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대통령이 되고 싶
이따금 생각한다. 세상이 정장을 입을 때, 노무현은 왜 셔츠를 걷어붙였을까.
남들은 높은 자리에 앉으려 안간힘을 쓸 때, 그는 왜 자꾸 내려가려 했을까.
누군가는 그를 “말 많은 대통령”이라 했고, 또 누군가는 “말귀 못 알아듣는 국민”이라 했다.
그러나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는 진심을 너무 자주, 너무 꾸밈없이 내뱉었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정치는 연극이라는데, 그는 자꾸만 대본을 찢고 무대 아래로 내려오려 했다.
노무현은 ‘쇼맨십’과 거리가 멀었다.
카메라 앞에서 넥타이가 돌아갔다. 땀이 줄줄 흘렀다.
하지만 거기엔 ‘보여주기’ 대신 ‘드러나기’가 있었다.
권위주의의 외투를 벗어던지고, 사람 냄새나는 정치를 하려 했던 그.
그는 ‘권력’을 움켜쥐기보다, ‘권한’을 설명하려 했고 ‘국민’을 위에 올려두는 게 아니라, 옆에 세우고자 했다.
그런데 그런 정치는 불편하다. ‘아랫사람이 말을 많이 하면 혼나는 법’이라는 구시대 정서 속에서, 그의 솔직함은 ‘무례함’으로, 정직함은 ‘실수’로 번역됐다.
노무현 정신은 뭘까?
그건 거창한 철학도, 정치 교과서에 실린 원칙도 아니다.
그것은 "왜?"라고 묻는 힘이다.
왜 지방은 소외돼야 하나요?
왜 돈이 많아야 유능한가요?
왜 대통령은 품위만 유지해야 하나요? 그의 질문은 권력을 향한 것이 아니라, 국민을 향한 것이었다.
그의 대답은 정답이 아니라, 공감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대통령이라기보단, 동네에 한 명쯤은 있는 ‘정 많은 아저씨’처럼 기억한다.
노무현의 죽음은 너무 슬펐지만, 그가 남긴 정신은 살아 있다.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란 말은 멋지지만, 사실 그건 아주 간단한 뜻이다.
“눈치 보지 말고, 맞다고 생각하면 손들어요.”
그건 교실에서든, 시장에서든, SNS에서든 통하는 말이다.
그의 정신은 정치를 하는 이들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를 ‘지켜보는’ 우리 모두에게 뿌리내리고 있다.
우리는 자주 실패하고, 종종 부끄러워지겠지만 그럴 때마다 그의 말 한 줄이 들린다.
“이쯤에서 ‘사람 사는 세상’을 다시 이야기합시다.”
세상을 바꾸는 건 위대한 천재가 아니라 우직한 ‘바보들’의 끈질긴 희망인지도 모른다.
내가 그 당시 바보 대통령 노무현임을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존경을 받을만한 현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