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현 Nov 15. 2023

1. 로즈마리가 자꾸 시들어요

당신은 나쁘지 않다.

Q : 안녕하세요, 로즈마리 잎 색깔이 검정색으로 변했어요.

A : 로즈마리를 어디에서 키우고 계실까요? 로즈마리와 같은 허브의 경우에는 주변 환경에 민감해 실내에서 재배하면 상태가 나빠지기 쉬워요. 햇빛이 많이 들고, 통풍이 잘 되는 창가로 옮겨 주시고 자주 환기를 해주세요. 아니면 혹시 흙이 너무 딱딱하게 굳어져 있거나, 오래 젖어 있지는 않을까요? 흙이 오래되어 너무 딱딱해졌거나 흙이 물이 잘 빠지지 않는 재질이라면, 분갈이를 통해 물이 잘 빠지는 흙으로 바꿔 주실 필요가 있어요. 로즈마리는 통풍이 부족하면 흰가루병이나 응애가 생기기 쉬우니 특히 조심해야 해요.




이제 진실을 밝힐 때가 되었다.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암암리에 침묵하고 있던 진실. 이 진실을 밝히면서 업계인들의 반발을 예상하지만(과장), 더 이상 선량한 피해자가 늘어나는 사태만은 가만히 보아 넘길 수 없다. 

자, 혹시 당신이 ‘나는 식물을 못 키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지나치지 말고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길 바란다.



 

로즈마리는 초보자가 키울 수 있는 식물이 아니다. 당신은 잘못이 없다.



로즈마리. 허브의 일종. 만지면 독특한 향이 나는 이 무구해 보이는 식물은, 널리 알려진 대중성과 3000원대의 저렴한 가격으로 식물 입문자들을 유혹한다. 하지만 로즈마리는 결코 만만하지 않다. 이 매력적인 허브는 다크소울 (프롬 소프트웨어의 ARPG 게임. 어려운 난이도로 유명하다.)의 군다(다크소울 3의 ‘재의 심판자 군다’. 게이머의 첫 번째 고난인 튜토리얼 보스이다.) 같이, 희망을 가지고 입문한 가드닝 초보자를 단숨에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존재이다.


 분명 처음 구매했을 때만 해도 새파랗게 싱그럽던 잎은 점점 갈색으로 변하고, 흰가루병이라도 걸리면 잎 자체가 새하얀 가루로 뽀얗게 덮여버린다. 갑자기 물이 부족한 것처럼 말라버린 잎에 당황한 초보자 가드너는 마구 물을 쏟아부어버리고, 그렇게 로즈마리는 과습으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넌다.



그리고, 그렇게 식물을 죽인 사람들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님이여, 그 길을 가지 마오.



다양한 식물 초보분들이 앱 식물 상담방에 로즈마리를 가져오실 때마다, 나는 이 분이 제발 식물계를 떠나가지 않기를 기도한다. 분명 ‘아 나는 이렇게 쉬운 식물도 못 키우다니 똥손인가봐’ 라고 생각하고 있을 그 사람은 아무런 잘못이 없기 때문이다. 로즈마리가 식물 초보에게 맞는 쉬운 식물이 아닐 뿐이다. 


그렇다면 잘못은 누구에게 있는가? 


단군 할아버지에게 있다. 


 아니 정말로. 아름다운 이 땅 금수강산의 환경 때문이니, 단군 할아버지를 원망해야지 뭘 어쩌겠어. 어쩌자고 이런 터를 잡으셨어요. 이거 부동산 사기당하신 거예요. 


지중해성 기후에서 잘 자라는 로즈마리는 많은 빛과 바람, 물빠짐이 좋은 흙에서 자주 물을 주는 것을 좋아한다. 여기서 ‘많은 빛과 바람’ 은 실내에서 키우면서 가끔 창문을 몇 시간 열어주는 것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로즈마리가 어렵다니, 마트 같은 곳에 밖에 대충 내놔도 잘 살던데?’ 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 ‘대충 내놓은 장소’ 야말로 그 식물들에게 최적의 환경조건을 가지고 있다. 계속 선선한 바람이 불고, 따뜻한 햇살이 비치고, 가끔 위에서 호스나 커다란 물뿌리개로 물을 부어주는 장소 말이다. 그런 길바닥이 당신의 따뜻하고 다정하고 깔끔한 집보다 식물에게 더 좋을 수 있다. 분하기는 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로즈마리와 마찬가지로, 식물 상담에 모습을 보일 때마다 나를 탄식하게 하는 식물이 있다. 광택이 나는 초록색 잎에 시원하게 쭉쭉 뻗은 가지. 친근한 이름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식물.



올리브이다. 


대부분의 올리브는 나에게 오는 시점에서 이미 바싹 마른 갈색 나뭇가지가 되어 죽어 있다. 아직 초록빛이 남아있는 올리브의 경우에도 대부분 소생이 어렵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것 또한 당신은 잘못이 없다. 

