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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나쁜 걸 추종한다

인디언밥이 사라진 대륙

by 바람비행기 윤기경

버펄로가 모두 죽었습니다


어떤 부족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에 살아남았던 버펄로는 외로워서라도 죽었을 테지요.

하지만, 결코 사람들은 그의 숙연한 죽음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서부의 총잡이들은 마지막 남은 버펄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습니다. 수십 수백 발의 탄알이 버펄로의 인중과 머리와 몸뚱이를 파고들었습니다.

마지막 들소의 명치에 확인 사살하듯 여러 개의 구멍을 내버렸습니다. 인류는 그 버펄로의 시신 위에서 괴성으로 자축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총잡이들의 정착을 도왔던 순진한 인디언들도 하나둘 죽어 갔습니다. 마치 들소처럼 말입니다.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또는 그보다 더한 세월 그 인디언의 친구이자 먹이가 되었던 버펄로는 북아메리카에선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의 친구 인디언도 삶의 길을 잃어버리고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울분(그림 윤기경)


과연 우리는 멀쩡한가


70년의 서울은 가난했습니다.

판잣집도 그렇고 열악한 동네와 그 골목골목마다엔 진흙창으로 아수라장이었죠. 집집마다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로 뒤덮였고 다 태운 연탄재는 고스란히 길가에 쌓여 있었죠.

하지만, 그때가 인간처럼 살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무엇 때문 읽까요? 과연 그것이 단순한 회귀심리이거나 추억거리일까요? 물질문명이 인간 고유 본성을 추월한 요즘, 우리 주변의 인디언은 하나하나 사라지고 있어요. 누구에게나 내어 줄줄 알던 사람, 자기 것이 부족해도 선 듯 손님에게 반듯한 저녁상을 내어줄 줄 알던 사람, 늙은이든 누구든 약자라면 모든 걸 내어주려 했던 사람. 그런 사람 아니 인디어들이 우리 주변에서 차츰 사라지고 있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종종 인디언들이 우리 형제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더러는 우리의 조상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본래 미국 땅은 우리의 땅이라고도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인디언들이 남아 비교적 차등 없이 살고 있는 멕시코나 남부 아메리카가 우리 땅이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인디언 정신입니다. 우리는 ㄱ지혜로운 인디언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에게 배려하는 사람, 남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 공이 있으면 그건 남의 것이고 잘못된 것은 내 탓인 줄 아는 사람, 남은 격려하고 용서할 줄 알지만 자신의 오류에 대해 용감하게 용서를 빌고 제 마음을 채찍 할 줄 아는 사람이 우리의 조상 또는 인디언이라고 해야 합니다.


용서하는 자가 승리일까


간혹 우리는 자신을 과감하게 용서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래서 종종 스스로 저지른 일을 잘못인지 여부를 모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숨박꼭질(그림 윤기경)

어떤 자는 부모를 버리고도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기는 묻지 마 살인 행위를 하고도 고개를 빳빳이 들고 "심신 미약"이라고 주장하는 자도 있다고 하니 참으로 파렴치한 것입니다. 물론 음주 운전하고도 비루한 행각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린아이를 트렁크 가방 속에 디밀어 놓고 잠가버린 계모는 어떻습니까? 그녀는 항소를 상고를 했다고 합니다. 제 몸만 챙기고 선박을 이탈한 세월호 선장은 바다 깊숙이 우리 젊고 여린 학생들을 침몰시켰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디언의 형제라고 말할 수 있는 겁니까?

비록 유럽의 정복자들에 의해 유린되고 추방당하면서 혹독한 삶을 지탱하고 있지만, 그들의 정신은 모든 생명 혹은 돌과 같은 무생명의 존재에 대해서도 그 존중과 배려정신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결코 손님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베풀었던 그들이 정복자에 의해 착취당하고 죽음을 맞았지만 알입니다. 이제 우리가 그들 인디언 사상에 대해 공부할 때입니다. 만약 그들이 우리의 종족이라면, 그들의 땅이 우리 땅이라고 하기 전에 그들의 사상이 우리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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