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현 Nov 08. 2023

프롤로그

뭐가 문제일까요?

 

-       안녕하세요, 제 식물이 갑자기 이렇게 변했어요. 뭐가 문제일까요?


자, 오늘도 하루가 시작된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의뢰인이 보낸 사진을 확대하고, 눈이 빠져라 살펴본다. 이때 가장 유심히 봐야 할 것은 식물이 아니다. 
 
 

식물 주변에 창문은 있는가? 집 안 마루인지, 베란다인가? 바닥 재질의 색은 무슨 색이지? 자연광이 비치고 있는 곳인가, 혹은 실내에서 식물 조명의 빛을 받고 있는가? 화분 속에 담겨있는 흙은 젖어 보이는가 말라보이는가? 흙의 색은 어떻지? 흙이 굳어져 있나? 흙의 알갱이는 고르게 퍼져 있는가? 화분 위에 돌은 덮여 있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변에 또 따로 키우고 있는 식물들은 있는가?
 
 사진 한 장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량은 어마어마하다. 화분이 위치하는 위치, 빛이 드는 방향과 빛의 양, 창문으로부터 거리. 식물을 키우고 있는 공간이 실내인지 베란다인지에 따라 평균 온도와 습도도 다르다. 흙은 어떤가. 흙 위에 돌이 깔려 있다면 표면으로부터 증발하는 물의 양이 적고, 흙이 말랐는지 바로 판단하기 어려워 흙이 젖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물을 주게 될 수도 있다. 흙 위에 노랗게 물든 펄라이트가 둥둥 떠 있는 경우에도 주의해야 한다. 화분 속에 있던 펄라이트가 대부분 위로 떠올라, 화분 속에는 물 빠짐에 필요한 큰 알갱이가 없을 수도 있다. 


영양제가 꽂혀 있지는 않은지도 체크해야 할 일 중 하나다. 식물 고수들은 대부분 튜브 형태의 영양제를 사용하지 않는다. 영양제가 꽂혀 있는 식물일수록 초보일 확률이 크고, 현재 식물이 죽어가고 있을 확률도 크다. 이미 증상이 나타난 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고, 영양제를 꽂아 이제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는데도 좋아지지 않아 식물 상담을 찾아왔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비로소 식물을 본다. 현재 잎은 무슨 색인지, 줄기는 말랐는지, 확대해 봤을 때 벌레는 보이지 않는지. 

대부분의 경우, 의뢰인은 마지막으로 물을 준 날짜나, 마지막으로 분갈이를 한 날 등 대략적인 정보를 함께 올린다. 이 모든 정보를 기반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원인을 산출한다. 


이 때, 결코 하나의 해답은 내지 않는다. 


명백하게 원인이 보인다거나, 다른 원인이 생각나지 않을 결과를 제외하고는 무조건 2개 이상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편이다. 극히 제한된 정보량을 가진 인터넷 상담의 한정상, 내가 생각한 원인과 실제로 의뢰인이 행한 행동, 식물을 키우는 환경에 의해 일어난 사건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최대한 많은 가능성을 제시하고, 의뢰인이 과거에 식물을 돌볼 때 한 행동을 되짚어보며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도록 도와주는 것이 목적이다.


그리고 솔루션. 식물의 처방은 동물이나 사람과는 다르다. 병원 진료처럼 시술까지 한번에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럴 수 없다. 나는 이후 이뢰인이 행해야 할 행동을 제시하고, 어느 정도 가드너의 노력을 요구해야만 한다. 

‘당분간 물을 아끼고, 과습을 방지하기 위해 화분 위에 구멍을 뚫어 내부까지 통풍이 잘 되게 도와주세요. 화분의 위치를 살짝 더 안쪽으로 옮겨주세요, 더 빛이 좋은 곳으로 화분을 옮기거나 식물 전용 조명을 받아주세요, 서큘레이터나 소형 선풍기로 통풍을 챙겨주세요…’ 

등등등.


약 추천의 경우도 조심스럽다. 농약의 경우, 법률상 인터넷을 통한 판매는 불가능하다. 농약사를 방문한 뒤,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다양한 물음들 (농약은 굉장히 위험하기 때문에 판매자들은 혼자 사러 온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굉장히 민감하다. 범죄나 자살에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을 거쳐야만 한다. 그래서 내가 추천하는 약들은 최대한 인터넷이나 일반 화원에서 구매할 수 있는 종류들이다. 이것도 무리라면 민간요법 중 일반 농가에서도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검증된 요법을 추천한다. 효과는 농약만큼 확실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함부로 독한 약을 추천할 수는 없다. 반려동물이나 유아가 있는 집,  혹은 좁은 원룸이나 반지하 방에서 식물을 키우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효과는 좀 떨어진다고 해도, 최대한 안전이 검증된 제품을 추천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얼핏 보면 간단해 보이는 내 식물 상담은 이런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 가끔 우스갯소리로 내 일을 ‘식물계의 안락의자 탐정’이라고 부르는데, 사진 한 장과 몇 줄의 설명으로 지금 식물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고, 왜 죽어가는지 알아내고, 원인이 무엇인지도 알아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결코 스스로를 명탐정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꽤나 그럴듯한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처음 식물 상담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과연 이 식물상담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회의감이 있었다. 



“사람들이 정말 식물이 왜 아픈지 알고 싶어 할까? “

앱을 통한 식물상담을 시작하게 된 것은 그 즈음이었다. 더 쉽고 간편하게 식물 상담을 신청할 수 있게 된 이후로, 상담 건수는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다. 


아, 다들 식물을 살리고 싶어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아무도 식물이 아프다는 말을 들어주지 않아서, 어디에서 상담을 받을지 몰라서 헤매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매일 아침 데스크에 앉아 모자란 머리를 쥐어 짜 가면서 쓰고 있는 이 모든 상담들은,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말이었다. 


내 환자들은 늘 말이 없다. 정적 속에서 천천히 앓아가고, 가장 조용하게 죽어간다. 생명 중에서도 가장 가볍게 여겨지기 쉬운 식물의 생명은, 그에 의미를 가져주는 누군가에 의해 조명되어 내게 돌아온다.


그 사랑을 느끼며, 오늘도 데스크에 앉아 자판을 두드린다. 화분을 앞에 두고 어쩔 줄 몰라하는 당신을 위해.





오늘의 식물 용어 알아보기

 펄라이트 : 진주암 등을 고온처리해서 만든 것. 매우 가볍고 알갱이가 커 흙의 물빠짐을 돕기 위해 흙에 섞어 사용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