식물을 파는 사람에게도 잘못을 묻고 싶지 않다. (판매자 또한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것도 환경의 문제이다. 올리브야말로 진정 한국에서 자라기 힘든 식물이기 때문이다. 아테나 여신이 아테네 도시를 차지하기 위해 시민들에게 소개했다던 이 풍요와 지혜의 열매는, 본토에서는 상상도 못할 척박한 한반도의 환경에서 예상 외의 시련을 맞이하게 된다. 


만약 아테나 여신과 포세이돈 신이 아테네가 아닌 충남 아산시를 차지하기 위해 싸웠다면 포세이돈 신의 압도적인 승리였을 것이다.


허브나 올리브 등 지중해성 기후에서 잘 자라는 식물, 유칼립투스나 마오리소포라 등 호주식물들은 다양한 SNS를 타고 여러 초보 가드너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 사로잡힌 초보자의 마음들은, 예상 외의 높은 생육 난이도로 인해 사정없이 꺾이고 만다.

물과 바람, 해가 다 중요한 이런 식물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마당이나 베란다를 갖기 힘든 대도시나, 겨울철 온도가 영하 이하로 떨어지는 지방에서는 잘 자라지 못한다. 여름에는 높은 습도로 쪄 죽고, 겨울에는 얼어 죽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에는 이상기후로 인해 하루아침 사이에 온도가 갑자기 떨어지거나, 갑자기 오르기도 한다. 천천히 계절에 적응해야 하는 식물들에게는 그야말로 날벼락이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설레는 마음으로 식물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형광등 빛으로 괜찮겠지, 하고 거실에 놔서 죽이고, 실내에서 키워도 된다고 들었지 하고 창문을 열지 않아 죽이고, 원래 식물들은 밖에서 자라는 거지, 하고 일교차가 심한 날에 식물을 내놓았다가 죽인다.

그리고 그렇게 식물을 죽인 사람들은, ‘나는 식물을 키우지 못하는 사람이야’ 라고 다시 식물을 키우지 않게 된다. 하지만 식물을 키우지 못하는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식물을 잘 모르는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 그 식물의 특징이나 잘 자라는 환경, 좋아하는 흙을 알아준다면, 식물은 언제 그랬냐는 듯 쑥쑥 자라 줄 것이다.


식물을 죽인 당신, 놀라운 사실을 하나 알려줄까. 

식물이 떠나간 화분에는, 새 식물을 심을 수 있다.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당신의 환경에 맞는 식물들도 얼마든지 남아 있다. 식물들은 늘 용서해준다. 물 주는 시기를 놓쳐 말려버려도 다시 새 잎을 내주기도 하고, 실수로 잎을 꺾어버리면 아래에서 또 새 잎을 내주기도 하고, 죽여버린 화분을 엎으면 이번에는 실수하지 말라는 듯 자구를 내어 놓기도 한다. 언제라도 ‘돌이킬 수 있다’는 이 안정감은, 식물을 키우기 시작한 이후로 내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이다. 

뿌리만 살아 있으면, 부드러운 줄기가 남아 있다면, 가지에 푸른 빛이 남아 있다면, 포기하지 않고 정성을 다한다. 


그러면 식물은 답해준다. 

야 나 아직 안 죽었다, 하고 꾸짖으려는 듯 살아난다. 


만약 식물이 죽었다고 해도, 크게 주눅들 이유는 없다. 빈 화분에는 또 새로운 식물을 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식물을 죽이고 또 사는 당신. 당신이 바로 원예, 화훼계의 빛과 소금이다. 자신을 가져도 된다. 


그러니 제발 포기하지 말고 계속 키워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저는 늘 동지들이 고픕니다.


 정 힘들고 어렵다면, 언제라도 그루우 앱 상담소는 열려 있다. 나 혼자서는 고작해야 40~50개의 화분을 키울 수 있지만, 앱 속에서 나는 5만개가 넘는 화분을 유저와 함께 돌보고, 가꾼다. 문제가 생기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원인을 짐작해보기도 하고, 예쁘게 잘 자란 식물을 보며 서로 기뻐하기도 한다. 이 일을 하기 잘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다.


당신이 키우는 식물을 함께 키울 수 있는 것은 나의 큰 기쁨이다. 내가 절대 키울 수 없는 식물들을 보고, 함께 즐길 수 있게 만들어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아직 식물을 키우지 않은 당신. 나는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







오늘의 식물 용어 알아보기 : 


흰가루병 : 곰팡이 질병의 일종. 식물의 잎과 줄기에 흰색 밀가루를 닮은 균사가 덮이는 것이 특징이다.

응애 : 거미강 진드기목 응애과에 속하는 동물.식물의 세포액을 빨아먹어 생육을 방해한다.

과습 : 화분에 수분이 너무 많은 상태. 뿌리가 숨을 쉬지 못해 식물이 죽게 된다.

자구 : 뿌리에서 나오는 새끼구. 구근식물 등에서 생기며 이를 심으면 새 식물을 번식시킬 수 있다.



이전 01화 프롤로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