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골이 만져졌는데
목백일홍이 씨껍질을 벗고 있어요
내 상자엔 싹트지 못한 유전자가 가득하고요
나만 열고 닫는 금고예요
각 장마다 제목이 붙어있는 나의 씨드
한 장 한 장 저축하듯 늘어나요
어머니가 남긴 목백일홍은 가장 슬픈 씨드예요
책꽂이엔 나만 보는 책이 빼곡해서 둘 데가 없어요
이 책들도 나의 재산이니 은행이라고 부를까요
나 말곤 아무도 찾지 않으니 문은 열어둘게요
나는 날마다 동쪽에 씨를 뿌려요
어둠에 갇혀 멈춰버린 것도 많아요
꽃이 필 때까지 얼마의 생애가 걸릴지 모르지만
춥고 어두운 방의 몸살을 견뎌야 해요
감각을 잃어버리면 복원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휴면에 빠질 땐 촉을 깨워요
잘 여문 것에도 슬픔이 들어 있어요
꿈이 단단하다고 속까지 강하지는 않지만
꽃은 밝으니까
우울하거나 슬픈 사람들이 꽃의 페이지를 열어봤으면 해요
꽃에서 그 빛을 쬘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