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으로 시각화한 인간의 본원적 불안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다. 누군가의 시선만으로도 인간은 불안해진다. 이런 불안은 인간의 삶에 있어 필연적인 감정이다. 우리는 인간의 본원적인 감정인 불안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까? 파스빈더의 영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를 통해 이를 고찰해 볼 수 있다.
파스빈더는 인간의 다양한 불안들을 시각화하였다. 특히 그는 ‘시선’을 통하여 인간의 불안을 탁월하게 표현했다. <이미지1>은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비가 오는 어느 날, 주인공은 잠시 비를 피할 겸 펍에 들어간다. 연로한 주인공이 들어오자 펍 안에 모든 사람들은 일제히 주인공을 응시한다. 이 장면은 영화의 첫 장면으로써, 타인들의 시선을 통해 주인공의 불안이란 감정을 시각화하였다. 이런 시각화에 있어, 주인공이 불안을 느끼는 결정적 이유에는 시선이라는 요소와 더불어 상황적 측면과 설정들이 존재한다. 먼저 상황적 측면을 보면, 주인공은 비가 오는 날 낯선 펍에 찾아온 외부자이다. 비라는 날씨와 펍이라는 낯선 환경에 처한 주인공은 결코 편안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주인공에게 불안과 경계라는 감정을 느끼게 한다. 장면의 설정 역시 주인공의 불안을 조성한다. 연로한 주인공에게 있어 펍은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가 이용하는 장소이다. 또한 실제 펍 안에 주인과 손님들은 모두 주인공보다 한참 어린 젊은이들이다. 이들은 또한 친구관계이기도 한데, 이는 주인공을 소수의 입장으로 만든다. 나이 그리고 다수와 소수의 차이라는 설정은 결국 주인공에게 부담감과 소외감이라는 감정을 선사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호기심을 넘어선 경계와 비웃음(조롱)의 시선은 상황적 측면. 설정과 합쳐져 주인공의 불안을 시각화 시킨다. 추가적으로 이 장면은 이후 영화에 나타내는 다양한 대립들을 한눈에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대립은 국가(인종), 나이(세대), 부모와 자식, 다수와 소수, 사랑 그리고 삶과 죽음이라는 관계에 등장하며, 그 과정 속에서 인간의 본원적 불안이라는 영화의 주제를 관통한다.
다음으로 <이미지2> 장면은 시선을 통해 불안을 시각화한 또다른 예시이다. 이 장면에 표현된 불안은 앞서 <이미지1>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불안보다 더 고차원적이라 할 수 있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외국인 알리와 사랑에 빠진 주인공은 결혼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결혼식에 앞서, 주인공은 자식들을 불러 모아 결혼식 초대와 함께 이 사실을 고백한다. 결혼 상대자인 알리가 등장하자 자식들은 일제히 알리를 응시한다. 이 장면의 불안이 더 고차원적인 이유는 이들의 관계가 다수와 소수, 세대 간의 차이보다 더 복잡한 부모와 자식 관계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더 높은 차원의 관계는 대립에 있어서도 큰 영향을 끼치며, 그로 인해 산출되는 불안의 정도 역시 복잡하다. 이를 조금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미지2> 장면 이전 상황을 알아야 한다. 주인공은 한참 젊은 모로코인 알리와 사랑에 빠진 순간, 끝없이 행복하면서도 현실의 벽에 부딪치게 된다. 그 현실의 벽은 바로 타인들의 시선이다. 알리와 주인공은 나이, 국가, 인종, 살아온 환경 어디에서도 교집합을 찾기 힘들고 어울리지 않는다. 현실에서 그들의 사랑은 철저히 아웃사이더에 가까운 것이며, 그들의 입장은 소수가 된다. 그런 소수를 향한 현실의 다수의 시선은 지독히 차갑고 무정하다. 주인공은 이런 상황 속에서 그들의 사랑을 지지해 줄 협력자를 찾지만 결코 쉽지 않다. 친하게 지냈던 직장 동료들부터 단골집 사장, 이웃 주민들까지 모두 이들의 사랑에 경멸과 조롱의 시선을 보낼 뿐이다. 결국 마지막으로 주인공은 자신의 사랑에 대한 지지자로 가족, 즉 자식에게 기대를 걸어본다. 이러한 관계 설정과 상황적 측면은 주인공에게 두 가지 감정을 일으킨다. 바로 기대감과 불안감이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는 현실의 시선을 뛰어넘어 이들의 사랑을 지지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자식조차도 이들의 사랑을 경멸하고 부정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공존하게 된다. 그리고 <이미지2> 장면, 즉 알리가 자식들의 시선에 든 순간, 불안감은 기대감을 잠식해버린다. 불안은 현실화 되어버리고 주인공에게는 알리라는 존재와 사랑밖에 남지 않는다.
<이미지3>은 주인공에게 유일하게 남은, 사랑에 대한 불안을 보여준다. 사회의 소수가 된 주인공의 사랑은 다수의 차가운 시선으로 인하여 많은 상처를 받게 된다. 그리고 그 상처는 피차 주인공뿐만 아니라 알리 역시 받게 된다. 주인공과의 사랑 이전부터, 사회의 소수에 속했던 알리는 외국인 노동자라는 이유로 다수로부터 차가운 시선과 차별을 당해왔다. 또한 알리의 입장에서는 독일인 주인공은 모로코인 알리보다는 다수에 속하는 사람이다. 이런 상황 적 측면들은 주인공과의 사랑에 있어서 알리에게 주인공보다도 더 큰 불안을 야기한다. 그리고 그 불안은 사랑에 대한 타인들의 시선 변화과정 속에서 실체화 되어버린다. 주인공과 알리의 사랑을 향한 타인들의 시선은 주인공이 여행을 간 뒤로 우호적으로 급변한다. 그러나 그 시선의 대상은 독일 사람인 주인공에게만 해당하고 알리에게는 여전히 아랍인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으로 그를 지켜본다. 결국 타지에서 온 이방자인 알리의 근원적인 불안은 현실화 되어버리고, 알리는 그러한 불안에 잠식되어 버린다. 그렇게 알리는 소수로부터 벗어나 다수가 되기 위해 몸부림치며 방황하다 <이미지3> 상황까지 오게 된다. 알리의 방황 때문에, 유일하게 남은 사랑에 있어서도 불안을 느낀 주인공은 알리를 찾아 그의 직장으로 찾아간다. 그런 주인공의 모습에 알리의 직장동료들은 차가운 시선을 보내며 조롱한다. 그리고 다시 소수의 입장이 된 주인공을 보고, 알리는 다수의 입장을 잃고 싶지 않아 주인공을 향한 조롱에 그저 웃기만 한다. 알리는 조롱에 동참하며 다수가 되었고, 차가운 시선으로 소수인 주인공을 보게 되었다. 사랑에 대한 불안은 이렇게 시각화 되었다.
영화의 결말에 있어서, 감독은 사랑을 넘어 인간의 죽음에 관한 본원적인 불안을 보여준다. 결국 주인공과 알리의 사랑은 맨 첫 장면처럼 둘이 춤을 추며 화해하고 회복되지만, 알리는 갑자기 쓰러지고 만다. 결코 완치되지 않고 계속 재발되는 위궤양에 걸린 알리의 모습을 통해, 감독은 인간에게 있어 죽음이라는 불안은 영원히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다소 씁쓸하지만, 지독히 현실적인 영화의 메시지를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 인간에게 있어서 불안은 소멸되지 않고 영원하다. 그렇다면 불안을 피할 수 있는, 내 불안의 안식처는 어디인가? 하나의 질문을 던지며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