고, 기억은 왜곡된다.

대중은 기억보다 인상을 믿는다 “잘했는가”보다 “느낌이 좋았는가”가 더 오래간다라는 뜻이다.

"사랑받는 대통령이 싫어지는 데는 10초면 충분하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은 거대한 거울이다. 국민이 원하는 이미지를 투영하지만,
그 거울을 오래 바라보다 보면... 거울 너머의 인간이 보인다.
그리고 거기서 실망이 시작된다.

-2-

대통령은 가끔, 영웅처럼 무대에 등장한다. 혼란스러운 시대일수록 더욱 그렇다.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단순하고 강렬한 구호 하나로 전 세계 언론을 장악했다.
모디는 “자존심을 되찾겠다”며 인도의 가슴속 억눌린 민족 감정을 흔들었다.
사람들은 불확실한 시대에 확신을 말해주는 리더에게 쉽게 끌린다.
그들은 “답을 가진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들을 사랑했다.

하지만 강한 리더십은 사랑만을 받지 않는다.
배제를 기반으로 한 지지의 언어는 곧 분열을 낳는다.
트럼프는 이민자와 언론을 ‘국가의 적’으로 규정했고, 모디는 종교 갈등을 더 심화시켰다.
지지자들의 박수는 커졌지만, 반대자들의 분노도 커졌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동시에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이자 “가장 혐오받는 지도자”로 집계되기도 했다.
사랑은 늘 증오의 그림자를 동반한다.

현대의 대통령은 카메라 앞에서 살아간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 손동작까지도 생중계된다.
미디어는 확대경이자, 왜곡경이다.
푸틴은 “강력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앞세웠지만, 국제사회에선 인권 침해자로 불린다.
두테르테는 범죄와의 전쟁을 선언해 치안은 좋아졌지만, ‘인권 무시의 상징’이 되었다.
사랑받던 리더는 금세 ‘권위주의의 괴물’이 되기도 한다.
대통령은 이미지의 스크린 속 캐릭터로 살아간다.

결국, 우리는 어떤 대통령을 원하는가?
지지자 모두의 박수를 받는 대통령은 존재할 수 있을까?
그보다는, 우리 국민 각자가 대통령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부터 물어야 한다.
단호한 결단력? 따뜻한 공감? 유연한 협상력?
답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서 대통령은 늘 기대와 실망 사이를 헤맨다.
중요한 건, 우리가 그런 리더를 통해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지 자각하는 일이다.
사랑과 증오 사이, 대통령은 늘 줄타기 중이다.
다음 지도자를 뽑을 때, 우리는 단순히 얼굴이 아니라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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